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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페어
하타 타케히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건의 전개 속에 숨겨진 놀라운 트릭이나,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강력한 스릴, 그리고 미처 생각지 못한 반전과 같은 상큼한 쾌감들을 즐길 수가 있어 책에서 쉽게 손을 떼지 못할 때가 많다. 더구나 크게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의외의 재미와 흥분을 느끼게 될 때, 그 즐거움은 한층 배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작품을 가지고도 저마다 독자들의 평가가 다를 수 있고, 또한 추리 소설을 통해 느끼는 흥미의 포인트 역시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쉽게 짐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치밀한 구성과, 사건이 진행될수록 증폭되는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어서, 추리 소설의 색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었던 추리물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특히 작품의 구성과정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추리 소설이 실제 사건과 마치 거울을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똑같이 전개되는, 다소 독특한 양상을 띠게 되는 부분이 있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상당한 흡인력의 요인으로 작용되고 있는데다가, 이에 맞춰 간결하고 경쾌함이 느껴지는 문체와, 개성이 강한 다양한 캐릭터들 역시도, 이 추리물을 재미있게 만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일 듯하다.
6월의 어느 여름날 신주쿠의 공원에 타살로 보이는 두 구의 시체가 경찰에 신고 된다. 조사 결과 이들의 신원은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와 앳된 여학생으로 밝혀졌는데, 두 피해자 사이에는 사건과 관련한 어떤 공통적인 연관성도 찾을 수 없었고, 사건 발생 시각이 이른 새벽으로 추정되어서 일까 유효한 목격자는 없었으며,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 됐다. 단지 사건현장 근처에서 경찰이 유일하게 찾아 낸 것은, 이 사건 담당형사로 지목된 유키하라 여형사에 의해 발견된 책갈피로 보이는 종잇조각과 거기에 쓰여 있는 ‘불공정한 것은 누구인가‘ 라고 인쇄된 글자가 전부였다. 특별한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 범인을 찾기 위한 경찰의 조사는 진척이 없었지만, 이 사건의 배경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있다. 중소업체의 출판사에 근무하는 편집자이면서 판매 실적을 압박받는 세자키, 한때는 별 볼일 없는 추리소설 작가였다가 지금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다루메, W대학 미스터리 연구 동호회 회원으로 소설가의 꿈을 꾸고 있는 다구치, 그리고 다구치가 다니는 동호회 회원 이었다가 2년 전에 행방불명된 히라이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사건에 깊이 개입되어 있거나 그 주변 인물들 이어서 사건의 참고인 자격으로 충분해 보이지만, 사건 자체가 증거를 남기지 않은 완전범죄의 행태를 띠고 있어, 경찰이 이들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이들에게로 접근의 계기가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은 세자키가 근무하는 출판사에서 주최 하는 신인 문학상에서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살인사건이 나타나면서부터다.
책을 읽으면서 이 작품이 조금 독특하게 여겨졌던 것은, 사건을 전개시키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건자체의 본질적인 부분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기 보다는, 사건 속에 작가가 독자들이나 혹은 또 다른 작가나 출판사의 편집자에 대해 추리물에 관한 직접적이고도 포괄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범죄자가 사건 현장에 남긴 ‘불공정한 것은 누구인가‘ 라는 책갈피의 글을 통해 은연 중 암시를 주었다가, 사건을 점점 크게 확대시키면서 추리소설들이 그동안 반복해왔던 몇 가지 구체적인 사실들을 서술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항이다. 즉 어느 추리물이든 사건은 반드시 해결된다는 점이고, 범인이 항상 누구인지 밝혀진다는 것과, 사건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사건의 결말을 쉽게 포착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의도적인 설정이며, 작품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대반전이나, 리얼리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일종의 법칙처럼 지켜지는 이러한 사실들을 비판하고자 하지 않았나 싶고, 또한 지금까지의 추리물들이 왜 그러한 인위적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간접적인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추리물의 경우 독창성과 리얼리티의 요소는, 작품을 대중성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품에서처럼 그러한 원칙을 배제하고도 얼마든지 좋은 추리물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책의 제목 ’언페어‘가 작품 속에서 어떤 의미를 나타내고자 했는지를 유추해보면서, 추리 소설의 또 다른 재미와 흥미를 느껴보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