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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크 저택 살인 사건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같은 작품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 SF의 거장 쓰쓰이 야스타카의 신작으로, 그동안 그의 소설들이 간결한 문체와 긴박한 상황 전개를 바탕으로 한 무한한 상상력을 독자들에게 불어 넣어주었다면, 이 소설은 그러한 것과는 사뭇 다른,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교묘한 트릭을 설정해놓은 밀실 미스터리의 추리물로, 작가로서 그의 새로운 면모를 감상해 볼 수 있는 좋은 작품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전 그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실망을 주지 않았던 것처럼, 이 소설 역시 독자의 입장에서 마치 눈뜨고 코를 베인 것과 같은 적잖은 충격과 놀라운 경험을 안겨 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사실 이러한 장르를 선호하는 독자들의 경우, 한정된 공간 안에 외부로부터 침입의 흔적이 없는 밀실 추리물을 읽게 될 때, 대개 작가에 의한 정교하고도 놀라운 트릭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예상을 하게 마련이고, 이런 점에 중점을 두고 읽게 되는 것이 아마 대부분일 것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밀실과 관련한 많은 미스터리 추리 작품들이 발표되어 왔고, 그런 이유로 웬만한 정도의 트릭으로는 독자들의 만족을 채우기에는 작가의 입장에서 다소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쓰쓰이 작가는 이 한권의 책으로 정면도전에 나섬으로서 작가로서 그의 능력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조금은 오래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경관에 꽤 어울리는 교외의 어느 별장식 저택에, 친목을 위한 작은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건물의 주인은 프랑스의 풍속화가 로트레크의 작품 애호가로 건물 내부에서 곳곳에 그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오늘 이곳에 며칠 동안 머무르게 될 방문객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온 젊은 남녀청춘들과 그들의 일부 부모들이다. 이들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 지내온 안부를 묻는 등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각자 배정된 방으로 흩어져 달콤한 하루의 끝을 보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갑자기 건물의 2층 동쪽 회랑에서 두발의 총성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 여성 희생자가 발생한다. 경찰 조사 결과에 의하면 사건 현장에 단서가 될 만한 특별한 증거는 보이지 않았고, 외부 침입자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으로 단정하기에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에 의해 증거의 추가 확보를 위한 다양한 가능성이 조사 진행 되던 중, 이곳 저택의 또 다른 장소에서 같은 방식의 피해자가 추가로 발생하게 되고, 결국 사건은 그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는커녕 더욱 곤란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렇다면 작가는 과연 사건의 어느 지점에 그 은밀한 트릭을 숨겨 놓은 것일까.
<사건 해결의 결말을 숨겨 놓은 책 속의 봉인된 부분>
이 작품은 사건의 전개과정에서 독자들이 정황을 포착하고 가해자를 찾아내는데, 일견 접근이 가능해 보이는 평범한 느낌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러한 낙관적 견해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상당히 독특한 트릭이 내포 되어 있는 추리물이다. 따라서 작품의 결말 과정에 들어서지 않고서는, 그 어디서도 속 시원한 해답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만든 교묘한 트릭을 뒤늦게 보고서야 문득 생각이 났던 것은, 그동안 어떤 일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때, 사고의 범위를 자신도 모르게 어떤 일정한 틀에 묶어 두고, 의식적으로 그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지 않을까 관한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러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도 이런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치밀한 구성과 명쾌한 논리 그리고 상상 이상의 반전의 내용을 담은 추리물들이 지금까지 많이 등장해왔고, 그러한 비슷한 방식의 여러 작품들은 여전히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는듯하다. 그러나 그런 형태와는 조금은 달라 보이는 이런 독특한 형식의 추리물이, 독자들에게는 의외의 신선함과 색다른 재미를 주기에 충분해 보이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완벽한 연쇄살인처럼 보이는 사건의 내막에 은밀하게 감추어진 놀라운 트릭의 일면을 감상했으면 싶고, 또한 이 작품의 작가가 왜 그동안 천재작가로 인정받아 왔는지에 대한 그 궁금증을 조금은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