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버지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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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중에서도 아버지란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 것일까. 어린 시절 우리가 한때 아버지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대개 가부장적인 권위에서 오는 것들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이를테면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곧 법이었고 실천해야 하는 행동강령이었으며 거스를 수 없는 그 무엇이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머리가 커지고 서서히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예전에 알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어느 날 문득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살과, 초라한 어깨만을 간직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게 될 때, 오래전 왜 그렇게 유치하고 철없는 행동으로 일관했을까 하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씁쓸한 회상을 떠올리며 간혹 울컥한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흘러간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듯, 때로 격노하는 호랑이처럼 무서웠고, 말없이 묵묵하기만 했던 우리들 아버지의 모습은, 그렇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조용히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은 중국이 격변의 시기를 딛고 경제적으로 한창 낙후되어 있던 20세기 중반의 시절, 가난하고 힘들었던 환경 속에서 작가가 자라온 성장과정의 일부와, 당시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평생을 헌신해야했던 자신의 아버지와 삼촌의 모습을 회고하면서, 이제 다시는 면전에서 볼 수 없는 그들을 향한 부성애의 애틋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자전적 에세이 이다. 소박하고 담담한 필체로 아버지와 그 형제들에 대한 작가의 진솔한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뭉클한 감동의 여운을 가슴 깊이 전달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이 책 속에서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보면, 그에게 있어 가난한 농촌에서의 생활은 자신에게서 일종의 숙명이자 체념의 대상이었고, 반면에 도시에서의 삶은 그가 이루어내고픈 하나의 꿈이었던듯하다. 초등학교 때 도시에서 전학 온 여자아이와 우연하게 짝이 되었던 경험을 통해, 가난한 농촌에서 자란 자신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짝의 모습을 보고 처절하게 무너진 자신의 자존심이 그렇고, 지금의 그의 글쓰기가 된 바탕 역시 당시 소설 하나 잘 쓰는 것만으로도 도시에서의 삶을 구가 할 수 있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에서는 자신보다 성적이 훨씬 좋았던 작은누나를 대신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결국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가난 때문이었다. 어른이 되어 농촌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그가 선택한 것이 군대였음을 감안 한다면, 가난은 그에게 가장 혹독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를 회고하는 부분에서 그는 정직하게 인생을 살아 갈 것을 자식들에게 주문하고, 자신보다는 가족들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아버지가, 젊어서 가볍게 여겼던 천식이 원인이 되어 아버지가 다른 형제들보다 일찍 돌아가신 부성애에 대한 그리움이 잔득 묻어나 있다. 큰 누나가 불치병을 앓으면서 아버지가 사방팔방 다니며 이를 치료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해야 했고, 추운 겨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와집을 서둘러지었던 것도, 바로 결혼한 자식들을 위해 집 한 칸이나마 마련해주기 위했던 것임을, 그래서 그는 평생 동안 자식의 안위를 위해 도모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살아생전 다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적잖은 후회를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그는 인간은 누구나 다 존엄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일깨워준 큰 아버지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삶과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삼촌과의 애틋하고 각별했던 관계가 있었기에 비로소 오늘의 자신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누구나 성인이 되어 아버지를 회고함에 있어 느끼는 감정들은 대부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러 엄격하고 무뚝뚝한 아버지였을지언정, 그 밑바탕에는 자식을 사랑하는 한없는 자애로움이 간직되어 있음을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전달되어 오는 것은, 아버지와 가족을 향한 애잔한 그리움을 사실적으로 담은 작가의 호소력 짙은 글에서 연유하기도 하지만, 더불어 효와 관련한 동양적인 정서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철없던 시절 우리들은 장차 미래의 일을 감안하여 현실을 판단하기보다 당장 급한 현실의 일이 중요했고, 그래서 내일 세상이 어떻게 될지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은 반드시 해야만 했던,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 반항과 같은 충동적인 행동을 보인 그런 경험들이 간혹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식의 마음을 이해해도 우리 자신이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보긴 전까지는, 그 깊은 속마음을 깨닫기는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 우리가 부모가 되어 당시 그 마음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우리의 부모는 늙고 병들어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모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더 엷어져 가는 요즈음인 듯하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오늘 우리가 있기까지 조건 없는 사랑과 관심을 무한히 베풀어 왔던, 우리들 부모의 모습을 가슴에 깊이 새기는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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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얼구나 강의 오른쪽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3
