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얼구나 강의 오른쪽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3
츠쯔졘 지음, 김윤진 옮김 / 들녘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의 인디언도 그렇고 남미나 아프리카의 소수 민족들은 타의에 의해 그들의 삶의 터전을 강제적으로 빼앗기는 여러 가지 고통스런 슬픈 역사의 일면들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익히 배워서 알고 있다. 물론 어느 나라 어느 민족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통의 역사들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이들의 역사가 더없이 우리에게 애절하고도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의 지나간 과거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아픈 역사를 지녔으면서도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와 몽골과의 지역에 존재했던 여러 부족들이다. 이 작품은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가로지르는 어얼구나 강 주변을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삼아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며 그 명맥을 유지해왔던, 어원커 족의 숙명적인 삶을 서사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로 하여금 적잖은 감동을 전달해 주고 있음은 물론, 문학의 묘미를 한층 더 깊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로 다가서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는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이제는 과거의 흔적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그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목도하면서, 작품을 통해 문명의 이기주의로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비판하면서도, 어원커 부족 사람들의 꾸밈없고 순수한 삶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지를, 그리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은연 중 일깨워주고 있지 않나 싶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순록을 생활의 방편으로 삼아 유목을 하는, 어원커 부족의 마지막 추장의 여인이었던 ‘나’ 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자신을 과거를 회상하는 회고록의 형식으로 전개되어 있다. 따라서 독자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방식과 세계관 그리고 생활 모습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으며, 그 안에서 펼쳐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강인한 삶의 의지와 자연의 신비를 가슴 가득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인 ‘나’는 손재주가 많았던 어머니 다마라와 훌륭한 사냥꾼이었던 아버지 린커에 의해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뚫고 태어났다. 우리 어원커 부족은 대략 20명 내외로 순록의 이끌고 유목생활을 했는데, 그런 이유로 어느 한곳에 오래 정착 하지 못하고 환경 변화에 따라 이곳저곳에 옮겨 다녀야 했다. 또한 우리처럼 이런 형태의 생활을 하는 부족들은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어얼구나 강 지류를 따라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아간다. 부족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개개인의 사생활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이유로 큰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결혼이나 장례와 같은 문제들은 부족의 무당이 모두 주관하여 행해졌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거나 정착하는 경우는 추장이 오랜 경험을 통한 임의적으로 판단에 의해 정해졌으며, 부족 사람들은 이를 충실히 따랐다.  

먹이를 구하기 위한 사냥은 성인 남자들이 모두 함께 동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여자들은 집안에서 아이를 돌보거나 살림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사냥해온 짐승은 똑같이 나누어 고루 분배하고 가죽들은 따로 모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는데 쓰였다. 간혹 어떤 문제되는 일이 발생하여 서로의 의견 다툼이 있긴 했지만 그것이 부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크게 확대되지는 않는다. 우리부족은 일본군이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들이 지배하게 되면서, 남자들이 한때 강제적인 군사교육을 받기도 하고 전쟁 물자를 위한 벌목들이 이루어져 서서히 조금씩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본격적인 것은 일본이 패망하여 자국으로 돌아가고 중국 정부에 의해 본격적인 개발 붐이 생기면서부터다. 그들의 무분별한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던 우리부족의 생활반경은 점점 작아 질 수밖에 없었으며, 또한 외부 문명의 유입으로 부족 사람들의 의식도 조금씩 변해갔다. 마침내 우리부족은 중국정부에서 마련해준 임시 정착촌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90 평생을 살아온 이곳을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리라 마음먹는다.

작품 속 ‘나’를 통해서 본 어원커 부족 사람들의 모습에서 크게 눈에 띠는 것은, 오늘 우리의 사회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탐욕과 과욕을 부리지 않는 소박하고 순수한 부분들이다. 그런 이유로 이들에게는 더러 사소한 감정 다툼은 있을지언정, 그것을 빌미로 상대방에게 가해지는 어떤 불이익은 없으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의 삶에 어긋나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들은 자연이 주는 혜택을 충분히 누리고 살지만, 반대로 폭설과 홍수와 같은 대재앙에 피해에도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의연하게 살아간다. 주인공인 ‘나’ 라는 인물은 자신의 부족이 새로운 문명에 의해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있음을 아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과거로의 돌아가고픈 꿈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작가의 감성적이면서도 섬세한 묘사와 깔끔한 문체, 그리고 순문학의 진한 향기가 깊게 배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이 작품은, 비장하면서도 처연하고, 역동적이면서도 애잔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감상의 포인트를 제공하여 독서의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나 싶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살아가는 어원커 부족들의 모습을 통해, 이기주의적이고 배타적으로 변해가는 오늘 우리들의 각박한 삶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고,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인간미를 나누려는 그들의 숭고하고 겸허한 삶의 자세를 이 기회에 깊이 인식했으며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