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접목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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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보면 조선의 개항 이후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까지의 과정은,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만큼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웠으며 참담했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 짝이 없는 암울의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의 강압적인 힘에 의해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식민지배 과정이 있었으며,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좌우익의 이데올로기적인 극렬한 대립과 분열이 횡행했고, 이후 6.25전쟁으로 남북이 갈라지는 민족의 아픔까지 그야말로 험난한 역사의 흐름에 놓여 왔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반세기도 채 되지 않는 짧은 혼돈의 시간의 이면에는, 지금까지도 쉽게 아물지 않는 우리만의 쓰라린 아픔의 후유증들이,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이 치유되지 않고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은 우리의 현대 문학사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고, 앞으로도 누군가에 의해 어떠한 방향으로든지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여러 작가들에 의해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아픈 역사의 속내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관찰되어왔고, 그들의 작품을 통해 심도 있게 논의 되어왔다. 더불어 독자들 역시 시대를 관통하는 이들의 대표작들을 통해 문학의 힘이 결코 녹녹치 않음을 인정해왔고 응원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대중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들이 늘어나면서, 현대사의 비극적인 아픔을 이해하고 그 안에 감추어진 진실이 무엇일까 하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에 다가서려는 노력들이, 예전과는 달리 점차 묽어져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금은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작품은 근현대사의 과정을 통해 나타난 우리 민족사의 모순적 문제를, 문학의 통해 그 근원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떠한 형태로 우리 사회에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던,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의 저자 조정래 작가의 단편모음집이다. 그의 작품 활동 기간으로 보면 아마 대략 중기쯤에 해당되는 시기에 발표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선집은, 그동안 겉으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모습과는 별개로 분단의 결과가 가져온 이산가족의 문제, 그리고 해방이후 좌우익의 갈등에 따른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점차 파괴되어가는 우리 인간사의 애환을, 다양한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다루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표지의 제목이 되는 그림자 접목 편에서는 6.25때 헤어진 가족의 슬픈 현실을 담고 있으며, ‘박토의 혼’ 이라는 작품은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온전했던 집안이 한순간 풍비박산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반면에 ‘시간의 그늘’이라는 작품의 경우는, 일제 치하와 해방이후 혼란한 시대의 기류를 틈타 기회주의적인 행동으로, 부와 권력을 얻은 한 인간의 추악한 과거를 풍자의 형식을 빌려 의미심장하게 다루고 있기도 하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작품 가운데 가장 임팩트 있게 다가온 것은, 손자세대의 입을 통해 어느 노인의 과거 기회주의적 행태를 나열하면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풍자의 요소를 곁들인 ‘시간의 그늘’ 이었지만, 한편 흥미로우면서도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던 것은, 마지막 편에 나오는 ‘길’이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실향민의 아픔을 현실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애잔한 마음의 여운을 불러일으킨다.


세계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 하면서 오늘 우리의 사회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한 목소리로 경제를 외치며, 모든 힘을 경제 회복에 쏟아 부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언제 우리가 경제 활성화를 외치지 않았던 때가 있을까 싶다. 과거에 비해 오늘 우리의 경제기반은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왔지만, 그 혜택은 재벌과 같은 극히 일부에게만 돌아가고, 서민의 고단한 삶은 과거나 지금이나 별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안고 있는 고통의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과거에 비해 더욱 차가워졌다고 말한다면 과연 이를 억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쯤에서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들 중 어떤 이는 결코 자신의 선택이 아님에도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가족의 이산을 겪어야 했고, 또 다른 이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손가락질을 받고 심지어는 물리적인 피해를 입기도 했던 사실들을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많은 피와 땀을 흘려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정착시켰고, 이후 꽤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나 정작 그 과정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처 입은 자들에 대한 관심은 점점 멀어져 가는듯하다. 이 작품은 과거 역사의 흐름의 무게에 억눌려 온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잘 묘사하여 그들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따라서 독자로서 바람은 아무쪼록 이러한 책을 통해서라도, 시대의 변화과정에서 남모를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잊지 말고, 우리가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다가서려는 노력들이 다시금 되살아났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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