츠쯔졘 지음, 김윤진 옮김 / 들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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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디언도 그렇고 남미나 아프리카의 소수 민족들은 타의에 의해 그들의 삶의 터전을 강제적으로 빼앗기는 여러 가지 고통스런 슬픈 역사의 일면들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익히 배워서 알고 있다. 물론 어느 나라 어느 민족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통의 역사들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이들의 역사가 더없이 우리에게 애절하고도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의 지나간 과거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아픈 역사를 지녔으면서도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와 몽골과의 지역에 존재했던 여러 부족들이다. 이 작품은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가로지르는 어얼구나 강 주변을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삼아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며 그 명맥을 유지해왔던, 어원커 족의 숙명적인 삶을 서사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로 하여금 적잖은 감동을 전달해 주고 있음은 물론, 문학의 묘미를 한층 더 깊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로 다가서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는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이제는 과거의 흔적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그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목도하면서, 작품을 통해 문명의 이기주의로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비판하면서도, 어원커 부족 사람들의 꾸밈없고 순수한 삶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지를, 그리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은연 중 일깨워주고 있지 않나 싶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순록을 생활의 방편으로 삼아 유목을 하는, 어원커 부족의 마지막 추장의 여인이었던 ‘나’ 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자신을 과거를 회상하는 회고록의 형식으로 전개되어 있다. 따라서 독자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방식과 세계관 그리고 생활 모습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으며, 그 안에서 펼쳐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강인한 삶의 의지와 자연의 신비를 가슴 가득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인 ‘나’는 손재주가 많았던 어머니 다마라와 훌륭한 사냥꾼이었던 아버지 린커에 의해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뚫고 태어났다. 우리 어원커 부족은 대략 20명 내외로 순록의 이끌고 유목생활을 했는데, 그런 이유로 어느 한곳에 오래 정착 하지 못하고 환경 변화에 따라 이곳저곳에 옮겨 다녀야 했다. 또한 우리처럼 이런 형태의 생활을 하는 부족들은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어얼구나 강 지류를 따라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아간다. 부족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개개인의 사생활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이유로 큰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결혼이나 장례와 같은 문제들은 부족의 무당이 모두 주관하여 행해졌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거나 정착하는 경우는 추장이 오랜 경험을 통한 임의적으로 판단에 의해 정해졌으며, 부족 사람들은 이를 충실히 따랐다.  

먹이를 구하기 위한 사냥은 성인 남자들이 모두 함께 동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여자들은 집안에서 아이를 돌보거나 살림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사냥해온 짐승은 똑같이 나누어 고루 분배하고 가죽들은 따로 모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는데 쓰였다. 간혹 어떤 문제되는 일이 발생하여 서로의 의견 다툼이 있긴 했지만 그것이 부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크게 확대되지는 않는다. 우리부족은 일본군이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들이 지배하게 되면서, 남자들이 한때 강제적인 군사교육을 받기도 하고 전쟁 물자를 위한 벌목들이 이루어져 서서히 조금씩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본격적인 것은 일본이 패망하여 자국으로 돌아가고 중국 정부에 의해 본격적인 개발 붐이 생기면서부터다. 그들의 무분별한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던 우리부족의 생활반경은 점점 작아 질 수밖에 없었으며, 또한 외부 문명의 유입으로 부족 사람들의 의식도 조금씩 변해갔다. 마침내 우리부족은 중국정부에서 마련해준 임시 정착촌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90 평생을 살아온 이곳을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리라 마음먹는다.

