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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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글을 잘 짓기 위한 방법으로 다상량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게 언제부터가 책을 고르는 기준이 되었다. 고민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말도 생각이 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은 어떤 말이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어렵게 이룬 자신의 성공담을 제외하곤. 서두를 이렇게 써보고 나니 이 책은 저자의 많은 생각과 고민의 산물이 아닐까싶다. 거기에는 동심의 세계도 있고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도 있고 부모의 무한 사랑도 느껴진다. 더욱이 어른으로써 사회를 보는 통찰과 비판은 고개를 저절로 끄덕이게 한다. 정말 오랜만에 좋은 산문을 접하는 것 같다. 어렵게 아주 어렵게 써내려간 글보다 더 다가오는 것은 저자의 솔직담백한 문체가 한몫했다. 동심의 세계로 사람의 마음을 후비더니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눈물샘을 자아내고 사회비판으로 일침은 놓는다. 따끔하기 그지없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네 개의 골목을 제시한다. 첫 번째 골목은 여러 가지 핑계로 잊고 살았던 유년기의 동심을, 빗 바란 그리움을 소환해서 정겨움을 느끼게 했고, 두 번째 골목과 세 번째 골목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기를, 그리고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건드리면서 눈물샘을 자아냈다. 마지막 네 번째 골목에서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저자의 통찰로써, 넓은 식견으로써 조목조목 터치했다. 어쩌면 비판이라기보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작은 소망이 글 속에 담겨져있다.


첫 번째 골목에서는 저자와 같은 시기에 살아온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많은 공감을 자아냈다. 그 중에서 다락방 얘기는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공부방이기도 한 그 공간에서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공부했던 기억. 펄벅의 대지와 같은 세계명작전집을 읽으면서 나만의 꿈을 꾸고 간직했던 희망의 공간. 가난의 다른 표현으로써의 공간. 그렇지만 행복했던 공간.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단칸방으로부터 독립된 공간. 공부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희열을 느꼈던 공간. 그곳이 다락방이었다. 그렇게 다락방, 세계명작전집, 가난은 아른거리는 기억의 흔적,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는다. 또 하나의 빛 바란 기억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내가 살던 골목이다. 저녁 어스름을 타고 귓속을 파고드는 엄마의 목소리, 구슬치기, 자치기, 노을, 저녁밥, 술래잡기 등. 어릴 적 동네의 풍경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묘한 감정을 소환하는 도구가 된다. 동네어귀에서 메밀묵 장수의 구수한 목청과 캐롤송이 들리는 환각에 빠진다. 이 책의 제목, 참 괜찮은 눈이 온다에서는 함박함박 푸짐하게 내리는 눈이, 솜사탕 같은, 팝콘 같은 큰 알갱이가 부슬부슬 내리는 장면이 그려진다. 만지면 스르륵 없어지는, 그런 눈. 정겹고 따뜻한 눈. 올해도 기다려지는 눈 말이다. 그리고 삶의 지혜들. 지속성, 삶의 연속성, 울퉁불퉁한 파란만장한 삶이지만 삶을 지속된다 말. 터닝포인트, 전환점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계속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 그리고 무엇보다 당선자보다는 낙선자에게 늘 마음이 쓰인다는 말. 선배작가로써의 따뜻한 배려가 고맙다. 이런 말들이 절실히 필요 했었다.


