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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평점 :
우리의 인생에서 인간관계라는 것은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이별하며 그리움으로 이어지는 연속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그 기반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홀로 고독하게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인연이 되는 타인과의 만남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모든 일이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되지 않듯이 평생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인간관계도 때로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그리고는 그 고독의 아픔과 그리움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당시에 생긴 생채기로 인한 아픔의 정도는 잦아들겠지만 때로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그에 따라 우리의 인간관계를 생각해보면, 이전에 비해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음이 감지된다. 서로의 이익이 되는 흐름에서 마치 계약적인 관계가 연상되듯이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우리의 본질적인 인간관계의 부분은 결코 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애써 외면하거나 혹은 처한 현실을 도피하려는 차원에서 우리가 그렇게 인식하려는 의식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그런 측면에서 지금 현재 우리 자신이 겪고 있을지도 모를 인간적인 관계의 파멸에서 파생된 가슴시린 상처의 흔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보고자 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투영하여 이를 객관적인 자세에서 바라보고 가슴 속에 침잠되어 있을지도 모를 아픈 기억을 극복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이 작품 속에는 모두 8편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실려 있으며, 하나하나의 소설 안에는 이별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토대로 애달픈 삶의 현실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먼저 ‘콩쥐 마리아’라는 제목의 첫 단편 이야기는, 젊은 시절 격동기의 시대에 양색시로의 고달픈 삶을 살아가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 어느 할머니의 사연을 담았는데, 과거라는 굴레 때문에 냉담한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슬픈 가족사의 내용이 애틋하게 그려져 있다. 두 번째 ‘미움 뒤에 숨다’라는 작품은 가부장적이고 폭압적인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 그의 딸이 단절된 지난 세월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미움이라는 감정이 결국 그리움으로 교차되는 사랑의 본질적인 부분을 공감 있게 다루어 냈다. ‘언니를 놓치다’ 그리고 ‘박제된 슬픔’은 오늘날 이데올로기로 인한 분단된 시대적 상황의 문제를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으로, 이념적인 시각에서 한 개인의 가족사를 분해해서 보는 것이 아닌, 가족애라는 본질적적인 문제로 접근하여 이산가족이 겪어야 하는 현실적인 아픔을 깊이 논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고독의 해자’와 ‘이별은 나의 것’ 이라는 단편은 이혼을 통해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고독한 여성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것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가족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필요성이 은연 중 내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외의 ‘세상의 모든 순영 아빠’라는 작품은 다른 작품과 달리 회상과 독백으로 이루어진 서술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억울한 죽음 앞에 놓여야 했던 기구한 운명을 짊어진 한 여성의 이야기가 담아져 있으며, 책의 제목이 되는 건너편 섬에서는 불안정한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금자라는 여인이 자기합리화를 통해 두려움을 극복해가는 실질적인 모습이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 단편들의 주체는 하나같이 남자가 아닌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이 작품의 내용을 읽다보면 여성으로 살아가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이 어떠한 것인가를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을듯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작품을 읽으면서 일부의 내용은 상당히 공감적이어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작품 속에 드러나는 이별이나 그리움에 대한 회한이 여성만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거북스러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많이 나아졌고, 남녀평등이라는 관점에서의 인권에 대한 부분이 어느 정도 형평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에 대하는 편협적인 시각이나 사회제도의 불합리한 면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러한 문제를 직시하는 남성들의 인식도 달라져야 하겠지만, 이를 합리적인 방향에서 풀어가려는 여성들의 부단한 노력들이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본다면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작가의 메시지는 여러 부분에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작품의 내용에서 보듯 어느 누구의 아픔도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가 보듬어야 한다고 보면, 그 방법적인 문제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문제라면 겸허하게 수용하고 그 치유의 과정에서 미움보다는 사랑으로 승화시킴으로서 마음 속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남모를 고통을 안고 있는 고독한 존재로 남아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현실을 왜곡하지 않는 방향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내는 하나의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