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권수업
정광욱 외 지음, 안경환 감수 / 미래의창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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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짐승으로 취급되거나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고 싶은 이가 있을까. 이성을 가진 그 누구라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아마 추호도 없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세계 인권 선언의 날이 다가온다. 인권 문제에 대해 중요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다루는, 경제와 사회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이미 세계 160여개 국가가 비준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에 가입되어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이제는 인권국가로서 걸음마 단계가 아닌, 규약의 내용을 성실히 실천하여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위치에 서있다. 우리는 오랜 역사를 지녔음에도 성공적인 민주주의의 안착시키고 실행해온 기간은 상당히 짧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피나는 땀과 노력으로, 인간의 기본적 인권이 철저히 무시되었던 봉건주의적 관습과 사고를 타파하고, 인권향상을 위한 놀라운 결과물들을 많이 이루어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우리의 그러한 외향적인 모습과는 달리, 우리 사회 내부의 곳곳을 조금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여전히 여타 인권선진국들에 비해, 인권에 관한 국민 개개인의 인식이나, 인권규약에 반하는 우려스러운 부분들이 의외로 많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이런 문제와 연관하여 세계인권문제의 전반적인 평가를 다루는 몇몇의 전문기관들의 보고서들은, 한 목소리로 장애자와 노인, 그리고 아동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인권실태는, 상당부분 시급히 보완되어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인간다운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차별받지 않고 행복추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헌법에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직면해 있는 여러 인권의 문제들은 바로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혹시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인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과거 어느 한 지점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국가가 언젠가 이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고 안심하게 이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때로 은근이 걱정이 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인권에 관해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그리고 우리 사회의 어느 부분에 인권의 취약함이 있는지를 함께 머리를 맞대어 토론해보고, 그 대응책을 위해 어떤 노력들이 강구되어져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살펴보고자 했다. 책속의 내용은 오늘날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인권의 문제 중에서 몇 가지 사항들, 즉 양심적 병역거부나, 성소수자, 다문화, 장애인 등급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자연과 동물들의 권리까지 여러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그 문제점과 해결책을 토론 방식으로 피력하고 있어서, 독자들이 한번쯤 관심을 두고 참고할 만한 의미 있는 인문교양도서로 여겨진다.


이 책에 나오는 일부 내용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우선 요즘 인터넷에서 간혹 등장하는 신상털기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거나 범죄 당사자와 같은 어느 특정인의 정보에 대해, 누구나 당연한 알 권리를 가지게 된다. 반면에 그러한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인 경우, 해당사항에 관한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것 외에, 누군가에 의한 일방적인 자신의 정보 노출로 사회로부터 배척을 당하거나, 혹은 그의 가족들이 피해를 입는 또 다른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피해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권리가 그들에게도 역시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서로 상충하게 되는 이해관계의 요소를 우리가 어디까지 수긍하고 인정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또한 동성애자나 트랜스 젠더와 같은 성 소수자의 경우는, 성정체성의 문제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임에도, 종교, 관습, 보편성 등과 같은 여러 이유로 사회로부터 고립되거나, 각종 사회제도의 혜택에서 제외되는 차별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를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의 인권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미약해 보인다. 그리고 세계 여러 지역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자연재해와 환경오염의 문제에 관하여서, 환경론자들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자연이나 심지어 동물에게도 일정한 권리를 주어, 인간이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함부로 다룰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내세운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내세우는 의견이 어느 정도 충분히 수긍할만한 여지가 있어 보이지만, 여기에는 자연의 생명에 대한 학대나 훼손과 관련한 다툼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사자 능력의 문제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부정 할 것인가 하는 곤란한 측면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이고 다각적인 논의의 필요성이 있어야 할 듯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공동체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안들에 대해, 권리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더구나 우리의 사회가 점점 세분화, 그리고 다양화 되어가고 개성이 존중되는 시대로 변화되어 감에 따라, 예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내용들까지 점차 확대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고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 올려왔던 인권의 높은 성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오랜 시간동안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피와 땀을 흘려 투쟁해온 결과물이다. 그래서 누구든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폭 넓은 인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내가 아니면 누군가 할 것이라는 방관자의 자세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아직도 우리 주변에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이, 정당한 권리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독립기구로서 우리나라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지 벌써 11년이 지났지만, 그 위상과 권한의 그 속내를 살펴보면 다른 정부기관에 비해 상당히 빈약해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가 인권에 대해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정착시켰지만 여기서 그냥 머물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를 언제나 고민해야 한다. 인권 역시 마찬 가지다. 단 한사람이라도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로부터 소외당하지 않도록 함께 논의하고 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일은, 한시도 멈추지 말고 항상 진행형인 상태가 되도록 유지해야만 한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누구라도 다수결의 원리의 그 이면에는 항상 소수의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이해와 배려의 정신을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가 결코 잊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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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
