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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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 내면에 근원적으로 고독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어, 누군가의 말 한마디나 사소한 몸짓 하나가 때로는 우리 자신을 규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의미로 남을 수 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느낀 것은 분명 소설을 읽은 것은 맞는데, 내가 한편의 시를 읽을 것인지 아니며 에세이를 본 것인지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로, 작품에서 풍겨지는 뉘앙스가 딱히 무엇이라고 고정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색채를 띠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책의 전개 내용이 현실에서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남녀 간에 터부시될 만큼 금기에 가까운 이야기임에도, 그것이 생각만큼 외설적이지 않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찌 보면 내게 있어서 등장인물들을 통해 연약한 인간에 대한 연민의 감정에서 오는 슬프고도 애틋한 분위기를 공감할 수 있었듯이, 문학이 주는 폭넓은 감상의 지면을 넓혀주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에 더하여 작품 속 줄거리의 내용이 어떻게 보면 다소 껄끄러울 수도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형용하기 힘든 어떤 괴리감이 지배적으로 다가오는 그런 느낌보다는, 제목에서처럼 어디에선가 문득 바라본 소소한 풍경의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감정의 전이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그의 작품 은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이야기의 흐름이 왠지 위태로운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에 마음을 움츠리게 될 때가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말부분에 들어서면 혹시나 했던 그런 우려감은 어디로 사라지고,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의식이 어느새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독자들도 이 작품을 그러한 관점에서 접근해간다면 기대했던 것 이상의 흥미로운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작품 속 이야기는 소설가로 등장하는 주인공이 그의 제자 ‘ㄱ’ 에게 자신의 집 우물터에서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전개된다. 'ㄱ‘ 은 한때 자신의 첫사랑인 남자와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꿈꾸었지만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자의 모습에 실망을 느끼고 이혼을 결심한 후, 자신의 부모가 거주했던 도시의 외곽지역에 위치해 있는 ’소소‘ 라는 마을로 내려와, 가시를 곧추세운 선인장에 흠뻑 빠져 이를 키우며 정적인 생활을 즐기며 홀로 지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자신의 집 근처 다세대 주택에서 쫓겨난 유랑자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ㄴ'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얼마지 지나지 않아 탈북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ㄷ’ 이라는 여성과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ㄱ'의 집에서 살아가는 게기를 마련한다. 그런데 이들 모두에게는 저마다 자신의 가족사에 관하여 기구한 과거의 슬픈 사연을 안고 있다. 그리고 누구도 그러한 과거사를 겉으로 드러내놓고 있지 않았음에도 그것이 일종의 그들에게는 공통적인 모티브가 되었을까, 세 명의 남녀는 서로 사랑을 나누는 묘한 관계에까지 이른다. 그럼에도 이들은 상대방에게 결코 사랑을 강요하지 않으며, 보통의 남녀 간에서 보이는 사랑으로 인한 질투나 집착 같은 점을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사랑의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ㄴ' 죽음으로 깨어져 버리면서 기존의 어떤 감정도 허락하지 않은 채, 애초 각자 자신이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이질적인 존재이면서도 완벽한 공동체를 이루는 세 남녀의 특별한 이야기가 마치 서정적인 풍경처럼 고즈넉하게 펼쳐져 있는데, 그 안에 사랑과 이별, 욕망과 고독, 삶과 죽음이라는 서로 대비되는 소재를 흥미롭게 엮어져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문학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인간이 지닌 내면적 본능의 세계를 문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예리한 시각으로 파헤쳐 이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독자들에게 마련해 주는 것이, 어쩌면 작가로서 가져야할 하나의 역할이자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같은 내용을 두고도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할 것인가에 따라 나타나는 그 간극의 차이는 좁힐 수 없을 만큼 너무 크기 때문인데, 특히 겉으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성에 관한 문제의 경우는 누구에게나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소재여서 그 정도가 더욱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과 관련하여 매년 파격적인 사회 문제의식의 내용을 담은 굵직굵직한 작품을 발표한 작가에 대한 고착화된 기억때문인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이 작품에도 무언가 무거운 주제를 담아내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예상했던 대로 크게 빗나가지 않은듯하다. 