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병에 걸렸는데 거기에 집중하고 있고 사람들에게도 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병든 세포가 더 늘어날 것이다.
자신이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를 그려라.
병은 의사에게 맡기고.

사람이 아플 때는 흔히 그에 대해 종일 이야기한다.
항상 거기에 대해 생각하고,
따라서 그걸 말로 표현하게 되기 때문이다.

몸이 좀 좋지 않다고 느껴지면 그것에 대해 말하지 마라.
더 나빠지고 싶지 않다면.
그 상태가 된 원인이 자신의 생각에 있음을 알고 되도록 자주 이렇게 말하라.
"기분 정말 좋다. 아주 좋아."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느껴라.

기분이 좋지 않은데 누군가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그 사람이 당신에게 기분 좋게 느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으니
고맙다고 생각하라.
오직 원하는 것만 말하라

- 지은이: 론다 번
Secret, 김우열 옮김, (주) 살림출판사

 

 

 손가락이 붓고 아픈 날이 며칠째이다.

 멀쩡하던 코도 아프더니 이젠 콧등만 만져도 아프다. Why?

 문득, 앙리 마티스가 말년에 손가락관절염에 걸려 그림을 못 그리게 되자 어느날 종이를 오려 새로운 작품들을 창작했던 일화가 자꾸 떠오르는 날이다.

 거의 대부분의 질병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 기왕지사 일어난 일, 잘 관찰하고 치료하고 철학하자. 정말 자신에게 책임을 질 나이가 된 것이다. 나쁘지만은 않다. 불편하고 아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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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의 깨달음, 몸의 확장

 

 그런데 그건 책 얘기이고, 사실 감옥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게 뭐냐 하면 한 평 짜리 방에서 생활하는건데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방안에 혼자 딱 앉아 있으면 마주치는 게 뭐냐 하면 자기 몸입니다. 자기 몸밖에 갖고 놀 게 없어요.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김남주 시인이 쓰신 시 중에 이런 시구가 있습니다. "감옥에 가 본 사람은 안다. 감옥에, 독방 안에 할 일이 얼마나 없는지. 독방에 앉아서 자기 몸의 일부를 붙들고 흔드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다." 조금 말을 돌려서 표현했지만 사실상 그렇습니다. 거기서 자기 몸을 관찰하게 됩니다. 딴 건 할 게 없으니까. 도대체 이 몸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생겨 먹었으며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그걸 관찰하게 됩니다. 저는 생태주의를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생태주의자는 들판에 나가서 자연을 관찰하고 새와 벗하고 이래서 생태주의자가 된다. 이게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생태주의자는 자기 몸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우리는 지금 너무나 많은 것에 둘러싸여 있어서 자기 몸을 관찰할 기회가 없어요. 너무 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있어 자기 몸이 어떻게 돼먹은지도 모릅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어요.

 

 

 '몸'이라는 글자를 한번 살펴봅시다. 'ㅁ'이 있고 점을 찍고, 일획을 긋고 다시 'ㅁ'이 있어요. 저는 이것을 이렇게 해석했어요. '첫째 미음'은 하늘이고, 점은 사람이고, 일획은 대지 즉 자연이다. '밑의 미음'은 미음 받침이고, 이 관념을 딱 놓고 가만히 앉아서 천지와 나와 대자연을 잘 생각하면서 미음을 한번 발음해 보십시요.  "음-"하고. 그럼 진동이 일어납니다. 이 진동 속에서 천지와 내가 하나가 됩니다. 이게 내 몸입니다. 내 몸안에 진동이 일자 천지만물이 하나가 된다, 그런 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이 그때부터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한 평짜리 방안에서 내가 우주구나, 그 것을 깨달으면서 주변의 모든 사물이 달라 보이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방안에 파리 같은 것이 날아오면 귀찮으니까 쫓아 버렸지만, 아, 저 녀석도 내 몸의 일부구나 하고선 같이 대화하고, 거미 한 마리가 줄을 타고 내려오면, 아, 이 녀석도 내 몸의 일부구나 하게 됩니다. 자기가 접하는 모든 것을 자기 몸의 확장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물론 감옥에 들어갔다고 해서 이런 생각을 금방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사고방식이라는 게 바뀌는 데 굉장한 시간이 걸립니다. 이것을 깨닫는 데만도 감옥 안에서 5년이라는 세월을 흘려 보냈습니다. 그 5년의 세월은 뭐였냐 하면, 내가 억울해서 못살겠다, 내가 간첩 비슷한 짓도 하지 않고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무기징역을 사는데 이거 억울해서 못살겠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 억울함을 밝혀내고 나가야겠다 하면서 이 자리에서 다 말씀드리기 힘든 별별 짓을 다 했습니다. 단식투쟁도 하고, 밀서도 날려 보내고, 만세도 불러 보고. 만세 불렀다는 건 뭐냐 하면, 그 무렵엔 독방에 갇혀 있을지라도 김일성 만세를 외치면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상태에서도 추가징역 3녀을 받았어요. 감옥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실패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그렇게 몸부림치는 가운데 제 몸도 다 망가졌어요. 하여튼 그때 제가 만성기관지염에 요통에 치통에 뭐 몸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깨달음이 동시에 오는 것이었습니다. 몸의 깨달음이랄까요. 그때 제가 몸을 치유하기 위해서 시작했던 것이 자연요법이었습니다. 자연요법으로 제가 주로 했던 것이 풀이에요. 아까 제가 몸의 화장을 이야기했는데요. 그건 방안에 있을 때 그렇고. 그 안에서 하루에 한 시간씩 운동시간이 주어지는데, 운동시간에 나가서 운동장에 난 풀들을 보면서 아, 요놈도 내 몸의 일부구나 하고 이제 그 풀들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의료시설이 변변치 않으니까 몸을 고치기 위해서 풀들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풀들을 하나하나 가꾸고 관찰하고 또 먹고 이러면서 저도 모르게 점점 생태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p.275~277)