모니카 마시아스 지음 / 예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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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즈음인가 TV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동족에 의한 내전으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악화되면서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아프리카 콩고에서 가족을 이끌고 우리나라에서 난민의 지위를 얻은 후에, 힘든 삶을 이어가는 욤비씨 가족의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그들의 가족에게는 아무래도 여러 면에서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 낮선 땅이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적잖은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실 그들도 애초에는 자신들의 인생 속에 지금과 같은 난민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했을 것이라고는 아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욤비씨의 예에서 보듯, 세상의 일은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확실하게 돌아가며, 우리들 역시 그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어떻게든 맞추어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그러한 과정을 두고 어떤 이들은 절망과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인생을 포기하는 반면에, 또 다른 이들은 아무리 척박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이 눈앞에 맞닥트려진다고 해도 과감히 이를 딛고 일어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새로운 삶의 영역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는 점이다. 이 책은 위에 언급한 욤비씨가족의 경우와 유사해보이지만, 처해진 상황과 그 과정이 더 암울했던 가녀린 한 여성의 가혹한 운명의 이야기를 흥미로우면서도 감동적으로 담고 있다. 특히 그녀가 자신의 조국을 떠나 새로이 정착한 곳이 다름 아닌,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며 동토의 땅으로 불리기도 하는 북한이라는 곳이어서, 독자들의 입장에서 조금은 색다르면서도 특별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모니카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아프리카의 신생국인 적도기니라는 나라 대통령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뜻하지 않은 쿠데타로 아버지를 잃고 언니와 오빠를 따라 불과 8살의 나이로 정치적 망명에 의해 북한이라는 낮선 땅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이렇게 된 문제의 원인은 그녀의 아버지가 목숨을 잃기 전, 쿠데타로 인한 혼탁한 국내 상황을 우려해 국제적으로 정치적 동료였던 북한의 김일성주석에게 자신의 가족을 도와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띄웠기 때문이다. 어린나이에 그녀에게 있어 난생처음 겪어보는 군대식의 엄격하고 일방적인 북한의 생활방식은, 모국의 언어를 잊어버릴 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 그녀에게 있어 어떤 경우라도 이겨내야 한다는 의지를 키워준 계기로 여기게 된다. 또한 그곳에서 정치적 망명과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극히 제한적인 자유만이 허락되는 까닭에, 다른 세상과의 단절됨은 물론이고, 일관된 주입식의 사상교육으로 인해 우물 안 개구리식의 세계관에 갇히면서 한동안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으로 유학을 왔던 다른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그들이 전해주는 다양하고 생생한 정보들로 인해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지구촌의 세계로 눈을 돌리게 되면서, 그녀는 새로운 도전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만경인민대혁명 인민학교를 거쳐 평양공경대 피복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개혁과 개방을 내세운 중국의 자본주의사회를 직접 피부로 경험하게 되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자신의 조국으로 회귀하여 편안한 삶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또 다른 낮선 나라 스페인을 선택함으로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누구나 한두 번 정도는 스스로의 삶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러 이유들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뜻하지 않은 인생의 행로를 걸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가끔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정체성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심각한 상황 앞에까지 다다르기도 한다. 낮선 이방인으로 북한에 정착하여, 이후 중국과 스페인 그리고 미국과 한국에 이르기까지, 언어장벽과 이질적인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운 장애물을 뛰어넘어 쉼 없는 인생의 여정을 펼쳐온 저자는, 책의 내용을 통해 누구나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삶의 끈을 결코 놓지 말기를 강조한다. 그리고 정치도 이념도 자신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는 것이며, 위기의 상황에 처해 있을수록 스스로를 더욱더 신뢰하고 당당하게 현실에 부딪혀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애초의 목적은, 북한에 정착한 낮선 이방인의 삶은 어떠할까에 관한 호기심이 동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지나온 행적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그녀가 지내온 북한에서의 흥미로운 생활상 외에,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주변의 환경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어렵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려는 의지와 노력에 소박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를 잃고 낮선 이방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자, 한때 그녀는 스스로 운명의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그녀는 인생이란 혼자 묵묵히 만들어 가는 것이라 판단했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데 아낌없는 노력과 땀을 쏟아 부어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은, 16년이라는 기간 동안 북한에 머물면서 경험했던 그녀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우리들이 잘 몰랐던 북한의 이모저모와, 이후 바깥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인생의 과정을 독자들이 함께하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을 잠깐이나마 느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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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접목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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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보면 조선의 개항 이후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까지의 과정은,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만큼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웠으며 참담했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 짝이 없는 암울의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의 강압적인 힘에 의해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식민지배 과정이 있었으며,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좌우익의 이데올로기적인 극렬한 대립과 분열이 횡행했고, 이후 6.25전쟁으로 남북이 갈라지는 민족의 아픔까지 그야말로 험난한 역사의 흐름에 놓여 왔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반세기도 채 되지 않는 짧은 혼돈의 시간의 이면에는, 지금까지도 쉽게 아물지 않는 우리만의 쓰라린 아픔의 후유증들이,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이 치유되지 않고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은 우리의 현대 문학사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고, 앞으로도 누군가에 의해 어떠한 방향으로든지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여러 작가들에 의해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아픈 역사의 속내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관찰되어왔고, 그들의 작품을 통해 심도 있게 논의 되어왔다. 