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6.3 - 210호 2026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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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가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을 부인하는 이유 


#르몽드 #르몽드코리아 #르몽드디플로마티크3월호 #르디플로 


아르메니아를 알고 있나? 

고등학교 2015 교육과정 안에서는 딱히 수능이나 모의고사에 등장하는 나라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업 중에는 서아시아의 아르메니아 고원 즉 남캅카스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내륙국으로 수도는 예레반, 종교는 아르메니아 정교회라는 것을 알고 그 주변에 있는 국가들이 모두 이슬람교 신자 비율이 높은 국가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과 튀르키예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과 갈등 중에 서로의 영토 안에 영토가 포함되어 있어 늘 갈등의 소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언급한다. 월경지라고 표현하며 나고르노_카라바흐(아르차흐)와 니히체반과 소규모 영토들에 대해서 소개하고는 했다. 물론 바로 직전까지 이 지역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복잡한 문제들이 많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기사를 읽어보면... 


튀르키예는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을 왜 부인하는가? 


첫 줄에 이런 말이 나온다. 


'강대국의 권력이 대규모 학살을 자행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행위가 집단학살이었음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동원되는 것이 축소와 은폐 그리고 역사 다시 쓰기다. 즉 1915~1916년에 벌어진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과 이를 대하는 튀르키예의 태도는 강대국이 학살의 책임을 어떤 방식으로 회피하고 부정해 왔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왜 회피할까? 

여기에는 이스라엘이 끼어 있다는 것이 놀랍다. 

튀르키예는 무슬림 다수 국가 가운데 최초로 이스라엘 신생 국가를 승인한 국가이며 이스라엘의 침묵은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란다. 

이스라엘은 단지 그 이유인 건가?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오랫동안 홀로코스트의 '유일성'을 강조했던 이유이다. 

"우리는 홀로코스트와 아르메니아의 주장 사이에 유사성을 설정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이랬던 두 국가의 관계가 뚜렷한 악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튀르키예 대통령은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집단학살 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그때그때 다른 정의는 정말 혼란스럽다. 

언제는 집단학살이고 어느 때는 아니다. 를 계속 주변 정세와 관련국의 이익과 관련지어 그 배경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어찌 되었건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에 대한 분명한 점 하나는 국가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기사는 설명해 준다. 강대국을 상대로 로비를 하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진행했다. 


그럼 튀르키예는 이러한 왜곡될 수 없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왜 부정하는가? 

영토적, 재정적 배상을 수반하는 문제, 즉 현재 공원이 있는 게지 공원은 과거 아르메니아 교회와 공동묘지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것인데 묘비들이 건축자재로 쓰였다고 한다. 이에 대한 배상 요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에 대한 접근 금지, 통제, 집단학살을 부정, 왜곡하는 교육, 연구기관의 설립 등 조직적인 활동으로 국가적 책임을 회피하는 전략을 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인 사망자 수는 과장됐다.' 

'전쟁이었고 모두가 고통을 겪었다.' 

'아르메니아인들 이주는 그들 자신의 안전을 위해 분쟁 지역에서 이동시킬 필요가 있었다.' 

'불운한 전염병과 지역 범죄자들의 소행이었다.' 

'사망자는 있었지만 집단학살 의도는 없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서방의 적들과 공모했다.' 

'아르메니아 민족운동은 제국의 붕괴를 기대하며 독립 영토를 얻고자 했다.' 

'아르메니아 상인과 금융업자들이 튀르키예 민중을 착취했다.' 


위와 같은 조직적인 부정과 정당화를 통해서 말이다. 

그 입장은 어찌 되었건 자신들의 건국의 아버지들을 살인자이자 약탈자로 규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연합 가입 신청과 같은 욕심과 더불어 양가적인 입장인 것이다. 


참 복잡하지 않은 일이 없다. 

독일의 유대인 집단 학살에 대한 기억 작업이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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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 새로 쓰는 화인열전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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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겸재정선 #화인열전 #새로쓰는화인열전 #유홍준 #한국미술 


솔직히 이 책의 서평단이어서 너무 뿌듯하다. 

이 책이 1권이 되어 화인열전의 시작이 되는 겸재 정선을 출판과 함께 읽어 내려갔다는 것이 어깨를 으쓱하게 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 남도 답사 일번지를 읽고 그 뒤로 지금 내 자리에 마주하는 책장 가장 높고 잘 보이는 곳 한 칸에 번호 대로 시리즈가 나열되어 있는 것은 언제 봐도 행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데 어느 순간 누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듯 잠시 계속 이어진다는 느낌은 멈추었고, 책장 칸 서너 권 자리가 비어 있는 자리 그 칸에 어울리지 않는 다른 책을 꽂아 두었었다. 이젠 그 책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제 새로 쓰는 화인열전 시리즈에 자리를 내줘야 할 듯하다. 