 

 

 야생초와 더불어 짓는 농사

 

  이제 우리가 야생초와 공생하게 될 때,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지을 때 생기는 이점이 무엇인가를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종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지구상의 생물종을 무차별하게 죽여 왔어요.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그와 더불어 무수한 생물종이 더불어 살게 됩니다.

 

 두 번째로,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토양침식과 오염을 방지 할 수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풀이 덮여 있으면 토양침식이 일어나지 않아요. 자연농업의 첫째 조건이 땅을 갈지 않는 것입니다. 풀을 함부로 제거하지 않음으로써 토양침식도 방지하고 익충의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등 여러가지 이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CO2 증가를 억제 하는데 기여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실 지 모르겠지만, 지금 지구상에 이산화탄소 증가 때문에 말들이 많죠. 소위 그린하우스 효과라는 이걸 줄이기 위해서 각국에서 별의별 조치를 다 하고 있어요. 교토의정서도 그중의 하나지요. 얼마 전에 미국에서 반대를 해서 무산될 뻔하다가 어정쩡하게 타협을 해서 넘어간 일이 있는데요. 사실 지구상의 탄소는 대기 중에있는 것은 얼마 안 되고 90%가 전부 땅에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경운을 하게 되면 탄소가 공기 중으로 방출되고 CO2가 생깁니다. 지구상에 농경지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을 다 경운하게 되면 CO2 증가에 엄청나게 기여를 하게 됩니다. 자연농업이 왜 소중하냐 하면 경운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가에서는 농부들이 휴경을 하게 되면 휴경 보상금을 주는데 그 것이 휴경을 하니까 준다 이런 차원도 있고요 - 선진국에서는 다 휴경보상제를 하고 있어요 - , 그런데 여기 보상이유 중의 일부가, 당신이 휴경을 함으로써 공기중에 CO2를 방출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보상금을 준다,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건 대단히 구체적인 사례인데, 그런 이유에서도 농업이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또 풀이 무성하게 자라면 거기서 산소가 방출되니까 역시 CO2 증가를 억제하는데 기여하게 됩니다.

 

 네 번째로, 다양한 야초들이 자라게 되면 환경과 경관이 좋아지지요. '경관 생태학'이라고, 그런 것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먹거리가 다양해지고 우리 영양원이 풍부해집니다. 사실 제가 감옥에  있을 때 별명이 토끼였습니다. 토끼같이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니라, 풀이란 풀은 다 뽑아 먹고 있으니까 주위 동료들이 별병을 그렇게 붙여 줬어요. 야생초에 한번 맛을 들이년 일반 채소들은 싱거워서 맛이 없어요. 채소라는 것이 뭐냐 하면 야생초를 오랫동안 재배해서 맛과 향기를 다 빼 버리고 밋밋하게 만든 것입니다. 영양의 에센스가 다 야초에 들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수백종 심어 놓고 자기 입맛에 따라서 뽑아 먹는다면 식료품비가 따로 들 필요가 없어요.