더불어 독자들 역시 시대를 관통하는 이들의 대표작들을 통해 문학의 힘이 결코 녹녹치 않음을 인정해왔고 응원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대중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들이 늘어나면서, 현대사의 비극적인 아픔을 이해하고 그 안에 감추어진 진실이 무엇일까 하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에 다가서려는 노력들이, 예전과는 달리 점차 묽어져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금은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작품은 근현대사의 과정을 통해 나타난 우리 민족사의 모순적 문제를, 문학의 통해 그 근원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떠한 형태로 우리 사회에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던,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의 저자 조정래 작가의 단편모음집이다. 그의 작품 활동 기간으로 보면 아마 대략 중기쯤에 해당되는 시기에 발표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선집은, 그동안 겉으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모습과는 별개로 분단의 결과가 가져온 이산가족의 문제, 그리고 해방이후 좌우익의 갈등에 따른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점차 파괴되어가는 우리 인간사의 애환을, 다양한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다루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표지의 제목이 되는 그림자 접목 편에서는 6.25때 헤어진 가족의 슬픈 현실을 담고 있으며, ‘박토의 혼’ 이라는 작품은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온전했던 집안이 한순간 풍비박산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반면에 ‘시간의 그늘’이라는 작품의 경우는, 일제 치하와 해방이후 혼란한 시대의 기류를 틈타 기회주의적인 행동으로, 부와 권력을 얻은 한 인간의 추악한 과거를 풍자의 형식을 빌려 의미심장하게 다루고 있기도 하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작품 가운데 가장 임팩트 있게 다가온 것은, 손자세대의 입을 통해 어느 노인의 과거 기회주의적 행태를 나열하면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풍자의 요소를 곁들인 ‘시간의 그늘’ 이었지만, 한편 흥미로우면서도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던 것은, 마지막 편에 나오는 ‘길’이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실향민의 아픔을 현실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애잔한 마음의 여운을 불러일으킨다.


세계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 하면서 오늘 우리의 사회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한 목소리로 경제를 외치며, 모든 힘을 경제 회복에 쏟아 부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언제 우리가 경제 활성화를 외치지 않았던 때가 있을까 싶다. 과거에 비해 오늘 우리의 경제기반은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왔지만, 그 혜택은 재벌과 같은 극히 일부에게만 돌아가고, 서민의 고단한 삶은 과거나 지금이나 별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안고 있는 고통의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과거에 비해 더욱 차가워졌다고 말한다면 과연 이를 억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쯤에서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들 중 어떤 이는 결코 자신의 선택이 아님에도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가족의 이산을 겪어야 했고, 또 다른 이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손가락질을 받고 심지어는 물리적인 피해를 입기도 했던 사실들을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많은 피와 땀을 흘려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정착시켰고, 이후 꽤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나 정작 그 과정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처 입은 자들에 대한 관심은 점점 멀어져 가는듯하다. 이 작품은 과거 역사의 흐름의 무게에 억눌려 온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잘 묘사하여 그들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따라서 독자로서 바람은 아무쪼록 이러한 책을 통해서라도, 시대의 변화과정에서 남모를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잊지 말고, 우리가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다가서려는 노력들이 다시금 되살아났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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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관상 1~2 세트 - 전2권 - 관상의 神 역학 시리즈
백금남 지음 / 도서출판 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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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를 토대로 하여, 작가 특유의 창작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낸 것을 가리켜 우리는 보통 팩션이라 말한다. 그런데 픽션과 팩트를 혼합한 이 새로운 창작의 흐름은, 과거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작품이 담고 있는 주요 내용이나 결과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독자들에게 식상해 보일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팩션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즐거움, 즉 기존 역사의 세부 전개과정에 작가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상상력을 정교하면서도 치밀하게, 새롭고도 다각적인 내용으로 채워가고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문학을 대하는 이들에게 의외로 많은 호응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결과로 지금까지 <다빈치코드>나 <불멸의 이순신>등과 같은, 우리 눈에 익숙한 작품들이 국내외적으로 꽤 많이 발표되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볼 때 이러한 팩션의 등장은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그동안 장르소설을 즐겨왔던 독자들이 때때로 느껴왔던 권태로움을 일시에 해결해주는 일종의 방편으로 시도되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작품은 그러한 측면에서, 인간의 관상이라는 조금은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파란만장했던 조선왕조 권력다툼의 한 부분을 신선하고도 흥미진진하게 엮어내고 있기에, 기존의 여러 장르소설들을 통해 다소 건조함과 따분함에 지친 독자들이 있다면, 관심을 가지고 한번쯤 눈여겨 볼만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이 작품을 토대로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비교하여 살펴보는 것도 나름 괜찮을 듯하다.


