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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몇몇의 눈에 띄는 유럽작가의 장르분야 소설이 국내의 독자들에게 주목을 받았던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럽의 스릴러물들이 최근 제법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 작품 역시도 일종의 그런 경향에 의해 소개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무래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아울러 여타의 소설에서 체감하지 못했던 색다른 감상의 여지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먼저 이 소설의 작가의 약력을 살펴보니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국내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럽 내의 추리소설 분야에서 이미 여러 차례의 수상을 한 바 있고, 이를 바탕으로 자국 내에서는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에 걸맞게, 이 작품은 기존의 추리장르소설에 비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스릴의 묘미와,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의 요소가 비교적 매끄럽게 배합되어 있지 않나 싶다. 그런 관점에서 독자들은 소설의 내용을 통해 독자의 심리적인 측면을 강하게 자극하는 요인에 의해 인상적이고 공포에 가까운 서스펜스의 쾌감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사실 이 작품은 주된 줄거리는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그동안 많이 다루어왔던 관계로 조금은 식상하게 느껴질 법한데, 이 작품을 읽다보면 의외로 그런 느낌은 어디로 간데없고, 풍부한 서사를 바탕으로 시종일관 과연 어떤 결과물을 보여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미스터리적인 장점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추리스릴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이 작품이 전해주는 다채로운 매력에 빠져보는 흥미로운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듯하다.
작품 속 중요인물로 등장하는 클로에는 어느 중견 광고업체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하는 철저한 사회지향적인 커리어 우먼이다. 그녀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자신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 때로는 안하무인식의 이기적인 욕망을 소유한 냉혈적인 모습과, 또 다른 마음 한편에는 어린 시절 동생을 보호하지 못해 평생을 식물인간으로 살아가게 만든 과거의 잊지 못할 슬픈 기억에 대한 자책감을 갖고 있다. 조만간 새로이 개편되는 회사의 중대한 인사문제로 바쁜 하루를 보내던 중에,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뒤쫓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전에 없었던 두려운 마음에 사로잡히게 된다. 예고 없이 형체를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그녀의 눈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났다가 곧바로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혼란스러운 일이 반복되자, 그녀는 결국 주변의 친구들이나 경찰에게 알려 도움을 청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 같이 눈에 보이는 어떠한 확실한 증거를 찾을 없는 근거를 들어, 과중한 회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누적된 일시적인 정신적 착란으로 치부해버리면서 당분간 휴식을 취할 것을 종용한다. 공포에 휩싸여 불면의 밤을 보내던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우연한 기회에 강력반 형사팀장으로 있는 고메즈를 만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게 되고, 고메즈 형사는 불치의 병으로 생을 마감한 자신의 부인과 비슷한 얼굴을 가진 클로에의 외모적인 모습에 이끌려 선뜻 도움을 주겠다는 신뢰의 손을 내밀게 된다. 이윽고 그에 의해 면밀한 수사가 진행된다. 이후 작품 속 이야기는 검은 후드티를 입고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채 클로에의 주변을 맴돌며 서서히 그녀의 목숨을 죄어오는 정체불명의 사나이와, 반면에 집요한 성격을 지닌 베테랑 수사관인 고메즈와의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대결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 소설은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범죄의 윤곽이 드러날 만큼, 예측이 불가능한 양상을 보이는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두드러져 있다. 그리고 작품의 줄거리에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이 많이 드러나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로 하여금 극도의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작가의 이야기 구성력이 뛰어난 스릴러물이라 할 수 있을듯하다. 특이 이 작품에서 흥미롭게 느껴지는 점은, 줄거리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사건의 범죄자가 존재하지 않는, 단지 주인공의 정신적인 착각의 문제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범죄자가 있는 것인지를 혼동케 할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묘사가 작품 전반에 걸쳐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결말 부분에 가서 이루어지는 반전의 효과가 상당하다는 점인데, 반면에 이 부분에서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사건의 발단에서 전개된 풍부한 서사에 비해 개연성도 떨어지는데다가 너무 급작스럽게 마무리를 지어버린 같은 경향이 있어서, 애초 고조된 긴장감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허무함이 의외로 크게 다가온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이 작품은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력이나 감정적으로 이해되는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것은 틀림없지만, 수상작품 치고는 기대이상의 임팩트는 미약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최근 스릴러물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지만 간혹 생각지 못한 작품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은 스릴러물의 다른 어떤 요인들보다 공포와 미스터리적인 측면을 심리적인 부분에 연결시킴으로서 어떻게 보면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따라서 독자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상반된 평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이 책을 아직 접하지 않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이 작품이 기존의 추리물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스릴의 새로운 측면을 선보이고 있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주목의 대상이 될 만한 충분한 여지가 있는 작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