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
모니카 마시아스 지음 / 예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몇 달 전 즈음인가 TV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동족에 의한 내전으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악화되면서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아프리카 콩고에서 가족을 이끌고 우리나라에서 난민의 지위를 얻은 후에, 힘든 삶을 이어가는 욤비씨 가족의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그들의 가족에게는 아무래도 여러 면에서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 낮선 땅이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적잖은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실 그들도 애초에는 자신들의 인생 속에 지금과 같은 난민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했을 것이라고는 아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욤비씨의 예에서 보듯, 세상의 일은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확실하게 돌아가며, 우리들 역시 그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어떻게든 맞추어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그러한 과정을 두고 어떤 이들은 절망과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인생을 포기하는 반면에, 또 다른 이들은 아무리 척박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이 눈앞에 맞닥트려진다고 해도 과감히 이를 딛고 일어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새로운 삶의 영역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는 점이다. 이 책은 위에 언급한 욤비씨가족의 경우와 유사해보이지만, 처해진 상황과 그 과정이 더 암울했던 가녀린 한 여성의 가혹한 운명의 이야기를 흥미로우면서도 감동적으로 담고 있다. 특히 그녀가 자신의 조국을 떠나 새로이 정착한 곳이 다름 아닌,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며 동토의 땅으로 불리기도 하는 북한이라는 곳이어서, 독자들의 입장에서 조금은 색다르면서도 특별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모니카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아프리카의 신생국인 적도기니라는 나라 대통령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뜻하지 않은 쿠데타로 아버지를 잃고 언니와 오빠를 따라 불과 8살의 나이로 정치적 망명에 의해 북한이라는 낮선 땅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이렇게 된 문제의 원인은 그녀의 아버지가 목숨을 잃기 전, 쿠데타로 인한 혼탁한 국내 상황을 우려해 국제적으로 정치적 동료였던 북한의 김일성주석에게 자신의 가족을 도와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띄웠기 때문이다. 어린나이에 그녀에게 있어 난생처음 겪어보는 군대식의 엄격하고 일방적인 북한의 생활방식은, 모국의 언어를 잊어버릴 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 그녀에게 있어 어떤 경우라도 이겨내야 한다는 의지를 키워준 계기로 여기게 된다. 또한 그곳에서 정치적 망명과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극히 제한적인 자유만이 허락되는 까닭에, 다른 세상과의 단절됨은 물론이고, 일관된 주입식의 사상교육으로 인해 우물 안 개구리식의 세계관에 갇히면서 한동안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으로 유학을 왔던 다른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그들이 전해주는 다양하고 생생한 정보들로 인해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지구촌의 세계로 눈을 돌리게 되면서, 그녀는 새로운 도전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만경인민대혁명 인민학교를 거쳐 평양공경대 피복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개혁과 개방을 내세운 중국의 자본주의사회를 직접 피부로 경험하게 되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자신의 조국으로 회귀하여 편안한 삶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또 다른 낮선 나라 스페인을 선택함으로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누구나 한두 번 정도는 스스로의 삶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러 이유들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뜻하지 않은 인생의 행로를 걸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가끔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정체성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심각한 상황 앞에까지 다다르기도 한다. 낮선 이방인으로 북한에 정착하여, 이후 중국과 스페인 그리고 미국과 한국에 이르기까지, 언어장벽과 이질적인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운 장애물을 뛰어넘어 쉼 없는 인생의 여정을 펼쳐온 저자는, 책의 내용을 통해 누구나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삶의 끈을 결코 놓지 말기를 강조한다. 그리고 정치도 이념도 자신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는 것이며, 위기의 상황에 처해 있을수록 스스로를 더욱더 신뢰하고 당당하게 현실에 부딪혀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애초의 목적은, 북한에 정착한 낮선 이방인의 삶은 어떠할까에 관한 호기심이 동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지나온 행적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그녀가 지내온 북한에서의 흥미로운 생활상 외에,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주변의 환경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어렵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려는 의지와 노력에 소박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를 잃고 낮선 이방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자, 한때 그녀는 스스로 운명의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그녀는 인생이란 혼자 묵묵히 만들어 가는 것이라 판단했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데 아낌없는 노력과 땀을 쏟아 부어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은, 16년이라는 기간 동안 북한에 머물면서 경험했던 그녀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우리들이 잘 몰랐던 북한의 이모저모와, 이후 바깥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인생의 과정을 독자들이 함께하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을 잠깐이나마 느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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