우선 이 작품은 많은 독자들이 흔히 알고 있는, 조선 초기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고 있던 두 명의 인물, 수양대군과 김종서를 등장시켜 이들의 처절하고 치열했던 숨 막히는 권력다툼의 과정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내경은 역모의 집안으로 몰려 아버지와 신분상승의 꿈을 잃어버린 이후, 우연한 기회에 관상의 대가를 만나게 되면서,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인생의 향방을 알 수 있다는 관상쟁이로서의 초라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유일한 핏줄이 되는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입신양명을 위한 굳건한 의지를 불태우며 과거시험을 통해 그 출구를 찾으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경은 한양 내 유명한 기생이자 관상을 보는 연홍을 만나게 되면서, 이를 계기로 관상을 보는 자신의 재주를 이용해 권력을 쫓는 핵심세력에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되는 기회를 얻기에 이른다. 하지만 훗날 역사의 결과가 말해주듯, 피비린내 나는 이 엄청난 파국의 소용돌이에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달리게 되면서, 운명처럼 결국 그는 의외의 상황에 맞닥트리게 된다.


팩션이 추구하는 바가 그렇듯이,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고 흥미롭게 여겨졌던 부분은, 역사의 큰 흐름 속에 투영된 가공되어진 주인공 내경의 파란만장한 삶의 과정이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관상쟁이로서의 결코 녹녹치 않은 삶을 자신의 천직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주인공은, 두 가지 커다란 숙명적인 의미를 지니는 정신적 의무감을 자연스럽게 어깨에 짊어지게 된다. 그 한 가지는 자신의 눈앞에서 죄를 범하지 않았음에도, 역모라는 죄목으로 비참하게 죽어간 아버지에 대한 아들로서의 원한을 해결해야 하는 복수에 대한 일념과, 또 하나는 어미 없이 불우하고 어렵게 자란 아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아버지로서 행해야 하는 역할의 책무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의무는, 작가가 애초 의도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관상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파악할 수 있다는 그의 뛰어난 개인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결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갈등의 존재로 남는다. 작가는 이 부분의 결말 지점에서 주인공을 통해 파도만 보았지 바람을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홀로 독백하는 회한의 흐느낌으로 일단락을 짓지만, 한편으로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반드시 논리적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것처럼, 관상 역시도 관상학적 논리로만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의도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라는 역사의 단면에 관상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등장시켜, 그에 따른 한 인간의 안타깝고 흥미로운 삶을 적나라하게 살펴봄으로서,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들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 후기에서 보면, 시대를 달리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얼굴에서나마 그 성패와 그 존망을 엿보려는 인간의 욕망은, 과거나 오늘이나 변하지 않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는 점을 독자들은 유의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는 역사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작가 나름대로의 시각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관점에 비추어 이 작품을 감상해보는 것도 한편 괜찮지 않을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가졌었다. 우리 중 지금 누군가는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며 자신의 운명을 탓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과한 신념과 행동으로 주어진 인생의 테두리를 벗어난 엉뚱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과연 우리는 어디쯤에 걸쳐 오늘을 살아가는 것일까. 물론 그 선택은 바로 각자 자신의 몫이겠지만, 독자로서의 바람은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스스로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잠시 동안만이라도 고민해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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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죽기로 결심하다 - 어느 날 문득 삶이 막막해진 남자들을 위한 심리 치유서
콘스탄체 뢰플러 외 지음, 유영미 옮김 / 시공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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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의 사회가 점차 다양해지고 세분화 되면서, 그에 따라 개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경쟁들이 사회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횡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보면 삭막하고 고달픈 상황이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서, 저마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던지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무한경쟁의 결과가 어느 누구에게도 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왜냐하면 경쟁의 승자는 이후 패배하지 않기 위해, 패자는 차후의 승리를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현대사회의 대표적인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레스 누적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과 우울증의 확산은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에서 일지는 몰라도, 최근 방송은 물론이고 사회 여러 분야에서 힐링을 주제로 여러 유형의 프로그램들이 마치 유행처럼 우후죽순 번지고 있음을 본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개인의 단정적인 판단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의 현대사회가 안타깝게도 내부적으로는 그리 건강치 못함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은 남자들 보다는 여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증상으로 알려져 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의 여러 정신전문 의학 조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남녀의 비율을 보면, 여자가 남자 보다 대개 2-3배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다. 