 

 자연농법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바 같은분은요, 그분도 채소씨를 뿌려요. 그런데 채소를 길러 먹는 것이 아니고, 야생화된 채소밭을 가꿔요. 먹을 수 있는 야초씨하고 기존 채소씨, 가령 배추나 무 이런 것을 뒤섞어서 무차별로 뿌리는 거예요. 그리고는 놔둬요. 그게 하나의 야채밭이 돼요. 그러고서 자기 입맛에 맞게 뜯어 먹는 거예요. 그 밖에 차, 약술, 약재 이런 것들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조. 감옥안에 있을 때 제 방엔 책도 많이 있었지만 방이 아주 복잡했어요. 야생초를 절기마다 뜯어서 말려 가지고 그걸 비닐봉지에 담아 방에다 주욱 걸어 놓습니다. 한 10여 가지 말려 가지고 이것을 분위기에 따라서 차로 우려먹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건강을 유지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 야생초를 연구하여 풀의 특성과 맛, 이런 것을 다 알게 되면 집에서 커피 같은 것은 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야생초를 갈무리해 놓고 기분에 따라, 가령 내가 오늘 좀 우울하다 그러면 우울한 기분에 맞는 차맛이 있는데 그걸 달여 먹습니다. 자기가 연구해 보면 알아요. 오늘은 즐겁다 그러면 즐거울 때 먹는 차를 마시고, 이걸 스스로 공부하면서 알게 돼요. 그 안에서 야생초에 관한 온갖 책들을 읽고 공부하면서 이런 체계를 쌓아 나갔어요. 이것 자체가 재미죠.

 

 그 다음 여섯 번째로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다양한 생필품 재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창작력을 발휘하게 되면 가정에서 필요한 소소한 물건들은 전부  주변에서 나는 야생식물들로부터 다 얻어 쓸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전부 돈  주고 사려고  그러니까 가계비만 늘어나고 생활도 재미없게 되고 이렇게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제가 이점으로 들고 싶은 것은,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자연과 공생하면서 조화롭게 살 수 있다, 즉 자기 삶의 총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태주의 운동을 저는 복잡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생태주의 운동을 삶의 총체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삶의 조건인 식물, 자연 이것과 공생할 수 있고 일치할 수 있으면 이것이 생태주의적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가장 손쉬운 재료가  바로  야초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야초만 우리가 잘 이용하면 우리 식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을 거의 3분의 1로 줄일 수 있습니다. 3분의 1이 뭡니까? 자기가 먹는 쌀값만 들면 됩니다. 그리고 육식에 치중하고 있는 식생활로 부터도 멀어지게 됩니다. 워낙 먹을 게 다양한데 고기를 먹을 필요가 없어요.  (p.280~284)

 

 

 농업을 상업주의에서 해방시키자 (p.284)

 

 

                                             / 황대권 글과 그림, <야생초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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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젯밤엔, 한젬마의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를 읽었다.

 2001년에 나온 책이고, 지금 이 책은 2010년 7월에 27쇄 발행본이다.

 이번 주에 만나서 피차간에 마음의 충전을 할 친구에게 선물할, 업무와 가정생활을 병행하느라 너무 바쁜 친구에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몇 권의 책을 고르며 산 책이다. 아마 나도 사지는 안했지만 도서관에서 -그림 읽어 주는 여자-와 함께 빌려 보았던 것 같다. 한 십 년전쯤에. 그래서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60편의 그림 중에서, 윌리엄 존 헤네시의 <디종에 관한 자랑>. 아키히코 츠카모토

 

.

  * 무너지지 않을까, 정말 무너지지는 않을까 // 김강용

  * 혐오가 사랑으로 바뀌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 김원숙

  * 다시 올 수 없어 아름다운 날들 // 류병엽<남과 여>

  * 추억의 힘으로 노 저어 갈 수 있기를 // 이수동<해후>

  * 보낼 수도, 보내지 않을 수도 없는 편지 // 서경덕<한줄기 빛>

  * 모든 연인들은 위태롭다 // 이은호<생(生)-섬(島)>

  * 바람둥이 길들이기 // 이숙자<이브 91-1>

  * 사랑은 아직도 연금술 // 이일호<윤희>

  *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지는, 사랑은 소나기 같은 것 // 이만익<소나기>

  * 사람들 사이에 섬이 되고픈 화가,  이철수 // 이철수<인생은 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

  * 설악에 깃든 화가, 김종학 // 김종학<들풀의 연인>

  * 한줄기 구원의 푸른 빛, 전준엽 // 전준엽<빛의 정원에서>

  * 인생길이 예술이 된 화가, 최종태 // 최종태< 全身像, 1987>

  * 꿈의 상공에 뛰어 올라 빛을 파종한 화가, 윤석남 // 윤석남<999> 1997.

  * 자연으로부터 자연을 가져오는 화가, 김성호 // 김성호,<찔레꽃> 1998.

  * 삶을 훔치는 작가, 니키 리 // <여피 프로젝트> 사진等等

  * 글과 그림으로 피어올린 예술혼, 김병종 // 김병종<생명의 노래-광야> 1999.

  * 현실의 고통을 잠으로 감싸안는 행복한 여성상, 김원숙 //  김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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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들에게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이다. 어째서 날지 못하고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야 하는지, 왜 그렇게 많은 집이 필요한지, 거기다 전쟁을 일으켜 서로를 죽이는 인간들을 어찌 이해할까. '자칭' 고등동물들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새들 편에서 보면 인간은 참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며 산다. 인간들 사는 게 얼마나 복잡한가.

