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자 - 속삭이는 자 두 번째 이야기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아마도 장르소설 중에서도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속삭이는 자라는 제목의 작품을 읽어봤을 것이다. 이 소설은 범죄학자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도나토 카리시의 데뷔작으로 유럽출판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국내에도 소개되어 한동안 베스트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바 있다.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은 사이코패스기질을 지닌 연쇄살인범의 악의적인 내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스릴의 재미를 아낌없이 드러내어 많은 독자들로부터 상당한 호평을 받았었다. 더불어서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 있어서는 물론이고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갖춘 특색 있는 미스터리 추리물로 각인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번 작품은 속삭이는 자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그에 버금가는 내용을 담아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어 주목을 이끌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이미 전작을 읽었던 독자들에게는 그의 이번 작품을 통해서 공포를 자아내는 분위기를 토대로 전개되는 강렬한 스릴의 매력을 또다시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번 그의 작품은 표지의 제목이 암시해주는 것처럼, 어느 날 누군가가 갑자기 사라진 뒤에, 이후 실종상태에서 범죄가 잉태되는 흥미로운 줄거리를 담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소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전편과 유사한 면이 없지는 않아서 중복적인 문제로 인한 그 체감의 정도가 다소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정작 실제 작품의 내용을 통해서 바라본 그 느낌은, 전편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스릴을 바탕으로 예측하기 힘든 미스터리의 요소가 유감없이 나타나 있어서, 오히려 전편을 뛰어넘는 한 편의 빼어난 스릴러로써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장르유형의 작품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해본다.

 

작품 속 이야기는 17년 전 행방불명으로 실종처리가 되었던 한 남성에 의해, 어느 외진 주택가에서 일가족이 한꺼번에 몰살되는 끔찍한 사건이 경찰에 신고 되면서 시작한다. 이 사건이 여타의 사건에 비해 충격적이었던 것은, 신고자는 바로 그 집안의 어린 꼬마였는데 아이의 중언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서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가 아이로 하여금 경찰에 신고하라는 명령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한 치정에 따른 누군가의 복수극일 것으로 예상하고 면밀한 조사를 벌이지만 어떠한 증거나 용의자를 찾지 못하고 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이어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우연 아닌 우연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한편 7년 전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연쇄살인범을 검거하는데 상당한 공을 세웠던 여형사 밀라는, 당시의 사건 처리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경찰청 내에서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 실종자처리 전담반에서 근무를 하던 중에, 범죄강력반으로부터 급한 호출을 받게 된다. 수사본부는 그녀에게 최근 발생한 모든 살인사건들이 이상하게도 오래전에 실종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공통적인 사실을 통보하면서 이번 사건을 전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후 밀라 형사는 처음 발생한 사건 현장에서 범죄용의자가 은연 중 남겨놓은 비밀스런 암시를 찾아내게 되고, 이를 통해 경찰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은폐된 사건의 현장을 새로이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연속되는 사건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밀라는 사건조사를 빌미로 또 다른 실종자가 자칫 자신의 아이에게 해를 입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범행 현장에서의 단서를 바탕으로 범죄자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이 작품은 어느 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오래전에 실종되었던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불현듯 다시 나타나 교묘한 범죄를 일으키며 흔적 없이 사라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의 연속적인 과정을 흥미롭게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작품 속 사건의 발단 과정에서 일가족 몰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토대로 조성된 긴장감이, 이후 연속적으로 터지는 살인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계되면서 점차 증폭되어 가는 경향을 보인다. 무엇보다 사실적이고도 생동감 있는 묘사와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줄거리의 전개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스릴러물로써의 무게감을 한층 더해주지 않나 싶다. 특히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개연성 있는 사건의 형성과정에서 느껴지는 스릴적인 요소도 그렇지만, 작품의 말미 부분에서 펼쳐지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놀라운 광경은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을듯하다. 더구나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의 내용의 이면을 생각해보면, 자신과 연관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차 무감각해지는 우리의 도덕적 의식을 일깨우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의 선행은 때로 악의적인 수단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어서 의미 있게 다가온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만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많은 스릴러물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지만 독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가운데서 이 소설은 공포와 스릴 그리고 미스터리가 조화로운 구성을 이루며,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의 내용 속으로 한 순간에 흠뻑 몰입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유럽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 왜 기대되는 작가로 인식될 수 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반증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타인의 악의를 교묘하게 부추겨 파급적인 연쇄살인사건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품을 통해 스릴러물이 주는 색다른 묘미를 감상하는 즐거운 시간을 한번 가져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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