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관상 1~2 세트 - 전2권 - 관상의 神 역학 시리즈
백금남 지음 / 도서출판 책방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를 토대로 하여, 작가 특유의 창작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낸 것을 가리켜 우리는 보통 팩션이라 말한다. 그런데 픽션과 팩트를 혼합한 이 새로운 창작의 흐름은, 과거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작품이 담고 있는 주요 내용이나 결과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독자들에게 식상해 보일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팩션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즐거움, 즉 기존 역사의 세부 전개과정에 작가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상상력을 정교하면서도 치밀하게, 새롭고도 다각적인 내용으로 채워가고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문학을 대하는 이들에게 의외로 많은 호응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결과로 지금까지 <다빈치코드>나 <불멸의 이순신>등과 같은, 우리 눈에 익숙한 작품들이 국내외적으로 꽤 많이 발표되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볼 때 이러한 팩션의 등장은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그동안 장르소설을 즐겨왔던 독자들이 때때로 느껴왔던 권태로움을 일시에 해결해주는 일종의 방편으로 시도되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작품은 그러한 측면에서, 인간의 관상이라는 조금은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파란만장했던 조선왕조 권력다툼의 한 부분을 신선하고도 흥미진진하게 엮어내고 있기에, 기존의 여러 장르소설들을 통해 다소 건조함과 따분함에 지친 독자들이 있다면, 관심을 가지고 한번쯤 눈여겨 볼만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이 작품을 토대로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비교하여 살펴보는 것도 나름 괜찮을 듯하다.


우선 이 작품은 많은 독자들이 흔히 알고 있는, 조선 초기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고 있던 두 명의 인물, 수양대군과 김종서를 등장시켜 이들의 처절하고 치열했던 숨 막히는 권력다툼의 과정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내경은 역모의 집안으로 몰려 아버지와 신분상승의 꿈을 잃어버린 이후, 우연한 기회에 관상의 대가를 만나게 되면서,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인생의 향방을 알 수 있다는 관상쟁이로서의 초라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유일한 핏줄이 되는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입신양명을 위한 굳건한 의지를 불태우며 과거시험을 통해 그 출구를 찾으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경은 한양 내 유명한 기생이자 관상을 보는 연홍을 만나게 되면서, 이를 계기로 관상을 보는 자신의 재주를 이용해 권력을 쫓는 핵심세력에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되는 기회를 얻기에 이른다. 하지만 훗날 역사의 결과가 말해주듯, 피비린내 나는 이 엄청난 파국의 소용돌이에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달리게 되면서, 운명처럼 결국 그는 의외의 상황에 맞닥트리게 된다.


팩션이 추구하는 바가 그렇듯이,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고 흥미롭게 여겨졌던 부분은, 역사의 큰 흐름 속에 투영된 가공되어진 주인공 내경의 파란만장한 삶의 과정이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관상쟁이로서의 결코 녹녹치 않은 삶을 자신의 천직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주인공은, 두 가지 커다란 숙명적인 의미를 지니는 정신적 의무감을 자연스럽게 어깨에 짊어지게 된다. 그 한 가지는 자신의 눈앞에서 죄를 범하지 않았음에도, 역모라는 죄목으로 비참하게 죽어간 아버지에 대한 아들로서의 원한을 해결해야 하는 복수에 대한 일념과, 또 하나는 어미 없이 불우하고 어렵게 자란 아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아버지로서 행해야 하는 역할의 책무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의무는, 작가가 애초 의도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관상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파악할 수 있다는 그의 뛰어난 개인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결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갈등의 존재로 남는다. 작가는 이 부분의 결말 지점에서 주인공을 통해 파도만 보았지 바람을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홀로 독백하는 회한의 흐느낌으로 일단락을 짓지만, 한편으로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반드시 논리적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것처럼, 관상 역시도 관상학적 논리로만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의도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라는 역사의 단면에 관상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등장시켜, 그에 따른 한 인간의 안타깝고 흥미로운 삶을 적나라하게 살펴봄으로서,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들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 후기에서 보면, 시대를 달리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얼굴에서나마 그 성패와 그 존망을 엿보려는 인간의 욕망은, 과거나 오늘이나 변하지 않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는 점을 독자들은 유의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는 역사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작가 나름대로의 시각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관점에 비추어 이 작품을 감상해보는 것도 한편 괜찮지 않을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가졌었다. 우리 중 지금 누군가는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며 자신의 운명을 탓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과한 신념과 행동으로 주어진 인생의 테두리를 벗어난 엉뚱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과연 우리는 어디쯤에 걸쳐 오늘을 살아가는 것일까. 물론 그 선택은 바로 각자 자신의 몫이겠지만, 독자로서의 바람은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스스로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잠시 동안만이라도 고민해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