두 번째 골목에서, 내 영혼의 불량식품에서는 추억은 기억과 다른가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잊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한 것은 기억이고 뜬 구름 잡듯 불현 듯 스치고 떠오르는 것은 추억이 된다. 분명 다르다. 공부머리에 필요한 기억은 없지만 다행히 옛 추억은 살아 내 곁에서 나를 지탱해주니 말이다. 엄마의 맛에서는 가족이라는 두 글자를 생각하게 한다. 알다가도 모르는 게 가족이다. 가까우면서도 먼, 여기에서 멀다는 말은 쉽게 다가가기가 어렵다는 뜻일 게다. 가족이니 쉽게 다가가도 괜찮겠지 하지만, 설상가상 그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어려운 게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가족도 그 범주 안에 들어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래도 가족인데, 가족이니까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세상과 아름답게 이별하는 법에서는 존엄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존엄한 죽음이 있을까. 삶이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이처럼 잔혹한 선택은 없을 것이다. 죽음의 가치. 후회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 선택은 어려운 법이다. 거기에다 죽음이라면. 초보농사 고군분투기에서는 자식농사에 대해 말한다. 열매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 자녀들은, 그들의 열매를 스스로 맺게 해주어야 한다는 말. 부모의 영양분은 일부분이고 그러니 자식의 열매에 안타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세 번째 골목에서는 통찰, 특히 이 책에서 삶과 사회의 문제를 종합해서 보는 시각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누가 우리의 가족인가에서는 둘이 만나 부부가 되고 아이들이 태어나서 가족이 되고 그러나,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가족이라는 것을. 하지만 희망을, 소망을 버리지는 못하겠다. 부모로서의 용기에서는 말없이, 묵묵히 지켜보는 것. 그것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그런 거 말이다. 언젠가는 아이가 알아주겠지, 부모의 마음을. 엄마에게 안부를 전해야겠다.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어땠는지 묻고 싶다. 반짝반짝 빛나는에서는 뭐가 되지 않아도, 뭐가 될지 알 수 없어도, 무언가를 향해 끝없이 달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고 기쁘고 또 행복했다라고 한다. 이럴 때가 있었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 아침이 기다려지고 모든 생각이 그 생각으로 꽉 차는 것. 그건 바로 열정과 희망을 만들어내는, 하고픈 일이다. 그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갖고 싶은 이유다. 엄마의 자전거에서는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독한 이 말. 진실과 사실사이에 왜 사람들은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야 멋있어서. 감정 자체는 애매모호한 것이다. 부모에 대한 감정, 나도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다. 그냥 가슴 한 구석에 묻어두었을 따름이다. 4등이어도 괜찮아에서는 삶은 지혜를 터득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반문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면 언젠가는 나만의 가치관을 성립할 수 있을 터이다. 책은 그래서 중요하다. 경쟁은 미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남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해도 결국 알아차리니. 과도한 경쟁은 그래서 불편하다. 기억은 사라져도 기억은 남지에서는 실행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 안에서 발견한 지혜와 통찰. 그리고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리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편린들. 나도 그랬는데, 하는. 그래 맞아, 하는.