작가는 은교라는 작품에서 인간의 본능에 기인한 욕망의 일면을 적나라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주목받은 바 있는데, 이 작품 역시도 줄거리는 다르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그와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사실 이 작품도 그 내용면에서만 판단해 본다면, 은교라는 작품이 그랬듯이 적잖은 논란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먼저 고려하고 판단해야 할 것은, 작품 속 인물들의 표피적인 행동에 주목하기 보다는, 그들이 안고 있는 내면의 심상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새로이 인식하고 깨달을 것인가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남녀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사랑이라는 통상적인 감정에서 조금 벗어난, 도덕적인 가치의 문제와 상충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부분이 작가에 의해 얼마든지 문학화 되어 새로운 관점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독자들이 살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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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읽다 - 역사와 삶의 고비마다 고려를 지키고 빛낸 문장들
이혜순 지음 / 섬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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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에게서 한마디의 말과 그리고 문장을 통해서, 문득 삶의 지혜를 얻기도 하며 인생에 있어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나대경은 자신의 수필집 학림옥로에서 작고 날카로운 쇠붙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의미로, 짧은 경구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촌철살인 이라는 고사를 남긴바 있다. 이 말에서 보듯 무릇 좋은 글이란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것을 넘어 때로 중요한 삶의 지표로 간주된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동북아의 국제적인 관계 속에서 다양한 갈등을 겪어야만 했는데, 특히 고려시대의 역사 내용을 보면 국가의 안위가 위협을 받는 여러 차례의 위기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고려왕조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무려 5백 년이라는 기나긴 한 시대를 풍미해왔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했던 바탕위에는 다른 무엇보다 고려의 정치사상적 기반이 된 지식인들의 열정과 사유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이유의 연장선상에서 다사다난했던 고려의 시기에 왕조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그 토대가 되었던 당시 사대부 문장가들이 서술했던 글을 집중조명해보고, 그들이 남겨놓은 글을 통해 오늘의 시각에서 그 내용에 담긴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보고자 했다. 사실 그동안 역사와 관련한 많은 책들이 조선시대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책은 당시 고려시대의 정치 사회의 전반적인 부분을 독자들이 고루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조들이 남긴 다양한 형태의 수려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는 명문장을 관찰함으로서, 오늘을 살아가는데 있어 자신의 인생에 보탬이 될 유의미한 지혜와 교훈을 배우는데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에는 고려시대의 많은 문장들 가운데에서도 독자들이 한 번 쯤은 주목해볼만 한 명문들을 선별하여, 그 내용에 담긴 당대 인사들의 삶과 의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안에 수록된 모든 글들은 단순히 문학적인 평가에 국한한 것이 아닌, 정치, 외교를 포함하여 종교의례, 개인적인 편지나 묘비에 적힌 내용에 이르기까지, 글을 남긴 사람들의 진정성과 설득력 있게 구성된 문장력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책의 구성은 아무래도 고려의 시기가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이었던 탓으로, 모든 글은 한자로 표기되었기에 그 원문을 먼저 싣고, 읽는 이로 하여금 편의를 위해 국내고전문학 연구에 오랜 시간을 아끼지 않은 저자의 해설과 글에 대한 논평이 차례대로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책의 내용 중에서 왕과 신하사이에 오갔던 문장들 가운데 고려 예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발을 들여놓았던 이자현의 글이 눈에 띤다. 이 글에서 그는 벼슬을 내리며 국왕의 부름을 받았으나 자신은 조모의 봉양에 힘써야 하기에 벼슬을 받을 수 없음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효를 다하려는 굳은 의지를 독자들은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과거시험을 관장하는 지공거의 직책을 사양하는 이규보의 글에서는 관직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겸양의 미덕이 잘 드러나 있기도 하다. 한편 우리 땅에 설치한 요나라 시장의 철거를 요구한 박인량의 글과, 중국 원나라의 내정간섭을 받던 시기에 목은 이색의 아버지였던 이곡이 쓴 글의 경우, 지나친 처녀공출에 대해 이에 대한 금지 청원서를 원나라 순제에게 보냈는데, 그의 글에 나타난 진정성에 감복한 순제가 공출을 폐지하는 결과를 이끌어낸 점은, 유교에서 말하는 충의 실질적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을듯하다.


