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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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글을 잘 짓기 위한 방법으로 다상량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게 언제부터가 책을 고르는 기준이 되었다. 고민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말도 생각이 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은 어떤 말이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어렵게 이룬 자신의 성공담을 제외하곤. 서두를 이렇게 써보고 나니 이 책은 저자의 많은 생각과 고민의 산물이 아닐까싶다. 거기에는 동심의 세계도 있고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도 있고 부모의 무한 사랑도 느껴진다. 더욱이 어른으로써 사회를 보는 통찰과 비판은 고개를 저절로 끄덕이게 한다. 정말 오랜만에 좋은 산문을 접하는 것 같다. 어렵게 아주 어렵게 써내려간 글보다 더 다가오는 것은 저자의 솔직담백한 문체가 한몫했다. 동심의 세계로 사람의 마음을 후비더니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눈물샘을 자아내고 사회비판으로 일침은 놓는다. 따끔하기 그지없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네 개의 골목을 제시한다. 첫 번째 골목은 여러 가지 핑계로 잊고 살았던 유년기의 동심을, 빗 바란 그리움을 소환해서 정겨움을 느끼게 했고, 두 번째 골목과 세 번째 골목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기를, 그리고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건드리면서 눈물샘을 자아냈다. 마지막 네 번째 골목에서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저자의 통찰로써, 넓은 식견으로써 조목조목 터치했다. 어쩌면 비판이라기보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작은 소망이 글 속에 담겨져있다.


첫 번째 골목에서는 저자와 같은 시기에 살아온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많은 공감을 자아냈다. 그 중에서 다락방 얘기는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공부방이기도 한 그 공간에서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공부했던 기억. 펄벅의 대지와 같은 세계명작전집을 읽으면서 나만의 꿈을 꾸고 간직했던 희망의 공간. 가난의 다른 표현으로써의 공간. 그렇지만 행복했던 공간.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단칸방으로부터 독립된 공간. 공부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희열을 느꼈던 공간. 그곳이 다락방이었다. 그렇게 다락방, 세계명작전집, 가난은 아른거리는 기억의 흔적,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는다. 또 하나의 빛 바란 기억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내가 살던 골목이다. 저녁 어스름을 타고 귓속을 파고드는 엄마의 목소리, 구슬치기, 자치기, 노을, 저녁밥, 술래잡기 등. 어릴 적 동네의 풍경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묘한 감정을 소환하는 도구가 된다. 동네어귀에서 메밀묵 장수의 구수한 목청과 캐롤송이 들리는 환각에 빠진다. 이 책의 제목, 참 괜찮은 눈이 온다에서는 함박함박 푸짐하게 내리는 눈이, 솜사탕 같은, 팝콘 같은 큰 알갱이가 부슬부슬 내리는 장면이 그려진다. 만지면 스르륵 없어지는, 그런 눈. 정겹고 따뜻한 눈. 올해도 기다려지는 눈 말이다. 그리고 삶의 지혜들. 지속성, 삶의 연속성, 울퉁불퉁한 파란만장한 삶이지만 삶을 지속된다 말. 터닝포인트, 전환점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계속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 그리고 무엇보다 당선자보다는 낙선자에게 늘 마음이 쓰인다는 말. 선배작가로써의 따뜻한 배려가 고맙다. 이런 말들이 절실히 필요 했었다.


