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인도 - 아무도 없는 그러나 누구나 있는 인도 잡화점
이상혁 지음 / 상상출판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자주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삶이 버겁다고 느껴지거나, 무언가를 갈구하고 싶은데 그것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을 때, 시간을 내어 일부러 재래시장을 돌아보거나, 5일장 같은 시골의 장마당을 구경하는, 일종의 습관처럼 여겨지는 비슷한 것이 내게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특별히 찾아볼 물건이나 구매하고 싶은 무엇이 있어서 가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그곳에 가는 이유는, 장터 안에 모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들의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그동안 나를 골치 아프게 했고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일들로부터 해방된 느낌이랄까 같은, 한결 가벼운 기분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여정이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잠깐 동안의 마실 같은 여정인데도 그 속에 생각지 못한 생활의 충전제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이제는 주저 없이 길을 나서게 될 때가 많다. 누군가는 말하기를 여행은 우리 영혼의 비타민이며 새로운 희망을 찾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그래서 여행은 아마도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바쁘게 살아온 누군가에게 행복한 휴식일 수도 있고, 살아갈 희망이 희미해졌다고 느껴지거나 혹은 문득 삶의 회의가 느껴져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는 사람에게, 인생에 대한 어떤 가치 있는 의미를 부여하고 계기를 마련해주는 기반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여건이라면, 이 책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진한 감동과 재미를 담은 여행 에세이로 대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인도여행을 통해 그곳에서 보고 느꼈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생경한 풍경을 토대로,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과 인문적 사유를 담은 에세이다. 인도라는 나라를 두고 누군가는 신비의 나라 혹은 성자의 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행환경과 그 편의성의 요소만 생각해본다면, 사실 인도여행은 여행자에게 있어서 그리 좋은 여행지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인도라는 나라로 여행지를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는듯하다. 그렇다면 여행자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배우기 위해 가려고 하는 것일까. 이 책은 바로 그 해답의 일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싶지 않나 싶다. 책 속에는 인도 사람들의 다양한 일상의 모습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이 단순한 에세이처럼 보이지만 않는 것은,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금 겸허하게 되돌아보게 하며, 더불어 진지하고 의미 있는 사색의 시간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인도의 곳곳을 돌며 그 안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그들에 힘겹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순박한 삶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고, 그와 연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어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사진 속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안에는 어떤 이념도 없고 사상도 보이지 않는다. 남들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도 없으며,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짓지도 않는듯하다. 그저 오늘 하루를 아무 일없이 무사히 보냈으면 하는 평화로운 일상만이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저자가 안내하는 시선에 따라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때로 우리가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순수한 감성들이 어느새 일깨워지고 있음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책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인도사람들의 생활상을 보면, 아무래도 여러 면에서 우리의 그것과 비교해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차이만큼이나 그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우리보다 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비례하여 행복은 증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하다보니 남루하고 초라한 생활을 영위해야 하고, 불편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조금은 어두운 모습일 것 같아 보이지만 사진이나 그들의 간략한 인터뷰를 통해서 나타난 그들의 모습에는 어떤 비애감이나 좌절감도 결코 느껴지지 않는다. 눈을 돌려 잠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자. 경제와 실용이 강조되어지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경쟁의 소용돌이에 내몰리면서 그 피곤함과 긴장감은 점차 확대되어 가는듯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일하는 덕택으로 과거에 비해 우리의 물질적 생활이 나아진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로부터 혹은 누군가로부터 힐링을 받아야 할 만큼,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지 않나 싶다. 이것은 그만큼 자신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가 적지 않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분명 독자들에게 마음 속 깊이 위안과 함께 의미 있는 힐링을 전달해 줄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타인의 삶의 자세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진정으로 배울 것인가에 있다. 지금 현재 자신의 삶이 왠지 불안하고 힘들게 느껴진다면, 자연에 순응하고 욕심을 절제하며 비움의 삶을 터득해가는 이 책속 인도인들의 삶에 모습을 조금만이라도 닮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간 도시 -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지금까지 도시 속에서 자라왔고 국내외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다양한 건축물들을 보면서 더러 아름답다거나 혹은 웅장함 내지는 화려함을 느끼기는 했어도, 건축물이 우리 생활에 무엇을 의미하고 있고 그 존재의 가치가 얼마만큼이나 될까를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건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것도 하나의 변명이 되겠지만, 도대체 건축물이 나와 무슨 커다란 연관이 있겠는가 하는 단순한 생각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점은 대부분 독자들도 아마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책을 읽으면서 얼핏 기억나는 건축물들을 생각해보니 도시 한 가운데 높이 솟아오른 고작 몇몇의 고층 빌딩과, 여행이나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 본 고적들이 전부인 듯하다. 