살인의 역사 - 중세에서 현대까지 살인으로 본 유럽의 풍경
피테르 스피렌부르그 지음, 홍선영 옮김 / 개마고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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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명은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아마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존중사상이 우리의 인식 속에 깊이 박혀 있음에도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살인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생겨난다. 살인이란 개인이 행하게 되는 폭력의 행위 중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며, 이러한 살인의 종류는 개개인 간의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된 것에서부터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전쟁과 테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살인과 같은 상대방의 목숨을 앗아가는 끔찍한 행위를 두고 이를 옹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살인의 흔적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며,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멈추지 않고 진행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살인충동은 인간이 지닌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속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살인은 좀 더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인간에게 있어,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해당 관련자들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줄만큼 상당한 파급적인 효과를 낳는다. 그래서 살인의 행위를 역사적인 큰 틀에서 살펴본다는 것은, 당시 사회문화의 위계구조는 물론 사회 전반적인 변화의 양상을 객관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지 않나 싶고, 한편으로 살인이라는 행위가 제도적 차원에서 인간들로 하여금 무엇을 어떻게 강제하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서, 오늘날 사회불안의 중요한 요인으로 재등장하게 된 극단적인 폭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독자 나름대로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에서도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진다.

이 책은 중세에서부터 시작하여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같은 무력충돌과 같은 변화에서 생겨난 것이 아닌 특정한 사고사를 제외한, 유럽전역의 여러 나라에서 그동안 발생했던 거의 모든 살인의 기록들을 조사 분석해 놓았다. 따라서 이를 통해 독자들은 살인을 위시한 그동안에 폭력의 과정이 어떻게 변화하여 왔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그러한 행위들이 인류문명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살인으로 인해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인 간의 그 상관관계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유익한 인문교양도서로 생각된다. 저자는 책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인을 범죄의 범주에 넣고, 개인 간의 폭력과 국가의 폭력을 구별하게 된 것은 현대사회가 접어든 이후의 일이며, 폭력이 처음 성인 남성에 의해 독점되었다가, 중세 봉건시대를 거치면서 전사 엘리트 계층으로 옮겨갔으며, 결국에는 오늘날처럼 우리가 국가라 부르는 기관에 의해 최종적으로 안착되었음을, 폭력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독점화의 과정을 세 단계로 구별한 사회학자 요한 구즈볼륨의 말에 의거하여, 이를 하나의 틀로 삼아 살인의 역사 과정을 시대별 나라별로 구분하여 구체적인 자료와 함께 상세한 설명을 보충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저자가 제시한 역사의 사실 내용에 따르면 중세 초기의 살인의 대부분은 하류층이 아닌 상류층에서 많이 발생했으며, 개인적인 갈등에서 비롯된 문제가 가문의 명예와 결부되면서, 이는 다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보복을 가하는 과정에서 기인해왔다는 점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당시 사회 관습상 대다수 도시 귀족층들은 이러한 행위에 대해 암묵적인 동의를 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점차적으로 결투와 같은 형식을 띠며 불법화적인 것으로 확대되면서 종래에는 하류층으로까지 번져 나갔던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당시 이런 행위가 일반화 되었다는 점에 미루어 보면, 그만큼 국가 권력과 사법제도가 상대적으로 부재했단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살인 역사의 흐름은 18세기 들어서면서 상당히 감소하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즉 상류층과 중류층에서부터 결투를 비난하며 평화를 추구하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 했으며, 비폭력적인 생활방식 전하고자 하는 문화의 움직임과 도시화와 중앙 집권화에 따른 국가의 형성과정도 여기에 한 몫을 하는 등의 다양하고 상호의존적인 발전 요소들에 의해 폭력의 움직임은 차츰 둔화되어 간 것이다. 이후 국가의 성장과 사회계층 간의 문화적인 경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폭력은 사적 영역이 아닌 공익차원에서 국가가 독점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살인율은 더욱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는데, 저자는 이러한 원인의 근거에 경찰제도의 쇄신과 수사방식의 개선으로 인한 폭력 예방효과와, 지속적인 문명화 운동이 시민사회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유럽에서 발생했던 살인의 역사흐름을 상세히 다루면서, 살인의 다양한 형태와 특성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계층들 간의 인식의 변화과정을 제공하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을 안내해준다는 점에서 이채롭게 느껴진다. 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여성의 영아 살해와 같은 살인의 역사배경과, 정신 이상자들이 저지르게 된 살인을 두고 당시 사회인식들의 문제점 등은 이 책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로 기억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럽에서 행해졌던 살인의 역사의 과정을 나열하면서, 결론적으로 최근 들어 다시 살인율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새로운 분석을 통한 다소 수정이 필요로 하겠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발생했던 살인의 기록들을 놓고 볼 때,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 엘리아스가 주장한 문명화론과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확고하고도 조심스런 분석을 내놓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말대로 그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던 문명화가 인간의 자연성을 억압함으로서 인간성을 왜곡한다는 비판의 제기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하더라도, 우리의 불안한 감정의 표출을 조절해 줌으로서 물리적 충돌을 억제하고 상호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 우리에게 인간적 존엄을 가치를 더하여 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정인 차원에서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주의 깊게 생각해봐야 할 것은, 저자가 이 책의 말미에서 우려한 바와 같이 문명화의 진행 과정에서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문명화를 거스르는 새로운 현상들과 연관하여 시대가 역행하지 않도록 하는, 우리의 세심한 노력들이 필요로 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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