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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비지테이션 거리에서
아이비 포코다 지음, 엄일녀 옮김 / 책세상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문학을 자주 접하는 독자들이라면 경험을 해봤을 테지만 분명 현실 속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간혹 흡입력 있는 사실적인 이야기가 전개된 픽션을 접하다 보면 그것이 마치 실제의 사실인양, 그 상황으로 흠뻑 빠져들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자기 자신을 대입시켜 때로 안타까움을 드러내거나 혹은 독자가 아닌 작가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 흐름을 주도해가려는 그 나름대로의 욕심을 부려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해당되는 대개의 작품들은 독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게 되는 스테디셀러인 경우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먼저 개인적인 바람이긴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이 작품 역시도, 독자들에게 주목을 이끌 만큼 여러 가지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은 그 내용을 근거로 고려했을 때, 그 분류를 어디에 두어야 마땅할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색채를 지녔다고 할 수 있을듯하다. 그리하여 성장소설로 이라고 해도 맞는 것 같고, 한편 미스터리소설로 봐도 무방할듯하며 도시의 낭만적 느와르가 느껴지는 문학적 풍미를 담은 장르소설이 될 수도 있어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체감되는 느낌이 각기 달라지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점을 반대로 생각하면 이 작품이 지닌 성격자체가 모호해질 수 있기에, 상대적으로 중구난방식의 이야기로 인해 독자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 쉽다. 하지만 작품의 내용을 읽어보면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지만, 그런 오해의 소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매혹적인 이야기에 따른 만족할 만한 감상의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에서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한번 읽어보기를 적극 권해본다.
작품 속 이야기는 도시개발에 밀려 이제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 지역이 되어버린 뉴욕의 슬럼가 레드훅을 배경으로 한다. 한때 이곳은 마약과 매춘은 물론이고 각종 범죄가 저질러지는 끔찍한 구역이 되었지만, 한때의 총기사건으로 이후로 지금은 예전에 비해 다소 나아진 편 속한다. 비록 대도시에 비해 열악한 시설과 미관상으로 불편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낭만을 즐기기에 적당한 고즈넉한 풍경의 자취는 여전하다. 후텁지근한 늦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늦은 저녁, 이 지역에 살던 사춘기 소녀 밸러리와 준은 매일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기 위해, 뉴욕의 해안으로 흘러드는 이스트 강에서 고무보트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서게 된다.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이 두 소녀는 강줄기를 따라 노를 저어가던 중에 급하게 흐르는 물살을 만나면서 보트가 뒤집히는 일을 겪게 되고, 급기야는 깊은 강물에 빠지는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 결과 밸러리는 그곳에 산책을 나왔던 학교 음악선생에게 발견되어 가까스로 구조되지만, 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행방불명의 상태가 되고 만다. 이윽고 경찰이 출동하면서 당시 사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이 소동은 결국 철없는 소녀들의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해 보였다. 그러나 보트가 뒤집히는 사고가 있었던 그 장소에 흑인소년 크리를 보았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나오고, 한편 익사의 위기에서 목숨을 건진 밸러리는 친구의 행방불명 소식을 듣고 전에 없던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서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일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후 그동안 특별한 일이 거의 없었던 마을은 이 사건 하나로 돌연 어수선한 기운에 휘말리게 되고, 주변 사람들은 이 사건을 두고 근거 없는 이런 저런 입소문을 내기에 바쁘다. 하지만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는 오래 전에 있었던 우연한 일과 연관이 있었다.
이 소설은 건조하고 메마른 일상이 지속되는 한가로운 대도시 슬럼가에, 생각지 못했던 두 소녀의 일탈적인 행동이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국면을 야기하게 되는 흥미로운 줄거리를 담고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이 작품은 장르소설로서의 대중적인 측면이 흡족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작품이 담고 있는 여러 요소를 감안해 볼 때, 작품성에 더 좋은 평가를 주고 싶을 정도로 순수문학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장르소설과 순수문학을 보기 좋게 버무려 놓은 복합적인 이미지가 문득 떠오르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소설에는 작품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균형 있게 형성되어 있음이 쉽게 감지된다. 우선 눈에 확연하게 들어오는 것은, 현장감이 느껴질 만큼의 사실적이고 수려함이 돋보이는 문장의 묘사와, 매혹적인 줄거리의 그 밑바탕에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적절하게 배합함으로써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하는 대중적 장르의 요인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은 풍부한 서사와 치밀한 구성, 그리고 작품의 내용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호소력 있는 이야기 전개과정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누가 주인공이라고 말하기 힘들 만큼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작품 속 이야기가 생동감 있게 전개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아울러서 이들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권태로움, 분노, 고독, 사랑, 애잔함과 같은 다양한 감정의 표상을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은 여러 유명작가들로부터 상당한 호평을 받았음은 물론이고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어 독자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국내 독자들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면 싶고, 개인적으로는 이를 계기로 조만간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출간되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