그 외에도 자기 성찰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규보의 글과, 지극히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묘비명을 남긴 박전지라는 인물의 글에서는, 사대부의 곧고 우직하면서도 유연한 사고방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본받을 만한 덕목의 요체로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나 싶다. 고려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의 혼란스런 시기와 맞물려 있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변화의 모색이 필요했는데, 책의 내용에서 보는 것처럼 그 시대의 지식인들은 어느 특정한 이념이나 철학에 함몰되기보다는 다양한 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이에 적응하며 진리를 추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이는 훗날 조선시대 선비정신의 기반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는 목적에는 사람들 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대개 부족한 자신의 지식을 채워가는 것에 더하여, 글의 이면에 담긴 핵심적 의미를 통해 우리의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의 함양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독서라는 것은 권장되어야할 사항임에는 틀림없다. 시대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리의 생활모습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서, 과거 시대정신을 담은 글의 본연적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고전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것은, 그 내용 안에 인간에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 농축되어 있어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많은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책의 내용으로 볼 때, 고려사대부들이 남긴 명문장은 고전이라고 칭할 만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의미가 있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독자들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저자의 노력으로 고려시대의 멋진 글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역사교양서로서 일독하기를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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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패키지 - 성공의 세 가지 유전자
에이미 추아.제드 러벤펠드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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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두 번쯤은 개인적으로 학교 동창회나 동문들끼리의 만남에 참석할 때 있다. 그럴 때마다 가끔 놀라게 되는 것은, 결코 생각지 못한 의외의 친구가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게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다른 사람들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성공적인 삶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들 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 중 누군가는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전원에서의 소박한 삶을 즐기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적인 인생이란, 부와 명예를 동시에 만족하게 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행복을 구가하는 삶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러한 목적달성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자기계발에 힘쓰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이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생각되는 것은, 어떤 이는 성공하기가 비교적 용이한 쉬운 좋은 환경을 지녔으면서도 쓰라린 인생의 실패를 거듭하는 경우가 있고, 상대적으로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보란 듯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한 인생을 이끌어낸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어떤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만약 인생에서의 성공을 가능케 하는 뚜렷한 요소들이 존재한다면, 이를 이용해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는데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참고해보는 것은, 누구에게든 중요한 일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기존의 자기계발서 와는 달리 성공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적인 요인을 집중 분석하고, 이를 이론화 하고 있어서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볼만하다.


저자는 지난 20년 동안 동남아시아에서 아프리카, 구소련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성공신화를 이룩한 소수민족들에 대한 글을 써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동안의 많은 연구를 토대로 이 책을 통해 성공을 가능하게 하는 트리플패키지라는 새로운 이론을 주장하고 있는데, 독자의 입장에서 그 내용을 읽다보면 한편 공감이 가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이 책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목표를 향해 성공에 이르는 집단에는 핵심적인 세 가지의 문화적 힘이 작용한다고 말하면서, 이를 트리플패키지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트리플패키지를 구성하는 첫 번째 요소는 우월적 콤플렉스인데, 이는 집단의 특별함이나 비범함, 그리고 우월성에 대한 깊은 내면의 믿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초조함이나, 현재 자신의 하는 일이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근본적으로 충분치 못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불안감이다. 끝으로 세 번째는 언제든 자신이 처한 시련이나 어려운 과제 앞에서 포기하고픈 유혹을 이겨내는 능력으로 충동조절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어느 집단이든 간에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어울려질 때, 그 성공의 가능성이 많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관한 근거로 다양한 인종이 분포되어 살아가는 미국사회에서, 정치와 재계의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모르몬교도들과 마이애미에서 비약적 성장을 이룬 쿠바계 미국인, 그리고 아이비리그와 월스트리트의 흑인 이민자들, 높은 학업성취와 더불어 고소득으로 주목받고 있는 아시아계의 이민자등을 그 예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트리플패키지에 의한 성공의 이면에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기도 해서 극심한 우울증이나 편협성 강하며, 관습적이고 물질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 한다.