그의 작품을 고급진 재질의 종이로 볼 수 있어 너무 좋다. 

그리고 그의 화풍이 변하는 것을 연속적으로 볼 수 있는 것 역시 좋다. 

책 속에서도 언급된다. 다작을 한 작가라고... 그래서인가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등 곳곳에 흩어져 전해 내려오는 그 많은 작품이 어느 날 한자리에 모여 전시되었을 때의 감동을 전하며 작가님은 '화성'이란 칭호를 언급했다. 그 전시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었지만 이 책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정말 많은 작품이 주옥같은 해설과 함께 가득가득하다. 


또한 


겸재 정선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왕이 칭찬한 작가이다. 뭐 그럼 두 말할 필요 없는 위인 아닌가? 

그에 대한 후한 평가는 그저 허언이 아니고 단순히 장수하여 오랫동안 많은 그림을 그렸던 벼슬아치에 대한 단조로운 찬사가 아니다. 

그림뿐 아니라 학문에도 능했고, 효심도 깊었으며 끝까지 붓을 놓지 않고 많이 그렸고 많이 나누었다는 것을 책에서 알 수 있었다. 

겸재 정선이라는 사람에 대한 칭찬은 p307에서 언급된 기록이 가장 인상 깊었다.


'~박대원은 그림을 잘 알지 못하나 이 그림을 아주 사랑하여 보배로 여기며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그 사랑하는 바가 그림에 있지 않고 사람에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겸재는 그 흉중에 있는 바를 붓끝에 정신을 실어 발현한 분으로 그는 늙어서까지 이를 잃지 않았다. 겸재의 그림을 말하는 세상 사람들은 문득 그 빼어나고 기이함을 보면서 절규하듯 말하기를 '핍진하도다', '신운이 감돈다'라고 하니 이는 그림을 아는 소리이다. 그러나 겸재는 모르는 말이다. 박대원은 홀로 필법의 기교를 뛰어넘어 신회가 통하듯 겸재의 마음을 얻고 팔뚝 아래에 두며 마음으로 그것을 사랑하니 박대원은 이른바 그림을 아는 자는 아니지만 그림 보는 법은 아는 자가 아니겠는가' 


"그가 사랑하는 바가 ~사람에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런 칭찬을 받는 대가인 것이다. 

지금 말하자면 인성에 전공적합성에 모든 역량이 뛰어난 서양의 다빈치이고 후대에 다산에 견줘도. 아니 굳이 누구랑 비교하지 않아도... 


가장 맘에 들었던 그림을 기록에 남겨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부채에 그린 <선면금강내산>에 가장 눈길이 많이 머물렀다. 

관동명승첩에 <시중대>, <해산정> 역시 몇 백번, 몇 천 번이라도 따라 그려보고 싶어지는 그림이다. 

<선면 송지문 시의도>에 물결을 그려내는 기법은 과거로 돌아가 그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질 정도이다. 

<우중기려도>, <강산선유도>, <강진고사도>와 같이 노년에 그린 그림들은 그 여백이 주는 멋과 나무의 가지 하나하나에 획과 먹의 농담이 보여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생겼나 싶어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했다. 


작가님이나 편집자님께 질문할 것도 생겼다. 


p273 그림 겸재정선화첩 중 <야수 소서도>를 소개하며 노인이 동자에게 책을 받고 있다.~라고 진술되었는데 다음 페이지 p275에 보면 겸재는 황석공을 신령스럽게, 장량은 무릎을 꿇고 공손히 소서를 받는 모습으로 그리고~라고 되어 있어 책을 주고받는 것이 뒤바뀌어 진술되고 있지 않나 묻고 싶어졌다.


이리 집중해서 읽은 책의 그 다음 인물의 작품과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진다. 구수하고 정겹고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이면서도 우리의 일상과 우리가 보는 경관을 담은 작품이다. 또는 동경하는 이상향이라서 관심이 더 갈수도...


기다려진다.

또 하나의 시리즈가...채워지는 순간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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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데아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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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데아 


#서울이데아 #이우 #몽상가들 #장편소설 #도서협찬 


초록과 파랑이지만 파도 같기도 하고 구름 같기도 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넓은 띠지가 인상적이다. 

띠지에 적혀있는 글귀를 옮겨보고자 한다. 


여행을 떠난단다. 

어디로 가나요? 

알제리를 지나서 이집트까지 갈 거야 

거기에는 뭐가 있는데요? 