네 번째 골목에서는 광장의 촛불, 양성평등, 불평, 고통의 포르노, 고통의 증명, 생떼 부리기라는 익숙한 단어들과 생소한 단어들이 무게 중심을 옮겨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문제는 광장으로 끌어내되 해결은 인격을 담아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이 가슴을 울린다. 참고문헌 없음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는데, 내 속에 있는 거부감이 저자가 말하는 것과 같았다. 단지 남자라서가 아닌, 일방적으로 남자이기 때문에 받는, 그런 게 싫은 것이었다. 이 또한, 또 다른 차별이 아니지싶다. 쫓겨난 늑대는 어디로 가야 할까, 에서는 노 키즈 존, 맘충, 유대인 학살이라는 단어들의 연상물로서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냄새난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했다는 이유로 저지르는 폭력.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당방위인가. 학교폭력에서부터 성차별, 인종차별,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텔레반, 알카에다, IS 테러 단체에서부터 5공 세력들의 계엄령과 현대판 계엄령까지. 그리고 학력주의, 조직 내 권력 다툼에 이르기까지. 불평등의 무수한 형태와 행태들이 우리가 사는 곳곳에 숨어있다. 5공 세력 중에 하나인 허화평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때, 국민은 감동을 받는다는 허황된 말을 했다. 권력은 사실여부에 우선한다는 말이 실감된다. 자본이 꿈을 제한하는 사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공정사회는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기준이 성립될 때 이루어진다. 그 판단의 근거. 누가 옳고 그른 것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법과 양심에 따라, 상식에 의거해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 그나마 가난을 불모로 가난과 싸우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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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의 기본기 - 팔지 않아도 팔리는 것들의 비밀
주세훈 지음 / 다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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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다 보면 마케팅이 필요할 때가 있다. 얼마 전 독서실을 운영할 때의 일이다. 학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문자를 날리고 작은 이벤트 행사를 한 적이 있다. 마케팅의 ‘마’자도 모르던 상황에서 최적의 방안을 모색한 결과, 위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사업부장으로 있을 때, 제품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전 업무를 총괄한 경험이 있다.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고 실행에 옮긴 적이 있다. 마케팅을 알고 한 거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몸에 밴 의지의 산물이라고 할까. 하여튼 마케팅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수소문 끝에 마케팅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마치 신세계에 온 느낌이었다. 전혀 모르던 마케팅 지식은 생소했으므로 어려웠지만 단 맛이 났다고나 할까, 입에 착착 감기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 초연결 시대 등으로 정의되는 현재의 마케팅 시장은 빅데이터, IoT, AI, O2O 등등 기술의 홍수 속에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시장 점유율보다 시간 점유율이 우선시되며,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경쟁과 동업이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생산자의 영역에까지 넘나드는 소비자가 존재하는데, 소비자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마케팅 협업 구조를 만들면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언제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케팅 생각의 속도’를 높여야 하는데, 다르게 말하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마케팅 방식에서 벗어나 기술을 따라 잡을 수 있는 마케팅 방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비자와의 동업’ 이다. 즉,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어떠한 혜택을 기대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더 이상 마케터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상상력에 있지 않고, 각종 데이터 분석과 의사소통 기술을 통해 정확하게 예측해내거나 자연스레 고객들에게 직접 제공받을 수 있기에 마케팅의 성공 확률은 높이고 비용은 줄여갈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다양한 사례와 경험을 살펴보고 어떻게 고객과 협업할 수 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케팅 시장은 변하고 있다. 마케팅의 본질은 시장 안에서 상품을 더 많이 팔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시장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급변하는 시장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소비자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마케팅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이 과정은 결국 소비자를 중심으로 한 마케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상품이 저절로 판매되고 기업이 성장해나가도록 유도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마케팅의 기본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마케팅이라는 불모지에 뛰어들어 새로운 사업구상을 할 수 있는 희열을 만끽하고자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떨림으로 마케팅의 세계로 떠나보자. 행운은 도전하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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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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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운동을 하지 못할 이유가 너무나 많다. 올해 들어 아파트 커뮤니센터에 있는 헬스장을 3개월 끊고 열심히 운동을 하겠다며 다짐하고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러나 장소는 좁고 운동하는 사람은 많고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헬스장은 만원이었고 당연히 노는 운동기구는 눈을 씻고 봐도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사에서 돌아온 후 곧바로 헬스장을 찾았다. 여지없이 런닝머신 대기열은 두세 명이 있을 정도로 붐볐고 실내자전거를 비롯해서 근력운동을 할 수 있는 기구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가 된 지 오래되었다. 마지못해 잡은 운동기구가 글쎄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레그프레스 였으니, 운동의 신은 그날, 작살낼 각오를 한 게 틀림없어 보였다. 이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레그프레스 무게를 70킬로그램으로 올렸더니, 묵직하게 전달해오는 허벅지의 긴장이 불행과 함께 불청객이 찾아왔다. 모른 체 한 게 탈이었을까, 다음 날 아침 출근길 전철에서 무릎에 적신호가 왔던 것이다. 아직 젊은 나이고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했기에 괜찮을 거야, 하고 위로를 해봤지만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 근처 정형외과를 두리번거리는, 애처로운 눈동자만 길을 헤매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렇게 해서 운동을 하지 않을 이유가 또 하나 생기게 되었고 그 날 이후 불청객과 함께 살아간 계기가 되었다.


