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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평점 :
문학을 자주 접해본 사람들 이라면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한번 쯤 읽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헤세는 독일에서 출생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단호한 태도로 나치즘에 의한 극우파들의 애국주의에 반대했다가 결국 독일에서 매국노라는 비난과 탄압으로, 1946년에 유리알 유희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시기에 그의 국적은 이미 스위스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그가 뇌출혈로 사망하고 나서, 이후 그를 추모하기 위한 기념관 설치문제로 한때 상당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헤르만 헤세의 전기를 썼던 위고 발은 헤세를 일컬어 찬란한 낭만주의 대열의 마지막 기사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일생에 끝없는 낭만을 추구했던 로맨티스트였음을 스스럼없이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의 문학을 사랑했던 독자들은 그의 작품에서 드러내고 있는 ,청춘의 대한 그리움이나 자연과 인간의 동화적인 관계, 그리고 자유를 한없이 열망하는 모습에서 공감을 느끼며 관심을 나타냈다. 사실 헤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작중 인물로 본인이나 자기 인생에서 인상 깊게 경험한 인물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헤세는 두 번의 이혼과 3번의 결혼과정에서 보듯 남편으로서 또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의 실제적인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한 괴리를 보인다. 헤세는 그 누구로부터의 속박과 구속을 극도로 증오했는데, 이런 그의 습성은 훗날 그의 결혼생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헤세가 사랑한 여인들에 관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그동안 문학으로만 보아왔던 그의 모습을 뒤로하고 현실에서의 그에 인간적인 모습을 재조명 하고자 했다. 더불어 오랜 시간 동안 대중들에게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그의 편지와 문서에 대한 자료들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어서, 독자들은 헤세의 또 다른 모습을 이 기회에 한층 가까이에서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책에 따르면 그는 일생동안 3번의 결혼을 했다고 한다. 첫 결혼 상대자는 사진작가였던 마리아 베르누이였다. 1902년 마리아는 헤세를 처음 만났는데 그때 그녀는 34살의 노처녀였다고 한다.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보면 대개 부모의 뜻에 따라 배우자를 정하는 정략적인 결혼이 일반적이었다고 하는데, 그녀는 애초 그런 결혼풍습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기도 했지만, 결혼보다는 사진작가로서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것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인연의 계기는 예술가들이 자주 모이는 어느 아틀리에였다. 그리고 그 시기에 헤세는 소설 페터 카맨친트를 집필하는 과정에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사랑에 대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고, 마침내 1904년 여름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는데, 마리아는 헤세보다 9살 많은 연상이었다. 마리아는 남편과 집안의 가장으로서 책임보다는 은둔자적 생활과 이곳저곳으로 유랑적인 생활을 즐기는 헤세의 기질을 이해하면서도 헤세의 작품 활동에 도왔던 마리아의 희생적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던듯하다. 헤세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사람은 부유한 집안의 성악가였던 루트 벵거라는 여인이었다. 그녀가 헤세와 결혼하게 된 것은, 그의 시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루트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를 물리친 결혼이었음에도, 이후 이들 결혼생활은 거의 남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냉랭한 시간의 연속이었음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끝으로 헤세의 마지막 결혼의 대상이 되었던 여인은, 미술사학자 니논돌빈이다. 그녀는 가정이 있는 유부녀였지만 헤세의 문학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에 대한 연민에 대한 그리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결혼의 꿈을 이룬다.
헤르만 헤세는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문학가였지만, 한편으로 회의론자이기도 했고 사랑하던 여인을 잊지 못해 자살을 했던 경험이 있으며, 신학교 시절 적응하지 못하면서 신경쇠약을 앓고 난 뒤, 그에 따른 영향인지는 몰라도 한동안은 정신분석에 심취하기도 했다. 헤세와 결혼한 여인들은 하나 같이 그의 시와 소설이 주는 매력에 빠졌던 공통점이 있다. 이런 것을 보면 그의 문학이 주는 마음속에 울림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헤세와 결혼을 했던 여인들은 그와의 결혼생활을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음을 토로했다고 한다. 헤세 역시도 자신의 3번에 걸친 결혼생활을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나의 사상이나 예술관 때문에 자신의 인생에서 혹은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종종 어려움에 봉착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은 사랑을 부여잡을 수도, 인간을 사랑할 수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삶 자체를 사랑할 수 없었음을 회고하고 있기도 하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통한 헤세의 결혼과정을 생각해보면, 작가로서의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고는 해도, 여성이라는 그리고 한 남자의 부인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그녀들이 왜 그렇게 헤세와의 결혼생활을 지우고 싶어 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듯하다. 헤세의 여인들은 그와의 결혼을 통해 달콤하고 행복한 삶을 영유하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와는 반대되는 현실에 상당한 실망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헤세에게는 그 과정의 시간이 누구의 구속도 허락하지 않았던 기질적 성향과 아울러 창작을 위한 남모를 압박에 대한 고통을 안고 있기는 했을 것이다. 그런 헤세도 말년의 시기를 보면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하거나 한때 그와 결혼생활을 했던 부인들에게 수시로 안부를 전하는 서신을 보냈던 것으로 보아, 마음 한편에서는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나름대로의 자책감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다양한 에피소드와 풍부한 자료들을 토대로, 헤세의 문학과 관련한 그의 삶을 다른 각도에서 관찰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헤르만 헤세의 작품의 내용은 물론이고 순수한 삶을 누리고자 했던 그의 인생관을 관조해보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