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이탈리아의 남서부에 위치한 폼페이 유적지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마도 꼭 한번은 들러보고 싶은 장소로 자주 거론되곤 한다. 그것은 그동안 교과서로만 보아왔던 그리스·로마 시대의 다양한 생활상과 독특하고 수려한 그들만의 문화를 감상해보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폼페이와 관련하여 다양하게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대해 실제 유적을 확인함으로서 그 세부내용을 어느 정도 가늠해보고 싶은 일종의 호기심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많은 독자들이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시피 고대 도시 폼페이는, AD79년 베스비우스의 거대한 화산이 폭발한지 불과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한때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의 위용을 자랑하던 그 모습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비운의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시는 화산폭발이 진행된 후 무려 천 오백년 동안 매몰되어 있다가, 16세기말에 이르러서야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이후 시작된 유적발굴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 이라고 한다. 순식간에 2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참사의 목격담은, 당시 미네눔의 로마 함대 사령관이었던 플리니우스의 죽음에 대해서 묻고 있는, 그의 조카 타키투스에게 쓴 2통의 서신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이 소설은 그 내용을 기초로 하여 작가의 상상력이 적절하게 가미된 역사팩션이라고 할 수 있을듯하다. 그런데 독자의 입장에서 이 작품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내용이 치밀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사실성이 뛰어나면서도, 개연성 있는 줄거리의 전개와 더불어 장르작품이 지니는 여러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서 역사팩션으로서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폼페이가 화산폭발에 의해 그 모습이 사라지기 전후 4일 간의 과정을 마치 영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리얼한 묘사로 흥미롭게 그려냈는데, 평화로웠던 일상이 화산으로 인해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아비규환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어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 속으로 점차 동화되게 만드는 것이 우선 눈에 띤다. 작품 속 이야기는 전임 로마 수도교의 기사였던 엑솜니우스라는 인물이 갑작스런 의문의 실종으로 주인공 아틸리우스가 새로이 그 자리에 부임되면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수원지 확보를 위해 지하수를 찾던 중에, 코렐리아라는 한 여자로부터 급한 도움을 요청받고 길을 나서게 된다. 도착한 곳은 한때 노예였다가 예전 폼페이의 지진을 계기로 엄청난 갑부가 되어버린 암플리아투스라는 사람의 집이었는데, 그곳 양어장에서 물고기가 때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원인이 바로 유황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자신이 관리하던 수도교의 저수조에서도 같은 성분이 검출되었고, 평소와는 달리 수압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음을 확인한 후, 이를 위한 시급한 조치의 필요성을 깨닫고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선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수도교와 관련한 전임자의 막대한 비리와 부정을 발견하게 되고, 또한 지하 지반이 융기되는 현상으로 보아 조만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결국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화산의 폭발은 일순간에 이루어졌고, 영원할 줄 알았던 폼페이는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며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이 작품은 스토리의 전개과정도 무척이나 흥미롭지만, 등장하는 여러 특징적인 인물들을 통해 우리사회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반추해보게 하는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독자들이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폼페이라는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상의 모습을 담아 놓았는데, 그 인물 하나하나의 행동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보는 것 같아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그들이 펼쳐내는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다소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작품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관련해서, 코렐리아라는 여성을 등장시킴으로서 주인공과의 애틋한 남녀관계를 설정해놓아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 조금은 이채롭지만, 그보다는 사전에 비교적 역사의 고증이 잘되어 있어서인지 몰라도 배경의 묘사나 당시 시대의 생활상을 독자들이 유추해볼 수 있을 만큼 그 내용이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는 점이 눈에 띤다. 특히 화산폭발이 발생한 직후, 폼페이가 급격하게 아수라장으로 변모되어가는 장면은 이 작품의 압권이라고 할 만큼 인상적이어서 그 잔상의 여운을 독자들이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 작품과 연관하여 새로운 내용으로 각색된 영화 폼페이가 만들어져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정작 영화를 관람한 이들의 후기를 보면, 기대 이하의 그리 썩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지 않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 작품이 해외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음을 굳이 근거로 두지 않더라도, 많은 독자들에게 영화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감흥의 시간을 충분히 선사해 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또한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의 이면에,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이 얼마나 무모하고 잘못된 일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점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눈여겨 볼만한 부분으로 여겨지기에,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름 괜찮은 선택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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