물론 많은 건축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할만한 특별한 건축물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건축에 대한 평소 나의 무관심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거나 오래 각인될 정도의 건축물이 있기는 한 것인가 하는 다소 의문적인 시각도 한몫 거든다 하겠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일반적인 건축물들을 상세히 관찰해보면 그곳의 전반적인 사회문화가 어떤지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물과 관련한 우리의 현실은 어떠할까. 그리고 건축으로 본 우리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이 나는 무척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건축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에 더하여, 그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새삼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건축가로서 도시 곳곳에 들어선 건축물들을 살펴보면서, 그 소회를 고스란히 담아 기형적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는 우리 도시의 실제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음은 물론, 향후 우리의 도시가 갖추어야 할 건축의 그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어서 독자의 입장에서 이채롭기도 하고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 책 속에는 우선 도시의 구성체가 되고 있는 여러 건축물들의 실체를 소개하고 있고, 이어서 건축물로 이루어진 도시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고 있으며, 끝으로 건축물과 직접적인 관계에 놓은 건축가에 관한 이야기가 여과 없이 나타나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우리의 아파트 건축문화는, 인간의 삶에 질을 높이기 위한 어떤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고, 오로지 투기의 본보기가 되어버린 것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또한 교육의 본질을 고려한 건축양식은 보이지 않고 여전히 군사정권의 잔재가 남아 있는 학교의 모습이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질서하게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는 모텔과 같은 건축물들을 언급하면서, 우리의 사회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의 도시는, 하루빨리 인문학적 요소가 강조된 미래지향적인 도시로 탈바꿈되어야 함을 은연 중 강조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평화로운 도시라는 모토를 토대로, 노인이나 아이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된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라는 도시와, 빈곤과 낙후된 주변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라는 단위 구성의 방식으로 새로운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캄풍지역 등을 예로 들면서, 우리도 우리의 방식에 알맞은 새로운 도시계획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건축과 관련하여 이 책을 통해서 본 우리의 도시는, 여러 면에서 문제점이 노출되어 있음을 독자들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어느 날 불쑥 생겨난 일이 아니다. 건축은 도시의 형성 과정에서 자연이 따라오는 핵심적인 요소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도시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은, 그 동안 건축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옥의 예가 그렇듯이 우리에게는 선조들이 물려준 자연친화적이며 아름다운 멋을 살린 자랑스러운 건축물들이 많다. 그러나 근대 이후로 넘어와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전시행정에 의한 주먹구구식의 건축들이 많이 횡행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탈법적이고 좋지 못한 관행들이 이어져 오면서, 우리의 건축문화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건축은 애초 그 방향성이 잘못되면 도시의 발전은 기대하기는 힘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문제점들을 자각하고 조금씩 고쳐나가면서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우선 정부 스스로가 먼저 나서서 주도하고 이어 자치단체들도 함께 동참했으면 싶다. 물론 그 전제에 건설과 관련한 기업이나 우리의 인식도 달라져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더불어 우리의 건축인프라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우리의 건축이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서 이 책은 어느 독자들에게도 단순한 건축도서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건축물을 통해 우리의 사회와 문화를 통찰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우리의 사회가 건강하지 못한 그 이면에 건축의 문제점이 있음을 알게 해주는 유익한 교양서로 다루어졌으면 싶다. 그리하여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건축을 바라보는 인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그리고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축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은 보는 시각에 따라 추상적이고 관념적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생각할 때, 그것은 달콤한 것이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긍정적인 존재일 것이라고 상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사랑을 직접 대면하게 될 때, 그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고 의도했던 방향으로 항상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또한 사랑은 우리가 그토록 갈구한다고 해서 그 바람대로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사랑을 회피한다고 해서 사랑이 자신을 비껴나가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어느 날 문득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와, 때로 운명처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기도 하고,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사랑은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고,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그와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인생에 있어, 달콤한 추억이든 쓰라린 기억이든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가 한 두 개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말처럼 당신이 경험했던 사랑이 그것과 비교해 얼마만큼 유사함이 느껴지는가. 혹시 겉으로 보이는 사랑의 허상에 빠져 있음에도 그것을 모르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잠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소설은 사랑으로 진실한 인간관계를 이루어 가고 싶은 이들에게, 한편으로 사랑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당신에게 있어 사랑이란 어떤 가치를 지니며, 더 나아가서 진정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직시해야 하는지를 곰곰이 반추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독자의 눈길을 이끈다.


