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들를 때는 국내작가의 글들을 주로 읽고 오는데,
소장욕구를 일으키는 글을 쓰는 국내작가는 정말 손에 꼽힐정도다.
이상하다. 한국인인데 왜 같은 한국인이 쓴 소설보다 외국인이 쓴 소설이 더 재밌고 빠져드는건지...
우리나라 소설들은 대체로 약간 갑갑하고 재미가 없다. 의미를 찾는 것은 둘째고, 소설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재미가 없다. 우리나라 옛날 작가들의 글은 재밌는데, 요즘 젊은 작가의 글은 너무 재미가 없고 싱겁다. 김유정이나 이상 같은 작가가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것인지?
그나마 그 와중에도 박상영 작가처럼 나름 솔직하고 재치있는 작가의 글은 잘 읽히긴 한다. 성적인 코드가 들어간 것과는 별개로 그냥 남의 일기장 훔쳐보는 듯한 맥락의 즐거움이다. 글 자체는 약간 서툰 느낌이지만 적어도 글에서 자신을 숨기고 속이진 않으니 읽는 맛은 난다는 말이다. 아무튼 요즘의 국내 소설들은 외국 소설들에 비해 그다지 소장하고 싶은 소설들이 많이 없다.
한 번은 그럭저럭 재밌게 읽어도 두고두고 계속 읽고 싶은 책이 정말 드물다.
이럴 때는 정말이지 지금의 우리나라는 진정한 예술가를 죽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된다. 대회의 수상작들은 어느 날부턴가 죄다 착한 글, 기술이 좋은 글로 넘쳐나기 시작했고, 마치 착한 아이 순서대로 사탕을 주는 약간 모자란 선생님을 보는 것 같다.
‘와닿는 글’과 ‘솜씨가 좋은 글’은 확연히 다른 것이다.
편독(偏讀)이 심한 나로서 소설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지금의 유명하다는 한국 소설중에 과연 ‘재밌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는 책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완벽에 가까운 자신의 글 재주와 몇 번의 필터링을 거친 내면의 순진무구함을 뽐내기 위한 글의 어느 부분에서 대체 재미를 느껴야 하나.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안달난 처절함이 글에 묻어나 오히려 감동을 글 밖에서 얻는 것은 코미디다. 서로 자기가 더 순수하다고 자랑하는 것 같은 글의 나열들...이 글에서 저 글로 눈을 옮겨가며 읽으면서 그 사이 사이 공백의 그로데스크함에 털까지 쭈뼛 섰다.
‘글솜씨 좋네’ 소리는 나와도 ‘재밌다’ 소리는 절대 안나오는 요즘 한국 소설들. 그 자체가 소설의 이혼이라든지 나라 문제라든지 취업 문제라든지 세대갈등 같은 주제들보다 훨씬 비극적이다.
어제 책꽂이를 정리했는데, 남겨진 책들이 대부분 외국소설들인 것을 확인하며 문득 든 생각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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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5-04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공감되어서 좋아요 100개쯤 누르고 싶네요... 저도 소장한 책은 대부분 외국문학들뿐입니다. 솔직히 재미있어서 사고싶을 정도의 국내소설은 거의 못봤어요

yujulovesake 2019-05-05 10:07   좋아요 1 | URL
그쵸..씁쓸해요ㅎㅎ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퍼스트 러브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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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첫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딸에게 아빠란 얼마나 크고 중요한 존재인지...
**
스토리가 크게 복잡하지 않아 술술 잘 읽히는 편이었고, 공감되는 구절이 많아 몰입도 잘 되었다. 특히 캐릭터의 생명력이 좋고 생생해서 시각화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뭔가 팍! 오는 깊이가 부족해서 조금 아쉬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들과 살짝 비슷한 느낌인데, 그보다는 좀 못했다. 다만, ‘가쇼’와 ‘가몬’의 캐릭터가 마치 어릴때 보던 순정만화 속 주인공같은 느낌으로 상당히 매력적이라 가끔은 펼쳐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비롯한 성인 남성들의 어긋난 욕망과 이기심을 질책하는 한편 ‘가쇼’와 ‘가몬’같이 소위 말하는 ‘착하고 멀쩡한 남자’를 등장시킨 것은 이 소설이 남성 자체를 부정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에 대한 간접표현이다. 더불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엄마’들을 등장시켜 여성의 시각으로 진행되는 소설임에도 페미니즘의 색이 거의 없이, 휴먼 드라마의 느낌으로 마무리 된다.
여성의 억압된 성과 성에 대한 트라우마를 그릴 때 자칫하면 남성을 뭉뚱그려 매도하는 식으로 나아가 결국 엉뚱한 결론이 나고 마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조율이 잘 된 소설이고, 균형을 지킨 소설이다. 스토리 짜임새가 약간 느슨했던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고, 소설 내내 떠돌던 기묘한 소녀감성은 조금 독특했지만 작가의 애교쯤으로 여겨도 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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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하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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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편보다 좀 더 그로데스크하고 난잡하고 난해했으나 그 겉을 둘러싸고 있는 건 너무 순수하고 아름다운 어떤 것이었다. 세상은 메타포. 단어도, 문장도 메타포. 이 현실세계는 파고 들면 파고들수록 점점 미궁 속이다.
모두의 열 다섯은 위태롭고 몽롱하다. 마음 속 공백에 대한 의문과 슬픔과 증오를 초현실적으로 구사한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잔잔한 전율을 만들어냈다.
그다지 의외랄 것 까지는 없지만, 앞전의 난해함에 비해 다소 희망적이고 당찬 결말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대중 소설의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 ‘해변의 카프카’의 또 다른 매력이다. 사실, 소설 자체만 놓고 보면 일반 대중들이 흥미위주로 쉽게 술술 읽을만한 소설은 아니다. 글 속의 수많은 상징과 메타포를 발견하고 해석해 직접 가슴으로 느껴야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개입시켜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한 문장도 몇 번씩 곱씹어야만 한다. 아마 이처럼 청소년 성장 드라마를 본 듯한 약간 허무한 결말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두루뭉술한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처음엔 결말이 살짝 무책임 하다고 느꼈으나 몇 번 곱씹고는 결말이 소설 전체의 심오한 철학을 좀 더 현실적이고 친근하게 만드는 하나의 장치로서 역할을 했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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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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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향기가 나다니, 정말 신비롭다.
소설을 읽으면서 음미를 하는 기분, 감미로운 음악을 감상하는 기분, 향긋하고 비릿한 향기를 맡는 기분이 들 수 있다니.
작가는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유령으로서의 자신 두명의 존재가 아닐까. 이미 무의식으로서의 자신을 완벽하게 분리할 수 있는 초현실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닐까.
곧 깨질 듯 섬세하고 순수한 시각과 상상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소설이 아닌 옅은 에메랄드빛 벽지의 미술관에 걸린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글’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한 촉감을 가졌다.
철학과 상상력, 인간과 동물 그리고 자연을 조화시키는 방식이 너무 감동적이다.

**왜 다음편을 같이 안 사왔는지 후회중이다ㅠㅠ 다음 편이 궁금해서 잠을 못 이루고있다. 오늘 새벽엔 유체이탈이라도 해 하늘을 맘껏 날아다닐것만 같다. 왠지 할 수 있을것만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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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혁명적인 글쓰기 방법론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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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어떤 자세을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잡다한 생각들을 잘 풀어낼 수 있는지 명료하고 담백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머릿속에 굴러다니던 다양한 지식들과 표현들이 나름대로 체계를 찾았다.

‘생각이 아니라 사물 속으로 파고 들라.’

‘말 하지 말고 보여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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