그건 그렇고 짚고 넘어갈 얘기가 하나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차별과 배제의 공간인, 운동장과 헬스장은 남자의 전유물처럼 말하고 있는데, 실제 운동장은 몰라도 헬스장을 찾으면 여자들로 북적이는 것을 금방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저자의 논점이 약간 빗나간 듯한데, 남자는 근육을 키우고 여자는 몸매를 가꾸려는 게 왜 차별인지 모르겠다. 타고난 물리적인 육체를 어쩌란 말인가. 차별과 배제를 찾을 게 아니라 건강한 육체와 아름다움을 찾으면 그만이지 싶다. 운동을 성차별의 또 다른 형태, 페미니즘으로 몰고 갈 게 아니라, 건강하고 튼튼한 몸을 가꾸기 위한 체력증진으로 보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싶다.


무릎 관절염을 앓고 나서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운동으로 인해 다치기는 했으나, 평소에 먹지 않던 멀티비타민, 크릴오일, 관절염 소염제, 유황, 녹차, 루테인 등 많은 건강보조제를 흡입하듯 집어삼키고 있다. 비록 무릎에서 시작된 불청객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슬슬 몸을 챙겨야겠다는 의지력의 발로라고나 할까.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는 말도 실감한다.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할 우리로서는, 행복하게 살려면 지금부터라도 몸을 아껴야 한다. 반평생 동안 무릎을 혹사했으니 이제부터라도 아끼고 또 아껴서 염증과 통증이 없는 건강한 몸으로 늙어가는 게 또 하나의 소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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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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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앤드 미니멀 라이프.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로망이 아닐 수 없다. 정신없이, 총알이 날아다니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퇴근 후 문득 거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이렇게 사는 게 올바른 길인가, 아니 이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두려움과 용기가 교차하는 순간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하지만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 조금 더 생각해보자, 하고 게으름 아닌 게으름을 피울 때. 시간이 더 필요해, 하고 스스로 설득을 해가며 절박한 마음을 가슴 한 구석에 묻어두는 나를 발견할 때. 뭐라 할까, 비겁함에 자존감이 떨어지는 소리가 귓속에 맴맴 도는 것을.

 

우리는 언제쯤 서로를 설득하는 수고 없이, 주류에서 벗어난다는 불안감 없이, 자신만의 이유로 행복해지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1인 지식기업을 원하는 나에게, 아직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로만 여기고 있던 나에게,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간 문장이기 때문이다. 혼자 선다는 것.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오면, 닥치게 되면 할 것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는 나 자신을 종용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그것이 가족의 반대를 무릎 쓰고 해야 하는 일이기에, 설득의 작업이 필요하고 절박한 마음만으로는 안 되기에 플랜 B를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짓누르기도 한다.

 

내일의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어제오늘과 똑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계속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지루함이 축복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뭐 그렇다고 별 수 있나. 무너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지루함을 만들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한 삶. 행복을 바라며 먼 이국땅, 그것도 남태평양의 작은 섬, 보라보라섬에 정착했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단순해서 지루하기까지 한 하루하루에 지칠 쯤, 저자는 곧 스스로가 좋아하는 삶이 아니라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삶을 추구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일의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어제오늘과 똑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계속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지루함이 축복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뭐 그렇다고 별 수 있나. 무너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지루함을 만들 수밖에 없다.”

 

저자는 별 수 있나하는 담담하고 단순한, 그리고 단단한 마음으로 그 아이러니를 웃어넘긴다.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라고 체념하듯 내뱉으며 오늘의 행복을 꽉 붙든다.

 

이제는 지구를 구하는 것처럼 반짝거리는 일이 아니어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깐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거나, 그저 지루함을 버텨내는 일이거나,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일이어도 괜찮다. 상대에 따라 전부이거나 혹은 아무것도 아닌 일들. 운이 좋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낼 수도 있는 일들.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쓸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작은 일도, 무의미한 일도 그래서 모두 의미가 있다.”

