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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나쓰메 소세키. 그의 책을 처음 접하지만 이름은 예전부터 알고있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가 가장 유명한 대표작인것도 알고 있었지만 도련님 이라는 제목이 더 끌려 이 소설을 먼저 읽게되었다.
동양의 고전은 대체로 어렵고 가독성이 떨어지는데, 한자어라든지 그 시대의 문화라든지 그런 것들이 내 수준에선 단번에 이해하기가 조금 힘들기 때문이다.
서양의 고전은 비교적 현대와 이질감이 덜 하고, 주제가 전쟁이니 독재니 하는 것들도 그게 소설로서 묘한 낭만을 만들어내곤 하는데 동양의 고전은 아득하고 울적하고 잔잔하고 어려운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꼰대’라며 비꼬는 할아버지의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꼭 일본의 옛날 이야기라고 집중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은 아주 술술 읽히기만 한 책은 아니었다. 내용 자체는 일상생활적이고 잔잔하고 아주 단순하다. 다만 그냥 흘러가는 일상적인 줄거리보다는 주인공의 감정선에 집중을 해야 재미를 느낄만한 책인데 그게 쉽게 잘 되지 않아 절반정도 읽다가 그 뒤로 조금씩 끊어 읽었다. 주인공은 솔직하고 성급한 성격일 뿐이고 딱히 따라가기 어려운 감정선이랄건 없었지만, 좀 전에 언급했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는듯한 기분 때문도 있고, 주인공의 성격 자체가 내 성격이랑 달라 주인공의 감정에 내 감정을 대입하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주인공이 끝물호박 선생으로 중간에 교체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전혀 주인공같지 않은 성격이 어찌 주인공이란 말인가. 하면서 혼자 괜히 불평했다.
나는 일찌감치 현대사회에 찌든 얌체끼가 있는 인간이라 불의를 당해도 앞에서는 적당히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버리고, 남의 불의에도 내가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못본 채 눈 감아버린다. 도련님의 물불 안가리고 불의를 못참는 순진무구와는 거리가 멀어 괜히 찔린 것이다.
이 책의 큰 장점은 그 시대 그 시골학교의 향기와 인물들의 생김새라든지 가치관이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는 것인데, 책을 읽는 동안 만큼은 이 세계에 빨려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직접 도쿄에서 배타고 시골마을로 들어갔고, 학교 교무실에 들어앉아있고, 마을 온천에서 목욕을하고, 하숙집에서 잠을 자고, 낚시를 하고, 동료 선생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기분이 들었다.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직접 내가 본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오히려 그 적나라함이 작가와 독자인 나 사이에 이질감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면서 말이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소설은 앉은 자리에서 꼼짝없이 몰입해 읽을 수 밖에 없는 화려한 매력이 있다면,
기승전결이 썩 뚜렷하지 않은 소설은 집중력으로 연결되는 화려한 긴장감은 없지만, 나른하고 나긋나긋한 특유의 매력이 있다.
단순한 내 취향은 전자이고, 이 소설은 후자이지만 장르를 떠나 시대적 배경을 떠나 글 자체에 순수하고 고귀한 매력이 있어 싫지 않았다.
꽤 부유한 집에서 ‘도련님’소리 들으며 자란 주인공이 새로운 곳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벌어지는 일들과 그 속에서 유모였던 ‘기요’를 회상하고 그리워하며 가치관이 변해가는 모습에서 원초적인 순수함을 느꼈고, 특히 마지막 두 페이지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두 페이지가 아니었다면 별 네개가 아닌 별 세개를 매겼을지도 모른다.
끝맺음을 보니 비로소 작가가 담고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파악이 되면서 지나간 글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나중에 내용이 잊혀질 쯤에 작정하고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