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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
문유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사는 사회가 법이 필요 없어도 별 다른 문제없이 유지되는 유토피아가 된다면 좋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이상적인 세계가 설사 실현불가능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사회를 목표로 우리 스스로가 먼저 타인에게 조금은 양보하고 타협하며 책임의식을 가지고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전쟁을 겪은 이후로 낙후된 경제를 위해 모든 것을 집중한 탓에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민주주의 사회를 기틀을 다지는데 성공했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일면을 보면, 발전적인 민주사회는 고사하고 오히려 퇴보적인 상태에 놓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소수자의 인권은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며,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소득불균형의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도 모자라,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권리마저 침해되는 일이 요즘 심심치 않게 생기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은, 정부의 행정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의 확보를 위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 있어야 할 사법부마저도 때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같은 죄를 범하고도 피고인 누구냐에 따라 법원에서 구형되는 형량이 달라지는 유전무죄와 같은 법의 불평등의 문제가 있음으로 해서, 이제는 법을 통한 정의구현에 대한 불신이 점점 커져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감이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러한 우리의 정치 사회의 흐름 속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작은 희망의 빛을 비추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저자도 바로 그런 인물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보며, 책의 내용 역시 우리가 한 번 쯤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교훈적이며 가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 볼만하지 않나 싶다.
이 책은 현재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그동안 판사에 임용되어 공직자로서 겪어야 했던 저자의 다양한 경험들이 솔직담백하게 담아져 있는데, 그 이면에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목적의 당위성을 은연 중 강조하고 있어 흥미롭다. 특히 근래에 들어서 사법부를 대하는 국민들의 감정이 상당히 호의적이지 않은 것과 관련하여, 이러한 불신의 원인이 과연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또한 저자 스스로가 판사이기 이전에 일반국민의 일원으로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결할지를 두고,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한 여지가 많다고 여겨진다. 우선 책의 전반부 내용을 살펴보면 저자는 재판을 주관하는 판사로서 피고인들을 향해 형량을 구형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겪어야 했던 현실적 고뇌를 담담하게 피력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공감을 표할 만큼 가슴이 따뜻하게 읽혀진다. 더불어 저자는 법을 적용함에 있어 양심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만인에게 형평성 있게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를 하면서도,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억울한 피고인이나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는 오늘 우리의 현실에 대해, 물론 법원의 개혁도 필요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남을 위해 배려하고자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어 눈길을 이끈다. 또한 하버드 로스쿨로 해외연수를 하는 기간 동안 그곳에서 목격한 교육시스템을 경험하면서, 일방적인 주입식을 강요하는 우리의 교육환경과 취업의 도구로 전락한 대학, 그리고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식의 문제점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함을 토로하고 있기도 하다. 끝부분에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법원 내부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져 있는데, 다소 건조하고 보수적인 관료주의 사회의 일면이 조금씩 변화되어 가고 있음을 독자들은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그 사회가 문제없이 오래도록 유지되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그 사회에 적합한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을 우리는 통상 법이라 규정하고 누구나 의무적으로 이에 따를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법을 지키지 않을 때에 공권력이라는 인위적인 수단을 통해 강제적인 제재를 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관계로 한정된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기 위한 경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구성원들 간의 갈등은 생겨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조금 지나치다 보면 근엄한 법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경우가 초래된다. 그런데 법에 의한 판결이 형평성을 잃어 이런 저런 이유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그 사회에서 정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법은 사회정의를 구현하는데 있어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 객관성과 중립성이 보장되어야만 함은 굳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정의란 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지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님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잔재들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신자유주의의 폐해들이 불거지면서 많은 문제들이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를 마주하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보다 성숙한 자아성찰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하고 있지 않나 싶다. 아울러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하여 지금의 혼란스런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느 특정한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의 유감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보며, 이를 위해 조금은 이타적인 삶을 도모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