이 책은 기존의 자기계발서가 주로 다루었던 내용과는 달리, 다양한 연구와 실제사례를 바탕으로 조금은 다른 측면에서 성공 가능성의 요소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성공의 요인으로 트리플패키지가 가지는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를 상세하게 언급함으로서, 균형적인 시각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내용이 그만큼 객관적이고 설득력이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와는 별개로 일부 독자들의 경우 이 책 저자의 주장에 대해, 이를테면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일부 집단에서의 표본만을 가지고 크게 확대하여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트리플패키지라는 이론을 신뢰하기에는 다소부적절하게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러한 의구심에 대해 오랜 시간의 연구와 조사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를 감안한다면, 트리플패키지에 의한 성공과 반대로 그렇지 않았을 때의 비율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오해의 소지는 결코 우려할 부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든 이 책이 말하는 트리플패키지의 내용이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단정하여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요소 하나하나를 성공한 사람들의 삶에 객관화 하여 대입하였을 때, 상당 부분 일치하고 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물론 이 책이 주장하는 성공의 사안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부분은 각자 선택의 몫이며, 그 책임은 마땅히 자신에게 부여되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성공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 성공의 길은 멀고 험하며 그 자리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러나 성공은 항상 도전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책과 관련하여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그동안 자신이 노력한 과정의 내용에 과연 어떤 성공의 요인이 부족했는지를 곰곰이 스스로 판단해 보면서, 이를 보완해가는 것도 성공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부디 참고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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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글쓰기 - 옥스퍼드 대학이 출간한 글쓰기 바이블
피터 엘보 지음, 김우열 옮김 / 토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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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말과 글은 자기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도구가 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자 방법이 된다. 그런 이유에서 말이나 글에 제법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게 마련이고, 그렇다보니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말이나 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막힘없이 논리적으로 전개하여 공감을 이끌어가기를 누구나 바라고 원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생각만큼 결코 쉽게 되는 일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과 글은 다소 공통점을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여러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국내 소설가 이태준 작가는 말이란 청각을 이해시키고 만족시켜주는 반면에 글은 시각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말은 의식적인 노력 없이 저절로 배워지는 것이지만, 글은 배워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연습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가능하다. 또한 말은 입에서 뱉어내면 그 시간 그 자리에서 곧 사라지지지만, 글은 공간적으로 널리 그리고 시간적으로 얼마든지 오래 남는다고 말한바 있다. 물론 말과 글에 대해 어느 것이 조금 더 중요하다거나 강조되어야 할지를 논한다는 것이 어쩌면 우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글이란 음성언어가 가지는 제한적인 한계성을 극복가능하다는 점에서 조금은 더 중시되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좋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갈망을 하면서도, 막상 글을 써야하는 입장에 서있게 되면 어렵다거나 심지어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글쓰기 능력을 어떻게 배양할 것인지를 알기 쉽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독자들이 실용적인 글쓰기를 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책의 제목에서 의미하는 것처럼 저자는 다른 무엇보다 누구나 좋은 글을 만들어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은 힘 있는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가 주장하는 힘 있는 글쓰기란 대체적으로 명쾌하고 정확하게 쓴다는 것이고, 그것이 독자와 같은 다른 누군가와 특정한 방식을 통해 교감을 이루어 설득력 있으면서도, 솔직하고 흥미롭도록 주도적인 입장에서 쓴 글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만약 이러한 핵심적인 요소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누구에게도 호응을 얻지 못하는 무기력하고 가치가 없는 글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힘 있는 글쓰기 즉, 글이 그 자체로 의미 있고 가치를 가지면서 독자들에게 확장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이전에, 우선 누구나 글을 쓰는데 있어 위압감이나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주제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글쓰기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한 가지는 어떤 형태로든 글을 완성했다면 이를 폭넓은 공유로 통해 타인과의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개선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서, 향후 발전된 글쓰기의 계기로 삼으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사항을 갖출 수만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획기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점 외에도 이 책에는 글을 쓰는 입장에서 간혹 직면하게 되는 어려운 난관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것인지, 또한 초고를 쓰는 과정에서 글을 어떤 방향으로 전개할 것인가에 관한 기술적 방법과, 글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필수적으로 이어지는 퇴고에 이르기까지 글쓰기의 전반적인 사안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에서, 자신의 글을 타인과의 교류함으로서 이루어지는 피드백의 진행과정과, 더불어 힘이 느껴지는 글을 창작하기 위한 그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점은 독자들이 주목해 볼만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종이의 여백에 담는 것에 불과한 것이 결코 아니다. 글쓰기란 우리의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의사소통능력을 향상시켜주는 것은 물론 창의적인 사고력을 증진시킬 수도 있으며,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긍정적인 방향에서 타인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강력한 방법이며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지식을 아무리 많이 습득하고 깨우친다고 해도 이를 글로서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면, 그것이 지니는 실질적 가치의 의미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쓴 글을 두고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지나친 의식을 한 나머지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좀처럼 글을 쓰지 않으려는 경향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찬사를 받을 만큼의 좋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한때는 엉성하고 투박하며 보잘 것 없는 글을 썼던 시기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유로운 글쓰기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 시작해볼 필요성이 있다. 그 글이 설사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고 비루하게 느껴질지라도 말이다. 물론 이 책이 우리의 글쓰기 능력을 순식간에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의 내용이 어떤 형태로든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그 기술적인 방향을 제공해주고 있기에, 이를 토대로 독자들이 이전에 비해 한층 발전적인 글쓰기를 가능케 해줄 것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글쓰기에 대한 개인의 능력이 점차 중요시되고 있음을 본다. 그런 이유로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글로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나타내야 하는 일이 종종 있다. 따라서 많은 책을 접합으로서 얻어 지는 지식을 단지 머리와 마음속에 남겨 둘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이러한 책을 통해 글을 써보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나가면서, 자신만의 힘 있는 글을 작성하는 좋은 기회가 얻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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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7-03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은 아무리 써도 초라하고 비루해 보이는 지 모르겠어요...