나도 몰라 

모르는데 왜 가요? 

모르니까 가는 거지.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알았다.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옆집 아저씨와 주인공의 대화이다. 아직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말이다. 

책을 아주 많이 읽은 사람은 아니지만 모로코를 배경으로 시작하고 그곳에서 한국으로 온 후 한국을 무대로 생활하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라... 신선했다. 보통은 한국에서 해외로 나가는 방향성에 익숙해서인가보다. 

그리고 왜 모로코 라바트? 리야드? 

소설 속에서 왜 알제리? 이집트? 왜 프랑스 파리? 한국의 서울? 장소, 도시에 대한 출발과 도착이 계속되고 장소는 그저 사는 곳을 너머 주인공에게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제목에 '서울'은 그저 그냥 단순하게 우리나라 수위도시의 의미가 아닌 것이다. 


점과 점이 있고 그 점을 양끝으로 하여 잇는 선이 있다고 치자. 

한 점은 이방인이고 나머지 한 점은 한국인이다. 

그 둘 사이 어느 지점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고 양 끝점 중 한 점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한국인처럼 해도 시각적으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첫 시작이 한국인이었던 사람의 이야기도 있고, 이방인으로 한국인이 되고 싶은 지향점을 두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매번 실해하고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를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신기루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사막의 신기루는 희망이기도 하고 허망한 환상이기도 하다. 

신기루를 쫓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성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추락이기도 한 것이다. 

알제리를 지나 이집트로 나아가는 길은 사막을 관통하는 길이고 신기루를 쫓는 여정이다. 

파리에서 라바트를 거쳐 한국으로 가는 여정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보는 신기루는 주인공에게 희망인가? 허상인가?


태어난 고향이지만 이방인으로 시작한 서울 생활에서 여러 가지 신기루 같은 환상을 꿈꾸며 정착해 가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일들은 진정한 고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의 선물인지, 파리에서, 라바트에서도 느꼈던 외로움에 더욱 진하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결말에 도달하는 악마의 덫에 해당하는지.... 오로지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정, 사랑을 쫓는 주인공이 장소와 사람을 동일시하며 겪는 실제와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 같은 허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야기가 때론 잔잔하게 때론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곁에서 친구가 되어 주고 싶은 심정으로... 

끝까지 이방인이라 자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자신이 있는가에 되물음에 답변이 늦춰지는 망설임과 함께... 

난 주변에 실체가 없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지 않고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삶을 고향 땅에서 이방인들에 비해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별의별 생각을 풍부하게 해 본다. 


일고 나면 생각이 많아지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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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다커
앨리스 피니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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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다커 


#앨리스파니 #밝은세상 #장편소설 #데이지다커 #이민희 


학창 시절 과학 실험을 할 때 실험의 조건을 갖추던 것이 생각났다. 

온도는 얼마로, 습도 역시 얼마로 조건과 일치시키고... 진공상태를 가정해서 설정하기도 하고... 


뜬금없이 실험 전 조건을 맞추는 상황을 이야기한 것은 '시글라스'라는 장소의 설정 때문이다. 

간조와 만조 시간에 맞춰 세상과 연결되기도 하고 단절되기도 하는 곳 

유일한 통로가 있어 그곳으로만 세상과 이어지고 소통하며 만조 때는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장소,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보호받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곳이지만 누군가에겐 답답하고 구속되는 듯한 느낌도 줄 수 있는 장소 시글라스. 


작가는 혹시 책을 마지막 부분에서부터 적지 않았나 싶다. 

이 기록에 가족들을 죽인 누군가가 누구다!라고 남겨두기 싫어서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짝 언급을 해본다면 작가님은 처음부터 여러 인물 중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다기보다 인물 설정 처음부터 살인을 한 사람을 이야기의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두고 나무가 뿌리를 뻗어내듯 사건과 이야기 구성을 했을 듯하다. 빈틈없이... 말이다. 

작가가 이렇게 구성한 책을 우리는 처음부터 읽는다면 끝까지 누가 이런 일을 계획하고 실행했는지 알 수가 없다. 왜 나면 뿌리의 끝에서 지면을 뚫고 나무줄기로 가고 있노라면 저쪽 또 하나의 뿌리줄기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동시에 올라오고 있고 또 옆에서 올라오고... 