작품 속 ‘나’를 통해서 본 어원커 부족 사람들의 모습에서 크게 눈에 띠는 것은, 오늘 우리의 사회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탐욕과 과욕을 부리지 않는 소박하고 순수한 부분들이다. 그런 이유로 이들에게는 더러 사소한 감정 다툼은 있을지언정, 그것을 빌미로 상대방에게 가해지는 어떤 불이익은 없으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의 삶에 어긋나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들은 자연이 주는 혜택을 충분히 누리고 살지만, 반대로 폭설과 홍수와 같은 대재앙에 피해에도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의연하게 살아간다. 주인공인 ‘나’ 라는 인물은 자신의 부족이 새로운 문명에 의해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있음을 아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과거로의 돌아가고픈 꿈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작가의 감성적이면서도 섬세한 묘사와 깔끔한 문체, 그리고 순문학의 진한 향기가 깊게 배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이 작품은, 비장하면서도 처연하고, 역동적이면서도 애잔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감상의 포인트를 제공하여 독서의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나 싶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살아가는 어원커 부족들의 모습을 통해, 이기주의적이고 배타적으로 변해가는 오늘 우리들의 각박한 삶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고,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인간미를 나누려는 그들의 숭고하고 겸허한 삶의 자세를 이 기회에 깊이 인식했으며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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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캐피탈리즘 - 장막 뒤에 숨겨진 중국 금융의 현실
칼 E. 월터 & 프레이저 J.T. 하위 지음, 서정아 옮김 / 시그마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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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라는 기치 아래 시작된 중국의 경제가 해마다 고공 행진을 벌이면서, 급기야는 올해 중국 자국 내 총생산의 규모가 일본을 앞지르는 등의 호조를 보이며, G2 위상에 걸 맞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중국은 그러한 경제동력을 바탕으로 세계경제 시스템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큰 목소리를 내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앞으로 펼쳐질 국제경제의 양상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함부로 예측할 수는 없다고는 해도, 지난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글로벌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누려온 달러화의 신뢰도가 최근 미국경제의 위기로 인해 급격하게 추락하는 오늘 국제경제의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이를 대신해 일부의 시각에서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동반한 중국의 위안화가 점차 부상하지 않겠는가 하는, 다소 성급하기는 해도 이런 의견들이 서서히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결국 중국경제가 지닌 그 힘의 무게가 가히 작지 않음을 반증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중국의 금융경제가 겉으로 들어난 것과는 달리 상당히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가볍게 간과할 수만 없는 것은, 1990년대에 있었던 부실 대출의 문제로 여러 금융기관과 기타 관련한 회사들이 무더기로 파산하면서, 당시 드러났던 부실채권의 문제가 아직까지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기인하며, 이것이 언젠가는 하나의 단초가 되어 커다란 금융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가 배제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문제이기에 그렇다.

중국은 기본체제가 우리와는 다른 공산주의 체제다. 따라서 어떤 일을 추진하든 간에 그들의 사회체제가 유지되는 부분이 항상 우선시되고 중요하게 다루어짐에 따라 민간적인 부분은 당연 뒷전 일 수밖에 없다. 결국 중국의 모든 금융기관들은 공산당 부속기관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이며, 이러한 현상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이념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렇게 계속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우선 그러한 인식의 전제가 있어야 할 듯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금 중국금융의 핵심이 되는 거의 모든 은행의 조직은 모두 정부 행정체계에 따라 구성되어 있으며, 자본시장의 자율적인 흐름에 따라 금융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 중국 정부의 판단과 목적에 맞는 경직된 상태로 운영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중국정부의 최우선 목표가 오로지 경제성장에 맞춰져 있고, 그렇다보니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은 국유 대기업에 대한 정책 금융의 편중대출이 심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결국 부실대출이 증가하게 되는 원인이 되고 있음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은행들은 중국정부의 보호아래 국유 기업들의 요청으로 과다대출이나 중복적인 대출을 늘렸고, 이 자금들은 해외에서 유입되어 온 투기성 자금과 복합적으로 연관되면서 주식과 부동산 광풍을 몰고 왔으며, 이는 결국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여러 차례 상당한 손실을 초래해왔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중국정부가 이러한 부실 채권을 자체적으로 깨끗하게 정리하여 국유 부실기업들을 파산시키는 것이 아닌, 자산관리공사와 같은 기관들을 새로이 만들어 출자금의 형식으로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부의 재정적자를 국유기업이 떠안고 있는 이상한 형태로 만들어 지금까지 질질 끌어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저자는 중국 은행 시스템을 통해 