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평점 :
가끔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임에도 임팩트 있는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기대치를 높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의 작가도 아마 그런 사례에 속하지 않을까 싶은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이미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다시피, 이 작품의 저자 요나스 요나손은 자신의 데뷔작이기도 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라는 소설을 발표함으로서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하며 그 유명세를 떨친바 있다. 이번 작품은 그의 후속작품으로 이전 작품과 비교하여 과연 버금가는 평가를 받게 될 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사실 그의 이전 소설을 읽어본 독자들은 대부분 공감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의 작품에서 특이할만하게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아무래도 작품의 줄거리에 폭소를 자아내는 코믹스런 점이 부각되어 있다는 것과, 은유적인 표현을 빌려 세태에 대한 풍자가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황당하면서도 비현실적으로 여겨져 반감이 느껴질 것 같기도 한데, 그와 같은 요소들에 의해 오히려 마치 사실적인 이야기처럼 흥미롭게 읽혀진다. 특히 여타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신선하면서도 독특한 캐릭터의 설정이라든지, 하나의 플롯에서 파생되는 예측이 불가능한 다양한 방향으로의 이야기 진행의 흐름은, 독자들로 하여금 흥미진진한 감상의 여지를 제공해주는데 손색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아직까지도 그의 작품을 접하지 않은 독자들이 있다면, 유쾌하면서도 간결한 위트가 담겨 있는 그의 작품에 한 번 관심을 가져보기를 기대해본다.
작품 속 주인공 놈베코는 남아프리카의 빈민촌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공중화장실의 분뇨를 나르는 기구한 삶을 살아온 14살의 어린소녀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남들에 비해 특별하게 여겨지는 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선천적으로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어떤 분야의 학문이든 책을 통해서 보아온 내용을 빨리 습득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당시 그녀의 상황에서 별다른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훗날 그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결정적인 역할의 동력이 된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그녀의 삶에 첫 행운이 시작된 것은, 뜻하지 않은 일로 분뇨를 책임지는 관리소장의 자리를 꿰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문학을 좋아하는 이웃집 아저씨에게서 글을 배우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그녀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사실을 알아채고 난 후, 그가 숨겨놓은 다이아몬드를 찾아내어 빈민촌을 탈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핵폭탄을 개발하는 비밀 연구소에서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눈치가 빠르고 영리했던 놈베코는 그곳에서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계기를 마련하고, 한편 연구소장을 돕는 조력자로서의 따분한 나날을 보내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바깥세상으로의 동경을 꿈꾼다. 그러던 중에 연구소에서는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드디어 핵폭탄을 제조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계산착오로 인해 주문량을 초과하는 여분의 핵폭탄이 하나 더 만들어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녀는 뜻하지 않게 이를 떠안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의 상황으로 돌연 빠져버리고 만다.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이 흥미롭게 펼쳐져 있는 이 작품의 이야기는, 그 상황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느낄 수 없는, 끊임없는 코믹의 요소를 발산하며 독자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아울러 작품 속 주인공 놈베코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의 일은 그 변화가 무쌍하여 길흉을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는 새옹지마라는 말을 실감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 재미있게 여겨지는 점은, 독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좀처럼 생각하기 힘든 다양한 상황들이 계속해서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독자들은 엉뚱하면서도 좌충우돌적인 이야기가 전개됨으로서 전달되는 그 감상의 폭을 한층 확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 한 가지는 이야기의 흐름에 단순한 코믹적요소를 곁들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안에 우리의 불합리하고 어두운 정치사회상을 위트 있게 풍자함으로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여 지적인 문학의 풍미를 강화했다는 점이다. 다만 작품 속 유머적인 코드가 우리가 느끼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 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고, 이야기 구성과정에서의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는 않아서 조금은 반감되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순수한 까막눈이의 시각에서 바라본 상식적인 세상과 우리가 바라는 그것이 결코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그러한 희망적인 세상은 결코 어렵지도 않고 그렇다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따라서 기상천외한 이야기로 쉴 사이 없는 웃음과, 간결하면서도 재치 있는 위트, 그리고 과감하고 명료한 풍자가 어우러진 이 작품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잠시나마 유쾌한 시간을 즐겨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