 요즘 읽고 있는 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에서 옮겨 본다.

 

 

 차나 커피, 우유도 마시지 않고 버터와 고기도 먹지 않으니 그러한 것을 사기 위해 일할 필요는 없다. 또 별로 일하지 않으니까 그다지 먹을 필요도 없고, 따라서 식비는 많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당신은 처음부터 차나 커피, 버터, 우유, 쇠고기 등을 먹고 마시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사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고, 필사적으로 일하면 체력의 소모를 보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먹지 않으면 안된다.

 

 

 새처럼 날아다닌다는 게 얼마나 간편한가. 날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하기 때문에 뭘 소유할 수도 없다. 집도 필요 없다. 짐이 없으니 이고 지고 다닐 것도 없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 그만이다. 신선이 따로 없다. 인간은 나는 걸 포기하는 대신 힘들여 걸어야 했고 자동차를 만들어야 했고 집도 지어야 했고 직업을 구해야 했다. 걷는 것과 동시에 고행이 시작된 것이다. 새들에게 인간은 가장 진화가 덜 된 동물일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새가 되고 싶다. 새는 무위진인 無位眞人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의 뒷산 높이는 해발 700미터이고 그 뒤 지장봉은 해발 870미터나 된다. 독수리나 말똥가리는 이렇게 높은 산을 휘감으며 비행을 한다. '구글어스' 위성지도로 70미터 위에서 내려다 보면 자동차는 약 3밀리미터 크기로 보이고 사람은 자세히 봐야 보일 듯 말 듯 하다. 겨울철 눈이 쌓이고 한파가 계속되면 독수리 먹이로 쇠기름을 놓아주는데 새들은 이렇게 높은 곳을 날며 지상의 먹이를 찾아낸다.

 나는 가끔 '구글어스' 위성지도를 열어놓고 '새놀이'를 즐긴다. 항공기는 대개 비행 효율이 가장 좋은 지상 10킬로미터 상공을 비행하지만 새가 나는 높낮이는 자유롭다. 500미터 상공을 날기도 하고 1천 미터 상공을 날기도 하고, 대륙과 대륙을 이어 날기도 하며 세계의 거의 모든 도시를 날아다닌다.

 '새놀이'를 하다 보면 새들이 이동할 때 자력을 이용한다는 말이 곧이들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63빌딩에 올라 서면 멀리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 것처럼 지상 1천 미터만 올라 가면 목적지가 어디든 집을 잃을 염려는 없어 보인다. 산맥이나 강을 따라가면 반드시 바다에 도달하게 된다. 해안을 따라 이동하면 지구 어디든지 갈 수가 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엔 아주 단순하면서도 깊은 진리가 숨어 있다.

 

 

                                          -도연스님,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p.236~23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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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고료도 주지 않는 잡지에 시를 주면서

              정신이 밥 먹여주는 세상을 꿈꾸면서

              아직도 빛나는 건 별과 시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제 숟가락으로 제 생을 파먹으면서

              발 빠른 세상에서 게으름과 느림을 찬양하면서

              냉정한 시에게 순정을 바치면서 운명을 걸면서

              아무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면서

              새소리를 듣다가도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고 책

              상을 치면서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시적인 삶에 대해 쓰고 있는 동안

              어느 시인처럼 나도 무지하게 땀이 났다

 

              * 연암 박지원의 글 [답경지(答京之]에서.

 

 

                                        

 -천양희, <너무 많은 입>중에서-

 

 

 

 오늘 천양희(千良姬)詩人의 이 詩集이 내게로 왔다. 시집 몇 장을 넘기다 이 시가 눈에 들어 오다. 문득, 읽기를 멈추고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성일씨처럼 책을 읽기前 손을 씻지는 못해도 이문재詩人의 말씀처럼 척추를 곧게 세우고 읽어야 할 것 같아서. 房을 깨끗히 청소를 하고 주변을 고요하게 잠재운 뒤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첫 詩로 나오는 -구르는 돌은 둥글다- 중, '모서리가 없는 것들이 나는 무섭다 이리저리/구르는 것들이 더 무섭다'에 마음이 박히다. -마음의 달-,  -물결무늬고둥-, -너무 많은 입-, -산에 대한 생각-, -썩은 풀-, -뒷길-, -수락시편-, 等等..시인의 詩들를 읽으며 질팍했던 정신을 추스린다. 얇고 가볍고 분주한 世間을 걸어가다가. < 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을 읽으며 공선옥님의 글과 더불어 시인의 글이 깊어서 인상깊었었는데 오늘 이 시집을 읽으니 더욱 충만하다. 1942년生으로 올해로 등단 47년을 맞은 천양희(千良姬)詩人. 시집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시인의 말'로 시인의 詩에 대한 소감을 대신한다.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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