이 작품은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해보게 되는 남녀 간의 밀고 당기는 사랑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작품 속 이야기는 미혼인 두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무엇보다 독자의 입장에서 읽는 내내 조금의 지루함이 따분함이 느껴지지 않는 뛰어난 가독성이 눈에 띤다. 남부럽지 않은 집안배경과 타고난 미모를 지닌 외향적인 성격의 홍아, 그리고 방송작가를 꿈꾸며 백수로 살아가는 내성적인 스타일의 현수, 그녀들은 정반대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10년 동안 깊은 우정을 이어온 둘도 없는 친구사이다. 그러나 사랑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은 다르다. 홍아는 모든 남자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공주과에 가까우면서도,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면 때로 인스턴트적인 사랑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진 반면, 현수는 두 번의 연애경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차라리 독신을 선택하겠다는 일종의 열정적이면서 단편적인 사랑을 추구한다. 그녀들은 어느 날 PC통신 요리 동호회에서 채팅을 통해 정선이라는 한 남자를 알게 되면서, 이들 두 사람 사이에는 전에 없던 미묘한 긴장감과 함께 뜻하지 않은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재미있게 읽혀지는 것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사실감 있는 줄거리의 전개도 그렇지만, 중간 중간 캐릭터들 내면의 심리들을 파헤쳐 흥미의 요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에게로 서서히 동화되게 만드는 독특한 구성상의 흐름에 묘한 매력이 잠재되어 있기도 하다.


군더더기가 없는 간결한 문체에, 우리 주위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인터넷을 통한 우연한 남녀의 만남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줄거리의 전개 과정은 남자와 여자의 시각으로 각각 분류되어 서술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사랑에 대한 시각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독자들이 개별적으로 관찰해보면서 그 결과에 대해 이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고 스스로를 자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작가는 작품의 서두에서 피상적인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고독은 당연한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독자의 입장에서 작가의 말이 공감되는 것은, 오늘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들이 바로 그것과 대부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상처받기 싫어서 자신의 본질을 숨기고 사랑이 떠날까봐 사랑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며, 다른 외부적인 조건이 충족되어져야만 사랑을 고려하게 되는, 사랑의 내부를 먼저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것이 아닌 겉으로 드러난 표피만을 보면서 그것이 사랑이라 믿고 은연 중 합리화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도시는 오늘도 화려한 불빛과 형형색색의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그 안에 진정한 낭만과 아름다운 사랑을 찾아보기 힘든 하나의 고독한 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착한스프는 고독한 섬에 갇혀있다. 그리하여 전화를 받을 수 없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고독한 섬에 머물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거나 혹은 전화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프레드 로델 지음, 이승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 개입되어 있는 곳이라면 그 사회 속에 법이 있고, 법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회가 존재한다. 만약에 법이 존재하지 않는 어떤 사회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그 사회는 온전히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고 오래 존속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법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공동체라는 사회에 기반을 둔 법의 존재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정의를 실현하는데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사회적 가치를 사회구성원들에게 형평성에 맞게 고루 분배하여, 사회 전체에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법들은, 대체적으로 군주의 강력한 권력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며,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처럼 국가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치주의가 자리를 잡아가기까지의 시간은 그리 오랜 일은 아니다. 법은 그동안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어느 개인이 타인으로부터 불합리한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보호를 위한 일종의 사회제도적 장치로서 그 본연의 목적에 맞게 실행되어 왔다. 하지만 그 결과와 과정이 언제나 항상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법집행은 엄격하고 객관적이며 형평성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져야한다. 그러나 법에 위배되는 어떠한 사실에 대해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이를 적용하게 될 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판결 내용이 달라지기도 하며, 특히 법률가 개개인들의 가치관이나 이념과 같은 차이에서 오는 판결의 경우는 때로 비상식적이기도 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법체제가 안고 있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언급하고 있어, 독자들이 이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 않나 싶다.