힘 있는 글쓰기라, 전 키보드 자판이 부서져라 쓰긴 하는 데 그게 힘 있는 글쓰기는 아니겠죠 푸하.....
아 잘 쓰고 싶어라...

하늘처럼 2014-07-09 17:51   좋아요 0 | URL
그건 누구라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혹시 겸손하신 것은 아닌지~

jjoon 2015-05-3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하는것 보다 글 쓰는걸 더 좋아는 합니다.
글이라는건 잘 정돈된 느낌의 정원 같다고나 할까요?
생각없이 내뱉는 말은 있어도..
생각없이 쓰는 글은 별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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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
문유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사는 사회가 법이 필요 없어도 별 다른 문제없이 유지되는 유토피아가 된다면 좋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이상적인 세계가 설사 실현불가능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사회를 목표로 우리 스스로가 먼저 타인에게 조금은 양보하고 타협하며 책임의식을 가지고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전쟁을 겪은 이후로 낙후된 경제를 위해 모든 것을 집중한 탓에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민주주의 사회를 기틀을 다지는데 성공했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일면을 보면, 발전적인 민주사회는 고사하고 오히려 퇴보적인 상태에 놓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소수자의 인권은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며,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소득불균형의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도 모자라,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권리마저 침해되는 일이 요즘 심심치 않게 생기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은, 정부의 행정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의 확보를 위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 있어야 할 사법부마저도 때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같은 죄를 범하고도 피고인 누구냐에 따라 법원에서 구형되는 형량이 달라지는 유전무죄와 같은 법의 불평등의 문제가 있음으로 해서, 이제는 법을 통한 정의구현에 대한 불신이 점점 커져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감이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러한 우리의 정치 사회의 흐름 속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작은 희망의 빛을 비추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저자도 바로 그런 인물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보며, 책의 내용 역시 우리가 한 번 쯤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교훈적이며 가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 볼만하지 않나 싶다.


이 책은 현재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그동안 판사에 임용되어 공직자로서 겪어야 했던 저자의 다양한 경험들이 솔직담백하게 담아져 있는데, 그 이면에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목적의 당위성을 은연 중 강조하고 있어 흥미롭다. 특히 근래에 들어서 사법부를 대하는 국민들의 감정이 상당히 호의적이지 않은 것과 관련하여, 이러한 불신의 원인이 과연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또한 저자 스스로가 판사이기 이전에 일반국민의 일원으로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결할지를 두고,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한 여지가 많다고 여겨진다. 우선 책의 전반부 내용을 살펴보면 저자는 재판을 주관하는 판사로서 피고인들을 향해 형량을 구형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겪어야 했던 현실적 고뇌를 담담하게 피력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공감을 표할 만큼 가슴이 따뜻하게 읽혀진다. 더불어 저자는 법을 적용함에 있어 양심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만인에게 형평성 있게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를 하면서도,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억울한 피고인이나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는 오늘 우리의 현실에 대해, 물론 법원의 개혁도 필요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남을 위해 배려하고자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어 눈길을 이끈다. 또한 하버드 로스쿨로 해외연수를 하는 기간 동안 그곳에서 목격한 교육시스템을 경험하면서, 일방적인 주입식을 강요하는 우리의 교육환경과 취업의 도구로 전락한 대학, 그리고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식의 문제점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함을 토로하고 있기도 하다. 끝부분에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법원 내부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져 있는데, 다소 건조하고 보수적인 관료주의 사회의 일면이 조금씩 변화되어 가고 있음을 독자들은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그 사회가 문제없이 오래도록 유지되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그 사회에 적합한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을 우리는 통상 법이라 규정하고 누구나 의무적으로 이에 따를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법을 지키지 않을 때에 공권력이라는 인위적인 수단을 통해 강제적인 제재를 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관계로 한정된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기 위한 경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구성원들 간의 갈등은 생겨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조금 지나치다 보면 근엄한 법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경우가 초래된다. 그런데 법에 의한 판결이 형평성을 잃어 이런 저런 이유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그 사회에서 정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법은 사회정의를 구현하는데 있어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 객관성과 중립성이 보장되어야만 함은 굳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정의란 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지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님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잔재들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신자유주의의 폐해들이 불거지면서 많은 문제들이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를 마주하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보다 성숙한 자아성찰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하고 있지 않나 싶다. 아울러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하여 지금의 혼란스런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느 특정한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의 유감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보며, 이를 위해 조금은 이타적인 삶을 도모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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