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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읽다 - 역사와 삶의 고비마다 고려를 지키고 빛낸 문장들
이혜순 지음 / 섬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누군가에게서 한마디의 말과 그리고 문장을 통해서, 문득 삶의 지혜를 얻기도 하며 인생에 있어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나대경은 자신의 수필집 학림옥로에서 작고 날카로운 쇠붙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의미로, 짧은 경구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촌철살인 이라는 고사를 남긴바 있다. 이 말에서 보듯 무릇 좋은 글이란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것을 넘어 때로 중요한 삶의 지표로 간주된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동북아의 국제적인 관계 속에서 다양한 갈등을 겪어야만 했는데, 특히 고려시대의 역사 내용을 보면 국가의 안위가 위협을 받는 여러 차례의 위기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고려왕조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무려 5백 년이라는 기나긴 한 시대를 풍미해왔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했던 바탕위에는 다른 무엇보다 고려의 정치사상적 기반이 된 지식인들의 열정과 사유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이유의 연장선상에서 다사다난했던 고려의 시기에 왕조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그 토대가 되었던 당시 사대부 문장가들이 서술했던 글을 집중조명해보고, 그들이 남겨놓은 글을 통해 오늘의 시각에서 그 내용에 담긴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보고자 했다. 사실 그동안 역사와 관련한 많은 책들이 조선시대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책은 당시 고려시대의 정치 사회의 전반적인 부분을 독자들이 고루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조들이 남긴 다양한 형태의 수려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는 명문장을 관찰함으로서, 오늘을 살아가는데 있어 자신의 인생에 보탬이 될 유의미한 지혜와 교훈을 배우는데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에는 고려시대의 많은 문장들 가운데에서도 독자들이 한 번 쯤은 주목해볼만 한 명문들을 선별하여, 그 내용에 담긴 당대 인사들의 삶과 의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안에 수록된 모든 글들은 단순히 문학적인 평가에 국한한 것이 아닌, 정치, 외교를 포함하여 종교의례, 개인적인 편지나 묘비에 적힌 내용에 이르기까지, 글을 남긴 사람들의 진정성과 설득력 있게 구성된 문장력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책의 구성은 아무래도 고려의 시기가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이었던 탓으로, 모든 글은 한자로 표기되었기에 그 원문을 먼저 싣고, 읽는 이로 하여금 편의를 위해 국내고전문학 연구에 오랜 시간을 아끼지 않은 저자의 해설과 글에 대한 논평이 차례대로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책의 내용 중에서 왕과 신하사이에 오갔던 문장들 가운데 고려 예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발을 들여놓았던 이자현의 글이 눈에 띤다. 이 글에서 그는 벼슬을 내리며 국왕의 부름을 받았으나 자신은 조모의 봉양에 힘써야 하기에 벼슬을 받을 수 없음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효를 다하려는 굳은 의지를 독자들은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과거시험을 관장하는 지공거의 직책을 사양하는 이규보의 글에서는 관직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겸양의 미덕이 잘 드러나 있기도 하다. 한편 우리 땅에 설치한 요나라 시장의 철거를 요구한 박인량의 글과, 중국 원나라의 내정간섭을 받던 시기에 목은 이색의 아버지였던 이곡이 쓴 글의 경우, 지나친 처녀공출에 대해 이에 대한 금지 청원서를 원나라 순제에게 보냈는데, 그의 글에 나타난 진정성에 감복한 순제가 공출을 폐지하는 결과를 이끌어낸 점은, 유교에서 말하는 충의 실질적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을듯하다.
그 외에도 자기 성찰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규보의 글과, 지극히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묘비명을 남긴 박전지라는 인물의 글에서는, 사대부의 곧고 우직하면서도 유연한 사고방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본받을 만한 덕목의 요체로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나 싶다. 고려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의 혼란스런 시기와 맞물려 있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변화의 모색이 필요했는데, 책의 내용에서 보는 것처럼 그 시대의 지식인들은 어느 특정한 이념이나 철학에 함몰되기보다는 다양한 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이에 적응하며 진리를 추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이는 훗날 조선시대 선비정신의 기반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는 목적에는 사람들 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대개 부족한 자신의 지식을 채워가는 것에 더하여, 글의 이면에 담긴 핵심적 의미를 통해 우리의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의 함양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독서라는 것은 권장되어야할 사항임에는 틀림없다. 시대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리의 생활모습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서, 과거 시대정신을 담은 글의 본연적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고전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것은, 그 내용 안에 인간에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 농축되어 있어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많은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책의 내용으로 볼 때, 고려사대부들이 남긴 명문장은 고전이라고 칭할 만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의미가 있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독자들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저자의 노력으로 고려시대의 멋진 글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역사교양서로서 일독하기를 조심스럽게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