저자는 책 속에서 우선 법이란 애초 추상적인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고, 법이라는 개념 역시도 일관되게 딱히 정의하기 힘든 모호한 면이 많아서 필연적으로 그 해석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런 연유로 법집행의 과정은 당연히 법관에 의한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며, 그렇다보면 결과적으로 법학은 사이비과학에 가깝고 오늘날의 법률가는 부족시대의 주술사와 다를 바 없다는 식의, 오늘 우리 사회의 법제도에 모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더불어 그는 지금까지 법률가들 대부분이 한목소리로 변함없이 주장해왔던,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분쟁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올바른 법체계의 축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이야기 대해 이는 궤변에 가까운 속임수라고 거침없는 논조로 일관한다. 그러면서 그는 법이 우리 사회에 유지 가능한 조건으로, 법은 우리 인간사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분쟁에 최소한의 수단으로 존재해야 하며, 법조문 역시 누구나 읽으면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으로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독자의 입장에서 독설에 가까운 그의 주장들을 읽다보면 한편으로 황당하기도 하고, 일부의 이야기는 억지에 가까울 정도로 공감하기 힘든 부분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이 다소 극단적이고 과격하게 보이기는 해도, 법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처지에서 보면, 그가 언급하고 있는 법제도와 관련한 여러 문제의 제기는, 단순히 넘겨버릴 수만은 없는 의미 있는 내용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만하다.


오늘날 법에 관한 여러 부분들이 시대에 맞추어 그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과거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법은 논리적으로 흠잡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또한 법조문은 어떤가, 지금도 그렇지만 법률가가 아니면 그 내용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단어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법적용도 마찬가지다. 같은 사안에 대해 어느 법률가는 합헌이라고 말하지만 또 다른 법률가는 위헌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중 누군가가 분쟁의 다툼에 당사자가 되어 법정에 선다고 가정해보자. 아마도 많은 비용을 들여 좋은 변호사를 고용한 경우와 그렇지 않았을 때, 이전의 여러 선례들을 생각해보면 판결내용은 결코 똑같지 않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그동안 사법부가 취해온 자세를 돌이켜보면, 우려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다. 그래서 법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목적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내용들과 관련한 문제는 분명 어떤 방법으로든 개혁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일부 법학자들이나 법률가들이 법과 관련한 보수적이며 형식적이고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 비판의 시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처럼 법이 오로지 법률가들만의 전유물로 간주되기보다,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적인 차원에서 법의 운용이 가능할 수 있도록, 우리의 자세와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깊이 되새겨봐야 하는 부분이다. 누구도 법위에 군림할 수 없으며,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한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경우에라도 실현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 법률가들 스스로도 자성하는 노력을 보여야하겠지만, 다른 무엇보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법의 맹점들을 우리가 먼저 제대로 보고 이를 보완하게끔 그들에게 촉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슈퍼피쉬 - 물고기로 보는 인류문명사, KBS 글로벌 대기획 다큐멘터리
송웅달 지음 / 페이퍼스토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인류의 역사에서 물고기가 식량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찾아 허기를 채울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쉽고 더 많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지금까지 다양한 도구들과 기술들을 개발해왔다. 그러나 만약 애초 물고기라는 존재가 없었다고 생각해보면, 인류의 역사는 분명 상당부분 달라졌을 것이다. 지구의 70%는 대부분 강과 바다로 채워져 있고, 인간은 그 안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생존에 생존을 거듭해왔다. 이는 물고기가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하나의 식량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물고기와 인간이 함께한 오랜 세월의 과정들을 들여다보면, 어쩌면 물고기는 우리에게 있어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존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오늘날 인류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물고기와 인간과의 지나온 관계들을 살펴보면서, 새로운 관점에서의 인류문명사를 들여다보고 이를 고찰하고자했다. 책 속에는 지금까지 인간이 물고기 사냥을 위해 이용해왔던 다양한 기술적 방법과 그 문화를, 그리고 채집된 물고기를 어떻게 하면 오래 동안 보관하고 먹을 것이며, 어떤 흐름을 거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애호하는 음식이 되었는지 그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더 나아가서는 물고기가 현재 우리에게 주요한 식량자원으로 존재하지만, 언제 어느 때 갑자기 고갈될지 모를 일이어서 이에 대한 문제까지를 깊이 고민하기도 했다. 이 책은 재작년 여름, TV 다큐프로그램 슈퍼피쉬라는 타이틀을 달고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당시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에게는 그때의 감동과 환희를 다시 느껴보았으면 싶고, 혹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없었던 독자들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의 인류 문명사를 들여다보았으면 싶다.