그러나 의학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그것은 단지 표면적인 것 일뿐, 지난 몇 년간의 통계 내용으로 볼 때, 실질적으로 남녀의 그 수치는 그리 큰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우울증에 따른 자살 빈도의 경우,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남성의 우울증이 이처럼 과거와 달리 점차 확대일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관심 있게 다루지 못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며, 또한 남성 우울증의 원인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남성 우울증 전문가로 알려진 세계적 권위의 정신의학자의 의견과 우울증을 앓았던 남성 환자들의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우울증은 이제 더 이상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과거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남성들의 우울증에 관하여 그 이유와 대책을, 더 나아가서는 남성들에게 진정한 삶의 행복에 이르는 조언을 함께 언급하고 있어, 독자들이 관심을 가져볼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남성 우울증은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보통 여성들의 그것과 다른 특징들을 보이며, 대개는 설마 나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스스로 자각 하지 못하는 사이에, 급격하고 심각한 위험의 상태로 진전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남성 우울증의 경우 그 원인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유전적 소질과, 과거 가정 내에서의 양육스타일, 또한 남성상에 대한 사회적 기대감과 같은 것이 그 핵심적 요소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요인들이 겹쳐지게 될 때, 인체 내 신경호르몬의 균형이 깨지고, 이후 수면과 식욕부진을 통한 신체의 직접적인 증상이 나타나며, 최종적으로는 모든 일에 의욕저하와 상실감에 빠지거나, 심지어는 자살에 이르는 극단적인 행동까지도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러 내용 중에서도 특히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주목해 볼 것은, 3,40대의 직장인들이 흔히 겪게 되는,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부양의 책임감 아래, 과중한 업무와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압박감에 의한 우울증이 최근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전통적인 남성상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인식 변화의 필요성이 의외로 적다라는 것이다. 더욱이 남성들은 여성들과는 다르게 대개 스트레스가 누적이 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의 도움이나 의사를 찾기보다 알코올에 의존하거나 도박과 같은 외부적인 것에 의존하여 이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많음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옳지 못한 스스로의 해결법은 단기적으로 임시방편이 될지는 몰라도, 그것이 중복되다보면 결국 가족해체는 물론이고 인생의 파멸이라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회 각 분야의 많은 저명인사들 중 상당수는 이미 우울증을 앓아왔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남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예로 볼 때, 결국 남성의 우울증은 인생의 성공자이든 실패자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우리 중 지금 누군가는 현재 우울증을 앓고 있음에도 스스로 자각 하지 못해, 마치 별거 아닌 것처럼 무시하고 넘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암이라는 질병은 인류에게 있어 치명적인 위험인자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은 말하기를 어떤 암이든 초기에 발견할 수만 있다면, 오랜 기간을 거치지 않고도 쉽게 완치된다고 하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우울증 역시, 초기증상의 발견과 치료가 중요함을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한다. 저자는 오늘날처럼 경쟁이 일반화 된 사회 속에서 남성들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고, 과거 남성들의 권위가 지금은 상당부분 약화되어있음을 감안하면, 남성들 중에 많은 이가 현재 우울증 치료가 절실함에도 전문적인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매우 안타까움을 전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저 무기력하게 방관하지만은 않는 회복탄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어느 누구든 자신의 인생에서 한두 번쯤은 때로 슬럼프를 겪고 절망에 빠지는 시련들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새로운 삶의 전환기를 맞이하는 이는, 우리주위만 잠시 둘러보아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이 막막해져가고 있음을 우연히 느꼈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러한 책을 통해 자신에게 무엇이 문제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 갈 것인가에 대해, 도움을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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