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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간한 밀실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추리나 미스터리를 소재로 다룬 장르작품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아마도 히가시가와라는 작가를 기억할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 작가의 대표작품으로는 ‘수수께끼는 저녁식사 후에’ ‘밀실을 향해 쏴라’ 등 여러 작품들이 이미 국내에 소개되어 많은 독자들에게 관심과 주목을 받은바 있어서,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은 작가로 자리 잡고 있는듯해 보인다. 그런데 이 작가의 작품은 여타의 추리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여러 면에서 조금은 독특한 스타일을 자랑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미스터리나 추리물을 생각하면서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작품 속 사건을 중심으로 시종일관 긴장감이 느껴지는 스릴이나, 사건 내부에 장치되어 있는 놀라운 트릭의 형태, 혹은 결말부분에 가서 펼쳐지는 반전의 묘미 같은 장르의 주요 요소들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는 작품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작가는 그런 작품들과는 달리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되, 그 분위기가 엄숙하다든지 아니면 강렬한 임팩트를 주는 무언가가 있어 독자들에게 각인시켜주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코믹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문체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작품을 읽는 이로 하여금 웃으면서도 추리를 즐길 수 있다는, 일종의 추리를 대하는 독자들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의 작품을 두고 추리의 외적 부분이 너무 가벼운 나머지 추리를 읽은 것 같지 않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기도 하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어떤 분야의 책이든 그 내용도 좋아야 하겠지만 우선 되어야 할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 재미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특히 장르분야의 작품의 경우에는 이 부분이 특히 더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이 작품도 그런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좋을듯하다.
책의 제목으로 보아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밀실에 관한 아니면 밀실과 연관된 내용만을 주로 다루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 내용은 밀실을 포함한 여러 추리물이 함께 담아져 있어 다양한 추리의 내용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그리 길지 않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무래도 장편추리물을 읽었을 때의 느낌처럼 그 흐름이 길지 않아, 일부 독자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모두 5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추리에 관심이 많은 ‘나’ 라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실제 사건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인물은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하는 야마네에 의해서 사건의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작품 속의 첫 번째 단편은 밀실에서의 사건을 다룬 것으로 입구가 닫혀있고 사방이 철조망으로 높게 둘러쳐진 테니스장에서 발생한 미스터리의 내용이 펼쳐져 있다. 두 번째는 주인공의 대학 친구가 의뢰를 부탁한 사건인데, 남쪽 섬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 친구가 겪게 되는 의문의 살인사건이 전개되어 있는데, 이 단편은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논리 정연한 추리의 설명이 돋보인다. 세 번째는 20미터가 넘는 대나무에 매달린 노파의 시신을 두고, 자살인지 아니면 타살인지를 추론하는 사건인데 생각만큼의 기대치는 낮아 보이는 단편으로 여겨진다. 그 다음으로는 10년 전 자신의 아버지가 특별한 이유 없이 자살해버린 일과 관련하여, 그 과정에 무언가 석연치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 딸이, 당시의 사건을 재추적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 단편은 밀실사건과 더불어 건물이 갑작스레 소실되어버리는 트릭이 장치되어 있어 눈길을 이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맨 마지막에 소개되어 있는 단편은 쓰루야 라는 식당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폭행 절도 사건을 다루었는데, 정황상 모든 용의자의 알리바이가 존재함에도, 이를 깨트리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나타나 있어 눈길을 이끈다.
오래전에 우연하게 히가시가와의 작품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그의 작품이 새로이 등장할 때 마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을까 하는 자연스런 호기심이 은연 중 앞서게 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소개되고 있는 그의 작품을 생각할 때, 익살스럽고 코믹한 이야기의 전개는 여전히 재미있게 느껴지지만, 이전작품에서 다루어 왔던 것처럼 나름 신선하고 특이할 만한 추리의 내용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이번 작품 역시도 끝에 나오는 단편의 내용을 제외하고는 주목해볼 만한 추리는 없지 않았나 싶고, 일부의 경우 추리치고는 조금은 과장되거나 억지스럽게 보이는 것도 있어서 기대이상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갖는 묘미는 아무래도 기존의 여러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를테면 인물이나 사건의 배경에서 으레 보이는 자질구레한 군더더기식의 설명을 가급적 배제하고, 오로지 사건과 사건해결에 관한 논리적 추리의 과정만을 담백하게 담아내어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지루하거나 따분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의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체로 인해, 작품을 읽는 도중에도 어느 부분에서 폭소가 터져 나올지 알 수 없는 즐거움을 더해주는 매력이 잠재되어 있음을 독자들은 감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이번 작품의 특이점으로는 작품 속에 소개되어 있는 모든 사건은 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나 신문이나 글로 인용된 내용을 토대로 사건을 해결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논리적인 측면이 두드러진 점도 눈에 띤다. 따라서 이 작품은 밀실사건에서부터 다양한 트릭이 설정된 여러 사건을 모아 치밀한 논리의 전개를 펼치고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추리의 재미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