국내 정치 갈등에 휘말려 은행이 자체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현실을 두고, 많은 부실의 내용들이 겉포장에 의해 교묘히 가려져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중국의 채권의 문제에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데, 거래되는 채권들이 시장에 의해 자율적으로 그 수익과 리스크가 결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에 의해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방향으로 강제되고 있음으로 해서, 상당부분 왜곡되어 가고 있는 현상들도 언젠가 중국 금융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한때 몸체를 불린 엄청난 거대 기업들도 그렇고 수출호조로 막대한 경상수지와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리먼 사태에서 보듯 부실이 커지면 결국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왔으며, 최근 심각한 부채로 하강국면으로 급속히 치닫고 있는 미국 경제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이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하겠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눈에 비치는 중국경제가 지닌 강력한 힘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 침잠되어 있는 중국의 부실채권의 문제는 언제든 반드시 한번은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보며, 아직까지도 불투명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국금융의 내부의 문제점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은 중국이 1970년대 후반부터 개혁개방화 정책을 펼치면서, 오늘날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온 경제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중국금융의 현실을, 여러 가지 경제자료를 토대로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왔던 그들의 취약한 금융시스템을 낱낱이 파헤쳐 그 실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자 했으며, 더불어 중국금융경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안목을 한층 확대하고자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중국이 오늘날 안고 있는 금융의 문제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러한 사실들이 때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와 우리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깊이 인식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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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생각해
이은조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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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조금은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원하고 또한 이를 바라며 산다.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서로가 교감할 수 있는 감정이란 도구를 가지고서 말이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우리에게 녹녹치 않다. 완벽한 삶이 없듯이 어떻게 사는 것이 자신에게 더 행복하고 바람직한 삶인지 그 정답은 없을 것이다. 현실적인 면을 고려해 감정에 치우치기보다 이성적으로 산다고 해서 그것이 곧 최선은 아닐 것이며, 이상을 꿈꾸며 마음이 가는대로 그렇게 산다고 해서 자신이 원했던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어떤 방식의 삶을 선택하였던 간에,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의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모습에서 스스로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20대에 생각하고 고민했던 사랑에 대한 관점이 30대가 되면서 그것과 똑같지 않은 것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누구나 저마다 그 가치관은 변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한때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새 자신에게는 무의미한 것으로 바뀌기도 하고, 별거 아닌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뒤늦은 깨달음에 의해 스스로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을 회피하고 이를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바꾼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이 소설은 20대 희곡작가이자 연극 기획자인 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여러 갈래의 다양한 인생이 존재함을 보여줌으로서 우리의 삶이 어떤 일정한 틀에 얽매여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기 보다, 자신이 주체가 되는 더 나은 삶을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 ‘유안’은 연극계에서 한때 유명세를 치루며 잘 나갔던, 그러나 몇 년 전 부터 경영난 허덕이며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극단 명우의 홍보 직원이자 작가다. 그녀는 조만간 자신의 첫 작품을 무대에 올릴 생각에 하루하루 흥분과 긴장이 교차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동안 극단을 맡아 오던 실장이 갑자기 행방불명되면서 뜻하지 않은 실장자리에 앉게 된다. 그리고는 실장으로서 맡은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일인 다역의 역할을 하며 바쁘게 뛰지만, 그녀의 주변 상황들은 복잡하게 얽혀져 심란하기만 하다. 5년째 열애중인 남자친구와의 사이는 남인지 연인인지 모를 만큼 점점 무덤덤해져가면서, 급기야는 결혼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이별을 맞게 되고, 그녀의 언니는 엄마와 서로 잘 맞지 않는 성격문제로 집을 나와 동호회에서 알게 된 이혼녀인 미연의 집에 함께 거주한다. 한편 사업실패로 빚더미에 앉게 된 아버지는 어머니와 잠시 위장이혼의 형식을 취했지만, 그 사이 아버지에게 새 여자가 생기면서 완전히 갈라섰고, 드라마 조연배우로 지내는 어머니는 그러한 상처의 허전한 마음을 오랜 친구와 수다를 통해 채우곤 한다.