비디오테이프가 시글라스 집에 수많은 시계의 종소리에 맞춰 하나씩 재생되는 것처럼 그렇게 조금의 시간 차를 두고 과거의 이야기 하나가 밝혀지고 다시 또 하나의 이야기가 밝혀지고 하나의 이야기에 등장인물이 주연이었다가 조연이었다가 거짓말쟁이 가해자였다가 피해자였다가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이 다 모아져야만 그나마 누구라고 의심이라도 해볼 수 있는...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로 살인자로 의심받는 그런 막바지 상황까지 이야기는 끝까지 긴장감 있게 독자들을 몰고 간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수술 한 번 더 하면 완치도 가능하고 생명 연장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왜 엄마는 숨겼을까? 

그리고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늘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지는 않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내가 할머니였다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가장 컸고, 각자 다 자기만의 슬픔과 억울함을 갖고 살았을 테지만 행복함보다 상대적인 박탈, 고통, 괴로움이 가득했던 다커 가문의 사람들과 그 가문사람들과 인연이 맺어져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코너의 운명도... 참 기구하다고 느꼈다. 


기구한 운명이어서 이런 결말을 맺은 것인지... 

기구한 운명조차도 이들이 지닌 본성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저 무엇이 되었든 같은 결말이 참 두렵다고 생각했다. 


바다로 둘러싸여 한번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다시 썰물이 되어 나갈 수 있는 시간까지 아무도 나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수많은 시계가 한 시간씩 지났음을 알릴 때마다 벌어지는 사건들.... 가족 그 누구도~ 할머니의 생일 축하를 위해 모였으나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 생일을 맞은 사람 단 한 명도 행복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는 짧은 순간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과거부터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이 비디어 테이프로 재생되며 사람들의 기억과 비밀을 떠올려 새로운 공포에 이유를 설명하고 나름대로 정한 심판을 진행하는 책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재밌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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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홈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6
진저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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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홈 


#빅홈 #진저 #장편소설 #미래인 #청소년소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종말은 어떠한 모습으로 올까? 

세상의 종말은 언제? 어떤 속도로 내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요즘 주가로 말한다면 나름 경제적 상황은 활기를 띠고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갈 즈음 혼란을 틈타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소수의 잘못된 선택에 따라 사람들은 또 한 번 크게 실망하고 있다. 그저 단 이틀 사이에 심각하게 말이다. 그들만의 갈등과 자존심 싸움에 따른 선택으로 일부 낙관을 하고 여유를 찾아가던 일상은 다시 불안하게 되었고 이 선택으로 아무 상관없어야 할 초등학교 학생들 16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소식에 참담한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소설은 허구다. 

그렇지 않나? 소설은 허구이기에 그 어떤 속상하고 슬픈 이야기라도 잠시 마지막 책장을 덮고 차 한잔하고 날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금세 우울했던 기분을 회복할 수 있지만 자꾸 현실이 소설의 허구와 비슷해져 가는 이런 반복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언론을 통해 목도하게 된다면.... 

곧 소설 속 허구는 어느새 아주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와있을지도... 


방사능 유출, 피폭, 그리고 대를 이어 계속되는 피해 사례 


그에 대한 대책은 그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가두고 등급을 매겨 격리하는 식의 무자비함 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기록되고 있다. 

단순하다. 그저 1층엔 남자, 2층엔 여자 어느 빅 홈에는 경증, 다른 빅 홈에는 중증, 사망하면 태워 재로 만들어 사라지고 그저 하늘과 땅을 녹색으로 만들며 무언가 하고 있다는 표를 내기만 하는 세상 

이걸 몰랐을까? 

알고도 모른 척 한 건 아니고?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과학자, 기술자 그리고 글로 예견한 소설가들까지 한 목소리로 경고한 이 상황을 멀지 않은 미래에 다녀와서 보고 온 사실인 양 글로 쓰여 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뒤로 갈수록 긴장은 불안을 몰고 온다.


담을 넘어 전력질주하여 그렇게 가족을 찾아가는 용기 있는 소년, 소녀의 이야기에서 희망을 찾아볼 수 있으나 이 도주의 끝에 과연 희망이 있을지, 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들의 시위는 과연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긍정적이지 않을까 또 불안하다. 

그저 처음부터 헤이 남매가 헤어지지 않을 상황이었어야 하지 않나! 내내 그 생각이다. 

피폭에 따른 피해로 누나가 동생을 알아볼 수 없는 그 상황, 결국 바로 앞에서 죽는 순간까지도 그 사실을 모르는 이야기 속에서 사실 그 뒤 이야기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몰입되고 참담한 심정이 된다. 


먹먹해지는 결말을 맞이하면서 지금도 늦지 않았음을 인식하고 뭔가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아직 한낮의 하늘이 짙은 녹색이 아니라 파랗고 맑은 하늘에 예쁜 하얀 구름이 보이는 지금 하늘 아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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