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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호텔 - 영혼과 심장이 있는 병원, 라구나 혼다 이야기
빅토리아 스위트 지음,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자본주의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로만 해석하여 바라본다거나 혹은 그것에 너무 얽매이려는 자세는 조금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본주의가 다른 어떤 체제보다 우리 사회의 여러 관계에서 파생되는 많은 문제점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자본주의를 극복할만한 다른 특별한 대안이 없다는 점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의 공감을 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본주의가 낳은 여러 병폐들 역시 만만치 않기에, 자본주의를 모든 문제의 해결을 풀어 가는데 하나의 표준이나 기준점으로 삼으려는 일방적인 논리는 우려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의료나 철도와 같은 공공의 분야에 대한 민영화의 필요성이 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듯해 보인다. 철도도 그렇지만 의료와 관련하여 자본주의 원칙에 따라, 적은 돈을 투자해서 최대한의 효과를 얻기 위한 자본의 효율성제고라는 점에서, 현재 불거지고 있는 공공 분야의 여러 가지 취약한 문제점, 이를테면 낮은 의료수가와 같은 문제의 부분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대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공의 분야를 무조건적 자본주의 시장의 기능에 맡겨 국민 모두를 위한 공공성이 조금이라도 훼손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이는 고려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바로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서서히 점화되어 가고 있는 의료민영화와 연관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의료행위에 대한 본질이 무엇인가를 통찰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국가주도의 공공의료정책 대한 중요성이 얼마나 가치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어서, 주목해 볼만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미국 최후의 빈민구제소이며 신의 호텔이라고 알려져 있는 라구나 혼다라는 병원에서, 20년을 넘게 의료 활동을 해온 한 여성 의사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경제논리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의료현실의 문제를 솔직담백하면서도 생생하게 픽션의 형태로 회고하고 있어 눈길을 이끈다. 저자는 자신이 의사를 선택하게 된 계기를, 의료라는 것이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선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며, 권력이나 명예나 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대등한 관계로 만날 것을 요구한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그녀는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되거나 혹은 만성질환으로 오래 동안 앓아왔음에도, 보호자도 딱히 없고 오갈 곳이 없는 환자로 가득한 라구나 혼다병원에서 애초 오래 동안 일할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다. 하기야 여러 면에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이곳에 오래 근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곳은 그녀의 의사생활에 있어 20년 이상의 소중하고 의미가 있는 의료현장이 되었고, 다른 무엇보다 인간 중심의 진료과정을 손수 체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이 책을 통해서 밝히고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라구나 병원은 애초 설립 목적이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방편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주정부의 세금으로 운영되며 환자에게는 아무런 비용의 의무가 없는 일종의 무료병원인 셈이다. 그리고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 주립병원과 함께 이런 병원을 운영해왔다고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본주의에 의한 경제논리로 병원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버렸고, 그녀가 일했으며 당시 미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라구나 혼다 마저 그러한 시류에 편입 되어가고 있음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토로하고 있기도 하다.
라구나 병원은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급여나 근무 환경 조건에서 큰 장점이 있는 곳은 아니어서, 의사들이 처음 이곳에 오는 경우 자신의 커리어나 임상을 목적으로 대개 잠시 머물다 가기 위해 들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의 의사 대부분은 자신들의 애초 의도와는 달리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20년 이상 스스로의 의지로 장기근무를 하게 일이 흔하게 벌어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많은 의사들은 어떤 이유로 이곳에 머무르게 되는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근거로 라구나 병원이 노후하고 첨단의료기기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러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의사들이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환자들과 접촉하여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들로부터 환대와 자선의 정신을 배우게 되고, 공동체와 헌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데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더불어 환자들의 경우에도 가급적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치료를 배제하고, 육체와 정신을 아우르는 인간 중심적인 치료를 우선으로 한 결과 그 회복가능성이 높았다고 한다. 또 하나 이 책에서 우리가 유의할 만한 것은, 적은 예산의 편성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치료효과의 결과를 보이고 있는 ‘라구나 혼다’와 같은 병원들이 그동안 관리의 편의성과 자본의 효율성 문제로 이제는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오늘날 미국의 의료정책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와 연관하여, 요즘 우리사회에 이슈가 되고 있는 의료민영화와 비교해 음미해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이곳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다양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환자를 대하는 의료인들의 치료인식의 문제를 그리고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의료문제가 고려되지 않는 채, 획일적이고 안이하게 펼쳐지고 있는 미국 주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에 아쉬움을 표하면서, 의학과 의료시스템의 새로운 혁신이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는데, 이 내용은 우리의 의료현실을 생각할 때 상당부분 공감이 되지 않나 싶다. 결국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의료민영화가 점차 가시화 되는 시점에서 공공의료에 대해 지금보다 나은 의료의 접근성과 진료의 질적인 문제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올바른 인식과 관심이 다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