이 작품 주인공 유안의 가족들은 저마다 개개인의 삶을 통해, 가정이라는 한 테두리 안에서도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사랑방식이 모두 다름을 보여준다. 이들은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저마다 평범하지 않은 조금은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개인적인 면에서 보면 모두들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때로 상황에 따라 반목을 보이면서 다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커다란 틀에서 서로를 다독거리며 벌어진 틈을 다시 메워 간다. 작가는 소설 속 미연의 말처럼 가족이라는 것은 애초 우리가 선택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함에 있어서, 이를 어떤 특정한 방식의 삶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되며, 따라서 구성원 개인이 선택한 삶은 그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 소설은 현대인의 다양한 삶을 간결한 문체로 깔끔하고 심미적인 표현으로 경쾌하게 그려나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중구난방 식인데다가, 여러 이야기를 단지 나열해 놓고 이도저도 아닌 결말을 맺고 있어서, 다소 어정쩡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또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의 펼쳐가는 역시도 공감이 가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도 독자의 입장에서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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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 3 - 아! 고구려
김성한 지음 / 나남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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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내용을 두고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요즈음, 아직까지도 우리의 고대역사에 대해 일반인들의 관심이 많지 않은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삼국 중 발전이 가장 더뎠던 신라가 자신의 자그마한 이득을 위해 중국과 합세하여, 삼국통일이라는 미명아래 고구려가 지배하고 있던 광활한 만주 땅을 중국에 통째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상당히 아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의에 의해 우리의 역사가 왜곡되고 축소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주인공 능소를 내세워 고구려의 흥망성쇠 이야기를 다룬 요하의 제 3권의 이야기는, 당태종 이세민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하여 요동성을 함락하고 그 기세를 몰아 백암성, 오골성을 손에 넣는 등의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가, 안시성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보급로를 차단당한 채, 계속되는 연개소문의 공격을 받고 결국 후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고구려 정벌에 실패한 이세민은 중국으로 돌아와 재침을 노리지만 등창과 풍질로 인한 건강약화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와 관련하여 여기서 잠깐 중국의 고대국가 인구 변화 현황을 살펴보자면, 당시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에 인구 변화폭이 상당히 심했고, 또한 정치, 경제적으로도 발전이 더디었던 것으로 보아, 개인적으로 이러한 원인은 아마도 고구려와의 무리한 전쟁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요하 3권의 주요내용을 보면 능소 개인의 이야기에 치중해있기 보다는, 중국의 당나라 그리고 국내의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긴박하게 벌어지는 내부적인 일들과, 이들 나라들과의 외교적인 관계가 상세하게 조명되어 있어 당시의 국제관계를 독자들이 한층 가까이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중국의 당나라는 이세민이 죽고 난 뒤에, 그의 9남인 이치가 황제에 오르면서 황후로 측천무후가 새로이 전면에 등장하고, 백제는 한때 용맹과 지혜를 겸비했던 의자왕이 새로 맞이한 왕후 은고에게 깊이 빠지면서, 정사를 멀리하게 되고 외척세력이 난립하는 등의 불안한 정국으로 변해간다. 또한 신라의 무열왕 김춘추는 백제를 치기 위해 자신의 아들 김인문을 당나라에 보내 청병을 요청한다. 그런데 당시의 이러한 신라의 요청은 당나라 측천무후의 입장으로 볼 때, 여러 가지 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측천무후는 권력을 향한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허수아비 같은 황제를 좌지우지하면서 자신의 정적들을 하나둘씩 제거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이유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안팎의 비난을 외부로 돌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국 황제를 부추키어 신라와 동맹을 맺고 백제를 치기로 결정한다. 이 결과로 백제는 나당 연합군이 공격을 받고 황산성에서 계백장군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수도였던 소부리성(사비성)이 함락하자 의자왕은 대신들을 이끌고 당나라에 투항한다. 백제를 정복한 측천무후는 기세를 몰아 661년 소정방을 대장으로 무려 30만의 대군을 보내 고구려 침공을 개시한다.

한편 당나라의 침공 소식을 들은 고구려의 실제적인 권력을 쥐고 있던 연개소문은, 자신의 아들 남생과 함께 휘하 장수들을 거느리고 압록 강변을 수비하는 등의 당나라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펼친다. 그러나 연개소문의 병이 깊어지고 그의 아들 삼형제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면서 남생이 당에 투항하는 것을 계기로, 백만 대군 앞세운 당나라의 재침공을 맞아 700년 동안 만주 땅을 다스렸던 고구려 제국의 역사는 그 끝을 향해 달려간다. 소설 요하는 평생 동안 전장에 몸을 바친 능소라는 허구적인 인물을 내세워 고구려의 흥망성쇠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최대한 가깝게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저자는 만주벌판을 누비며 대륙의 기상을 펼쳤던 고구려의 멸망을 아쉬워하면서도, 역사란 승자에 의해 윤색되고 패자는 오욕 속에 잊히게 마련이지만, 역사에 영원한 패자는 있어도 영원한 승자는 없음을 말하면서, 이 작품을 통해 승자에 의해 덮어진 그러한 역사의 단편들이 더 이상 퇴색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저자가 1968년 신문에 연재되었던 것을, 다시 자료를 보충하여 10년간의 시간을 거쳐 완성한 작품이다. 따라서 고구려인들의 기상과 비운이 엄숙하고도 장엄하게 펼쳐진 이 작품에 많은 독자들의 관심이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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