 

일 중독에 빠진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써 저자의 말이 쉽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 말이 정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정반대의 삶을 살아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직접 체험을 해보진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마치 보라보라섬의 해변을 유유히 걸어 다니는 그럼 기분이 들어 잠시나마 행복했다. 저자가 말한 대로 오늘이 언젠가 우리만 아는 농담이 될 날을 기다리며’, 그런 여운이 꼭 오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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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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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귀환의 서사. 돈과 핏줄. 가족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김범 장편소설 할매가 돌아왔다는 돈이 전부인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일생을 인정받기 위한 제니 할머니의 투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화냥년.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 조선, 1637(인조 15). 병자호란 때 오랑캐에게 끌려갔던 여인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이라는 뜻의 환향녀(還鄕女)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했다.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인원은 약 60만 명 정도인데, 이중 50만 명이 여성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이 귀국하자 엄청난 사회 문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적지에서 고생한 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기는커녕 그들이 오랑캐들의 성() 노리개 노릇을 하다 왔다고 하여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을 뿐더러 몸을 더럽힌 계집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병자호란 이전 임진·정유 양난에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던 여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환향녀들은 가까스로 귀국한 뒤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았는데, 선조와 인조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 인조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대신 첩을 두는 것을 허용하여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다.

 

과연 누가 제니 할머니를 화냥년이라고 비웃을 수 있을까. 저자의 말처럼 할매가 돌아왔다는 사실 진지한 이야기이다. 숨 가쁜 우리 역사에서 자신이 결코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삶의 궤도를 수없이 바꿔야 했던 우리의 수많은 할매들에 대한 소설이다. 어떤 역사보다 중요하지만, 어디서도 말할 자리가 없고,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이들의 눈물과 회환. 이 소설의 유머가 가볍게 잊히지 않고 우리를 바짝 긴장시키는 것은 바로 뒤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역사에 대한 주제 의식을 비춰주고 있기 때문이다.

 

할매가 돌아왔다의 엉뚱 캐릭터 제니 할머니는 그렇게 우리들의 뒤통수를 때린다. 67년 만에 돌아온 자신을 쫒아내려 하자 유산 60억이 있다는 말로 집에 눌러 앉고, 돈을 무기로 효도 경쟁을 시키면서도 돈에만 관심 있을 뿐이라며 가족들을 꾸짖는다. 가족들도 조금씩 할머니의 기막힌 사연을 이해하고 갖은 오해를 풀게 된다. 역사의 피해자이자 폭력적인 가부장제의 피해자, 그래서 측은하게 여겨지면서도 관심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할머니의 화려한 귀환이다. 독자들은 남몰래 60억 원을 바라고 있는 자신의 속물성을 발견하고 뜨끔해 하면서도, 돈 따위는 아무래도 좋으니 이 독한 할매의 유쾌한 반란이 부디 성공하기를 바라는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옛 서사시부터 현대소설까지 모험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남성의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돌아오는 여성의 이야기는? 여성에게 허락된 서사는 보통 잔류의 서사이고, 떠날 수는 있다 하더라고 떠나는 즉시 잊히는 서사였다. 그러니 여성 귀환의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할매가 돌아왔다의 탄생은 그 자체만으로 우리 문학사에 의미 있는 사건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약자인 여성에 대한 혐오감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그대로 남아있다. 유명 여자 연예인이 자신을 비하하는 댓글을 못 이기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는 현실을 비추어볼 때, 예나 지금이나 이성에 대한 불평등은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지 않으니 말이다. 인식의 개편이 필요한데, 약자인 여성을 보호할 의무가 남자에게 있는 것이다. 아니 이런 말도 필요 없다. 독립체의 한 인격으로써 그 자체를 인정하면 그만인 것이다. 평등, 참 어렵고 난해한 단어다. 가깝지만 먼 그런 단어. 손에 잡힐 것만 같지만 잡으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와도 같은 단어다. 하지만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그걸 부정하면 인간이란 존재 자체는 부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더 튼 모래 탑을 쌓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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