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은 보는 시각에 따라 추상적이고 관념적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생각할 때, 그것은 달콤한 것이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긍정적인 존재일 것이라고 상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사랑을 직접 대면하게 될 때, 그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고 의도했던 방향으로 항상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또한 사랑은 우리가 그토록 갈구한다고 해서 그 바람대로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사랑을 회피한다고 해서 사랑이 자신을 비껴나가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어느 날 문득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와, 때로 운명처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기도 하고,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사랑은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고,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그와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인생에 있어, 달콤한 추억이든 쓰라린 기억이든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가 한 두 개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말처럼 당신이 경험했던 사랑이 그것과 비교해 얼마만큼 유사함이 느껴지는가. 혹시 겉으로 보이는 사랑의 허상에 빠져 있음에도 그것을 모르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잠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소설은 사랑으로 진실한 인간관계를 이루어 가고 싶은 이들에게, 한편으로 사랑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당신에게 있어 사랑이란 어떤 가치를 지니며, 더 나아가서 진정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직시해야 하는지를 곰곰이 반추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독자의 눈길을 이끈다.


이 작품은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해보게 되는 남녀 간의 밀고 당기는 사랑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작품 속 이야기는 미혼인 두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무엇보다 독자의 입장에서 읽는 내내 조금의 지루함이 따분함이 느껴지지 않는 뛰어난 가독성이 눈에 띤다. 남부럽지 않은 집안배경과 타고난 미모를 지닌 외향적인 성격의 홍아, 그리고 방송작가를 꿈꾸며 백수로 살아가는 내성적인 스타일의 현수, 그녀들은 정반대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10년 동안 깊은 우정을 이어온 둘도 없는 친구사이다. 그러나 사랑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은 다르다. 홍아는 모든 남자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공주과에 가까우면서도,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면 때로 인스턴트적인 사랑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진 반면, 현수는 두 번의 연애경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차라리 독신을 선택하겠다는 일종의 열정적이면서 단편적인 사랑을 추구한다. 그녀들은 어느 날 PC통신 요리 동호회에서 채팅을 통해 정선이라는 한 남자를 알게 되면서, 이들 두 사람 사이에는 전에 없던 미묘한 긴장감과 함께 뜻하지 않은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재미있게 읽혀지는 것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사실감 있는 줄거리의 전개도 그렇지만, 중간 중간 캐릭터들 내면의 심리들을 파헤쳐 흥미의 요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에게로 서서히 동화되게 만드는 독특한 구성상의 흐름에 묘한 매력이 잠재되어 있기도 하다.


군더더기가 없는 간결한 문체에, 우리 주위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인터넷을 통한 우연한 남녀의 만남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줄거리의 전개 과정은 남자와 여자의 시각으로 각각 분류되어 서술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사랑에 대한 시각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독자들이 개별적으로 관찰해보면서 그 결과에 대해 이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고 스스로를 자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작가는 작품의 서두에서 피상적인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고독은 당연한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독자의 입장에서 작가의 말이 공감되는 것은, 오늘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들이 바로 그것과 대부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상처받기 싫어서 자신의 본질을 숨기고 사랑이 떠날까봐 사랑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며, 다른 외부적인 조건이 충족되어져야만 사랑을 고려하게 되는, 사랑의 내부를 먼저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것이 아닌 겉으로 드러난 표피만을 보면서 그것이 사랑이라 믿고 은연 중 합리화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도시는 오늘도 화려한 불빛과 형형색색의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그 안에 진정한 낭만과 아름다운 사랑을 찾아보기 힘든 하나의 고독한 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착한스프는 고독한 섬에 갇혀있다. 그리하여 전화를 받을 수 없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고독한 섬에 머물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거나 혹은 전화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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