과거 원시시대에서의 물고기 채집은 단순하기도 했지만, 그 범위도 넓지 않았다. 그러나 범선의 발전과 더불어 어획에 대한 획기적인 여러 기술들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은 이전에 비해 많은 어종들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일부의 나라들은 여전히 기후나 지형적인 문제로 인해, 물고기를 접하는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물고기를 잡는 그 나름대로의 방법은 존재했다. 아프리카의 대륙내부에 광활하게 펼쳐진 사하라 사막지대 인근에 말리라는 나라는, 건조기후에 속해 자연스럽게 물이 귀할 수밖에 없음에도, 물고기 채집과 관련한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가 존재한다. 이탈리아 서쪽 사르데냐 지방의 경우 산란을 위해 이 지역을 지나는 참치를 잡기 위해, 3000년 전부터 사용해왔던 함정그물을 이용한 마탄자라는 사냥법을 이용한다. 그런데 물고기 어획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모두 행해지고 있지만, 대개 후진국의 경우 자급자족을 위한 것이 많은데 비해, 부유한 나라일수록 경제적 이득을 위한 상업적인 것이 특징이다. 물고기의 사냥은 육지에서의 사냥보다 쉽고 한꺼번에 많이 잡을 수 있지만, 반면에 금방 썩어버리는 이유로 보관에 어려움이 많았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인간은 물고기 저장에 관한 새로운 방법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방법으로 햇볕이나 바람을 이용해 물고기를 건조시키거나, 절인 생선을 뜨거운 연기로 그슬려서 익히는 훈제, 그리고 소금물에 절여서 저장하는 염장의 방법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물고기를 염장하는 방법의 경우, 이집트에서 시행되었던 미라를 만드는 절차와 유사해서 아마도 이들 간에 서로 어떤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중세 이전만 해도 유럽의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물고기보다 육식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럽 전역에 걸쳐 생선이 크게 환영받았던 이유는, 종교적인 영향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그들은 신앙적 이로움을 위해 육식을 금지하고 고행의 방편으로 생선을 먹어야 했는데, 특히 사순절 기간 동안은 법으로 정할 만큼 엄격하게 시행되었다고 한다. 이후 가톨릭의 교세는 날로 확장되었고 이에 따라 육식을 금하고 생선을 즐기는 풍습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결국 생선에 대한 수요는 자연스럽게 많아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지금도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의 수도원을 가보면 이러한 생선수요에 대비해 그 내부에 설치된 양식장들을 볼 수 있다. 생선과 관련한 많은 요리들이 있지만 그 중 한 가지는 바로 생선회다. 그런데 대부분 이 음식의 문화가 일본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음식은 원래 중국에서 시작 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6세기경 공자는 날생선를 가늘게 져미어 양념에 추가해 즐겨먹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당시의 중국은 생선회가 일반적인 음식이었음을 추측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음식문화는 16세기 이후 유채꽃이 대량으로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유채기름을 이용한 또 다른 형태의 음식으로 변화되었고, 거꾸로 일본은 이런 문화를 받아들여 오늘날 세계적인 음식이 되고 있는 스시의 나라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매일 매일 허기를 달래기 위해 음식을 섭취한다. 그런데 오늘 당신의 식탁위에 올라오는 여러 음식 중에, 혹시 생선요리가 올라온 적이 있지 않던가. 아마도 그 종류가 각기 다를 수는 있겠으나,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매일 먹는 하루의 식사 중에 적어도 한번쯤은 생선을 섭취했으리라 싶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문제로 국내의 생선 소비량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뿐 생선에 대한 수요는 조만간 원래대로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의 통계수치에 따르면, 그동안 무자비한 남획으로 일부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어종의 보호를 위한 여러 조치들이 취해지면서, 어획량이 다소 감소추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바다에서 얻는 수산자원은 연간 대략 1억 톤 가까이 된다고 한다. 더불어 전 세계 1인당 연간 어류 소비량은 17kg정도로, 식량으로서의 어류에 대한 의존도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포식자로서 인간은 생존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오래전부터 수렵활동을 해왔고, 이러한 행위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동안 물고기를 잡는 수고스러움을 생각하면서도, 정작 인간의 삶과 역사를 지탱해온 그 밑바탕에 물고기들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잊고 살아간다. 또한 날이 갈수록 고갈되어가는 물고기 자원에 대해 어떻게든 이를 오래도록 유지하려는 노력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모든 생선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식탁은 그만큼 초라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를 대체할 자원을 찾는데 또 수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그들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우리는 모색해야만 한다. 그동안 물고기가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 것처럼, 그리고 인간의 삶에 일부분을 변함없이 지탱해준 것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