두 번째 골목에서, 내 영혼의 불량식품에서는 추억은 기억과 다른가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잊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한 것은 기억이고 뜬 구름 잡듯 불현 듯 스치고 떠오르는 것은 추억이 된다. 분명 다르다. 공부머리에 필요한 기억은 없지만 다행히 옛 추억은 살아 내 곁에서 나를 지탱해주니 말이다. 엄마의 맛에서는 가족이라는 두 글자를 생각하게 한다. 알다가도 모르는 게 가족이다. 가까우면서도 먼, 여기에서 멀다는 말은 쉽게 다가가기가 어렵다는 뜻일 게다. 가족이니 쉽게 다가가도 괜찮겠지 하지만, 설상가상 그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어려운 게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가족도 그 범주 안에 들어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래도 가족인데, 가족이니까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세상과 아름답게 이별하는 법에서는 존엄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존엄한 죽음이 있을까. 삶이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이처럼 잔혹한 선택은 없을 것이다. 죽음의 가치. 후회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 선택은 어려운 법이다. 거기에다 죽음이라면. 초보농사 고군분투기에서는 자식농사에 대해 말한다. 열매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 자녀들은, 그들의 열매를 스스로 맺게 해주어야 한다는 말. 부모의 영양분은 일부분이고 그러니 자식의 열매에 안타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세 번째 골목에서는 통찰, 특히 이 책에서 삶과 사회의 문제를 종합해서 보는 시각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누가 우리의 가족인가에서는 둘이 만나 부부가 되고 아이들이 태어나서 가족이 되고 그러나,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가족이라는 것을. 하지만 희망을, 소망을 버리지는 못하겠다. 부모로서의 용기에서는 말없이, 묵묵히 지켜보는 것. 그것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그런 거 말이다. 언젠가는 아이가 알아주겠지, 부모의 마음을. 엄마에게 안부를 전해야겠다.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어땠는지 묻고 싶다. 반짝반짝 빛나는에서는 뭐가 되지 않아도, 뭐가 될지 알 수 없어도, 무언가를 향해 끝없이 달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고 기쁘고 또 행복했다라고 한다. 이럴 때가 있었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 아침이 기다려지고 모든 생각이 그 생각으로 꽉 차는 것. 그건 바로 열정과 희망을 만들어내는, 하고픈 일이다. 그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갖고 싶은 이유다. 엄마의 자전거에서는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독한 이 말. 진실과 사실사이에 왜 사람들은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야 멋있어서. 감정 자체는 애매모호한 것이다. 부모에 대한 감정, 나도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다. 그냥 가슴 한 구석에 묻어두었을 따름이다. 4등이어도 괜찮아에서는 삶은 지혜를 터득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반문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면 언젠가는 나만의 가치관을 성립할 수 있을 터이다. 책은 그래서 중요하다. 경쟁은 미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남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해도 결국 알아차리니. 과도한 경쟁은 그래서 불편하다. 기억은 사라져도 기억은 남지에서는 실행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 안에서 발견한 지혜와 통찰. 그리고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리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편린들. 나도 그랬는데, 하는. 그래 맞아, 하는.


네 번째 골목에서는 광장의 촛불, 양성평등, 불평, 고통의 포르노, 고통의 증명, 생떼 부리기라는 익숙한 단어들과 생소한 단어들이 무게 중심을 옮겨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문제는 광장으로 끌어내되 해결은 인격을 담아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이 가슴을 울린다. 참고문헌 없음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는데, 내 속에 있는 거부감이 저자가 말하는 것과 같았다. 단지 남자라서가 아닌, 일방적으로 남자이기 때문에 받는, 그런 게 싫은 것이었다. 이 또한, 또 다른 차별이 아니지싶다. 쫓겨난 늑대는 어디로 가야 할까, 에서는 노 키즈 존, 맘충, 유대인 학살이라는 단어들의 연상물로서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냄새난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했다는 이유로 저지르는 폭력.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당방위인가. 학교폭력에서부터 성차별, 인종차별,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텔레반, 알카에다, IS 테러 단체에서부터 5공 세력들의 계엄령과 현대판 계엄령까지. 그리고 학력주의, 조직 내 권력 다툼에 이르기까지. 불평등의 무수한 형태와 행태들이 우리가 사는 곳곳에 숨어있다. 5공 세력 중에 하나인 허화평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때, 국민은 감동을 받는다는 허황된 말을 했다. 권력은 사실여부에 우선한다는 말이 실감된다. 자본이 꿈을 제한하는 사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공정사회는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기준이 성립될 때 이루어진다. 그 판단의 근거. 누가 옳고 그른 것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법과 양심에 따라, 상식에 의거해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 그나마 가난을 불모로 가난과 싸우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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