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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버지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부모 중에서도 아버지란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 것일까. 어린 시절 우리가 한때 아버지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대개 가부장적인 권위에서 오는 것들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이를테면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곧 법이었고 실천해야 하는 행동강령이었으며 거스를 수 없는 그 무엇이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머리가 커지고 서서히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예전에 알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어느 날 문득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살과, 초라한 어깨만을 간직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게 될 때, 오래전 왜 그렇게 유치하고 철없는 행동으로 일관했을까 하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씁쓸한 회상을 떠올리며 간혹 울컥한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흘러간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듯, 때로 격노하는 호랑이처럼 무서웠고, 말없이 묵묵하기만 했던 우리들 아버지의 모습은, 그렇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조용히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은 중국이 격변의 시기를 딛고 경제적으로 한창 낙후되어 있던 20세기 중반의 시절, 가난하고 힘들었던 환경 속에서 작가가 자라온 성장과정의 일부와, 당시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평생을 헌신해야했던 자신의 아버지와 삼촌의 모습을 회고하면서, 이제 다시는 면전에서 볼 수 없는 그들을 향한 부성애의 애틋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자전적 에세이 이다. 소박하고 담담한 필체로 아버지와 그 형제들에 대한 작가의 진솔한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뭉클한 감동의 여운을 가슴 깊이 전달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이 책 속에서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보면, 그에게 있어 가난한 농촌에서의 생활은 자신에게서 일종의 숙명이자 체념의 대상이었고, 반면에 도시에서의 삶은 그가 이루어내고픈 하나의 꿈이었던듯하다. 초등학교 때 도시에서 전학 온 여자아이와 우연하게 짝이 되었던 경험을 통해, 가난한 농촌에서 자란 자신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짝의 모습을 보고 처절하게 무너진 자신의 자존심이 그렇고, 지금의 그의 글쓰기가 된 바탕 역시 당시 소설 하나 잘 쓰는 것만으로도 도시에서의 삶을 구가 할 수 있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에서는 자신보다 성적이 훨씬 좋았던 작은누나를 대신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결국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가난 때문이었다. 어른이 되어 농촌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그가 선택한 것이 군대였음을 감안 한다면, 가난은 그에게 가장 혹독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를 회고하는 부분에서 그는 정직하게 인생을 살아 갈 것을 자식들에게 주문하고, 자신보다는 가족들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아버지가, 젊어서 가볍게 여겼던 천식이 원인이 되어 아버지가 다른 형제들보다 일찍 돌아가신 부성애에 대한 그리움이 잔득 묻어나 있다. 큰 누나가 불치병을 앓으면서 아버지가 사방팔방 다니며 이를 치료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해야 했고, 추운 겨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와집을 서둘러지었던 것도, 바로 결혼한 자식들을 위해 집 한 칸이나마 마련해주기 위했던 것임을, 그래서 그는 평생 동안 자식의 안위를 위해 도모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살아생전 다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적잖은 후회를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그는 인간은 누구나 다 존엄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일깨워준 큰 아버지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삶과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삼촌과의 애틋하고 각별했던 관계가 있었기에 비로소 오늘의 자신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누구나 성인이 되어 아버지를 회고함에 있어 느끼는 감정들은 대부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러 엄격하고 무뚝뚝한 아버지였을지언정, 그 밑바탕에는 자식을 사랑하는 한없는 자애로움이 간직되어 있음을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전달되어 오는 것은, 아버지와 가족을 향한 애잔한 그리움을 사실적으로 담은 작가의 호소력 짙은 글에서 연유하기도 하지만, 더불어 효와 관련한 동양적인 정서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철없던 시절 우리들은 장차 미래의 일을 감안하여 현실을 판단하기보다 당장 급한 현실의 일이 중요했고, 그래서 내일 세상이 어떻게 될지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은 반드시 해야만 했던,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 반항과 같은 충동적인 행동을 보인 그런 경험들이 간혹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식의 마음을 이해해도 우리 자신이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보긴 전까지는, 그 깊은 속마음을 깨닫기는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 우리가 부모가 되어 당시 그 마음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우리의 부모는 늙고 병들어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모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더 엷어져 가는 요즈음인 듯하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오늘 우리가 있기까지 조건 없는 사랑과 관심을 무한히 베풀어 왔던, 우리들 부모의 모습을 가슴에 깊이 새기는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