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깨달음, 몸의 확장

 

 그런데 그건 책 얘기이고, 사실 감옥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게 뭐냐 하면 한 평 짜리 방에서 생활하는건데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방안에 혼자 딱 앉아 있으면 마주치는 게 뭐냐 하면 자기 몸입니다. 자기 몸밖에 갖고 놀 게 없어요.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김남주 시인이 쓰신 시 중에 이런 시구가 있습니다. "감옥에 가 본 사람은 안다. 감옥에, 독방 안에 할 일이 얼마나 없는지. 독방에 앉아서 자기 몸의 일부를 붙들고 흔드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다." 조금 말을 돌려서 표현했지만 사실상 그렇습니다. 거기서 자기 몸을 관찰하게 됩니다. 딴 건 할 게 없으니까. 도대체 이 몸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생겨 먹었으며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그걸 관찰하게 됩니다. 저는 생태주의를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생태주의자는 들판에 나가서 자연을 관찰하고 새와 벗하고 이래서 생태주의자가 된다. 이게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생태주의자는 자기 몸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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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 너무나 많은 것에 둘러싸여 있어서 자기 몸을 관찰할 기회가 없어요. 너무 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있어 자기 몸이 어떻게 돼먹은지도 모릅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어요.

 

 

 '몸'이라는 글자를 한번 살펴봅시다. 'ㅁ'이 있고 점을 찍고, 일획을 긋고 다시 'ㅁ'이 있어요. 저는 이것을 이렇게 해석했어요. '첫째 미음'은 하늘이고, 점은 사람이고, 일획은 대지 즉 자연이다. '밑의 미음'은 미음 받침이고, 이 관념을 딱 놓고 가만히 앉아서 천지와 나와 대자연을 잘 생각하면서 미음을 한번 발음해 보십시요.  "음-"하고. 그럼 진동이 일어납니다. 이 진동 속에서 천지와 내가 하나가 됩니다. 이게 내 몸입니다. 내 몸안에 진동이 일자 천지만물이 하나가 된다, 그런 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이 그때부터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한 평짜리 방안에서 내가 우주구나, 그 것을 깨달으면서 주변의 모든 사물이 달라 보이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방안에 파리 같은 것이 날아오면 귀찮으니까 쫓아 버렸지만, 아, 저 녀석도 내 몸의 일부구나 하고선 같이 대화하고, 거미 한 마리가 줄을 타고 내려오면, 아, 이 녀석도 내 몸의 일부구나 하게 됩니다. 자기가 접하는 모든 것을 자기 몸의 확장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물론 감옥에 들어갔다고 해서 이런 생각을 금방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사고방식이라는 게 바뀌는 데 굉장한 시간이 걸립니다. 이것을 깨닫는 데만도 감옥 안에서 5년이라는 세월을 흘려 보냈습니다. 그 5년의 세월은 뭐였냐 하면, 내가 억울해서 못살겠다, 내가 간첩 비슷한 짓도 하지 않고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무기징역을 사는데 이거 억울해서 못살겠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 억울함을 밝혀내고 나가야겠다 하면서 이 자리에서 다 말씀드리기 힘든 별별 짓을 다 했습니다. 단식투쟁도 하고, 밀서도 날려 보내고, 만세도 불러 보고. 만세 불렀다는 건 뭐냐 하면, 그 무렵엔 독방에 갇혀 있을지라도 김일성 만세를 외치면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상태에서도 추가징역 3녀을 받았어요. 감옥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실패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그렇게 몸부림치는 가운데 제 몸도 다 망가졌어요. 하여튼 그때 제가 만성기관지염에 요통에 치통에 뭐 몸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깨달음이 동시에 오는 것이었습니다. 몸의 깨달음이랄까요. 그때 제가 몸을 치유하기 위해서 시작했던 것이 자연요법이었습니다. 자연요법으로 제가 주로 했던 것이 풀이에요. 아까 제가 몸의 화장을 이야기했는데요. 그건 방안에 있을 때 그렇고. 그 안에서 하루에 한 시간씩 운동시간이 주어지는데, 운동시간에 나가서 운동장에 난 풀들을 보면서 아, 요놈도 내 몸의 일부구나 하고 이제 그 풀들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의료시설이 변변치 않으니까 몸을 고치기 위해서 풀들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풀들을 하나하나 가꾸고 관찰하고 또 먹고 이러면서 저도 모르게 점점 생태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p.275~277)

 

 

 야생초와 더불어 짓는 농사

 

  이제 우리가 야생초와 공생하게 될 때,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지을 때 생기는 이점이 무엇인가를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종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지구상의 생물종을 무차별하게 죽여 왔어요.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그와 더불어 무수한 생물종이 더불어 살게 됩니다.

 

 두 번째로,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토양침식과 오염을 방지 할 수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풀이 덮여 있으면 토양침식이 일어나지 않아요. 자연농업의 첫째 조건이 땅을 갈지 않는 것입니다. 풀을 함부로 제거하지 않음으로써 토양침식도 방지하고 익충의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등 여러가지 이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CO2 증가를 억제 하는데 기여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실 지 모르겠지만, 지금 지구상에 이산화탄소 증가 때문에 말들이 많죠. 소위 그린하우스 효과라는 이걸 줄이기 위해서 각국에서 별의별 조치를 다 하고 있어요. 교토의정서도 그중의 하나지요. 얼마 전에 미국에서 반대를 해서 무산될 뻔하다가 어정쩡하게 타협을 해서 넘어간 일이 있는데요. 사실 지구상의 탄소는 대기 중에있는 것은 얼마 안 되고 90%가 전부 땅에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경운을 하게 되면 탄소가 공기 중으로 방출되고 CO2가 생깁니다. 지구상에 농경지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을 다 경운하게 되면 CO2 증가에 엄청나게 기여를 하게 됩니다. 자연농업이 왜 소중하냐 하면 경운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가에서는 농부들이 휴경을 하게 되면 휴경 보상금을 주는데 그 것이 휴경을 하니까 준다 이런 차원도 있고요 - 선진국에서는 다 휴경보상제를 하고 있어요 - , 그런데 여기 보상이유 중의 일부가, 당신이 휴경을 함으로써 공기중에 CO2를 방출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보상금을 준다,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건 대단히 구체적인 사례인데, 그런 이유에서도 농업이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또 풀이 무성하게 자라면 거기서 산소가 방출되니까 역시 CO2 증가를 억제하는데 기여하게 됩니다.

 

 네 번째로, 다양한 야초들이 자라게 되면 환경과 경관이 좋아지지요. '경관 생태학'이라고, 그런 것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먹거리가 다양해지고 우리 영양원이 풍부해집니다. 사실 제가 감옥에  있을 때 별명이 토끼였습니다. 토끼같이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니라, 풀이란 풀은 다 뽑아 먹고 있으니까 주위 동료들이 별병을 그렇게 붙여 줬어요. 야생초에 한번 맛을 들이년 일반 채소들은 싱거워서 맛이 없어요. 채소라는 것이 뭐냐 하면 야생초를 오랫동안 재배해서 맛과 향기를 다 빼 버리고 밋밋하게 만든 것입니다. 영양의 에센스가 다 야초에 들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수백종 심어 놓고 자기 입맛에 따라서 뽑아 먹는다면 식료품비가 따로 들 필요가 없어요.

 

 자연농법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바 같은분은요, 그분도 채소씨를 뿌려요. 그런데 채소를 길러 먹는 것이 아니고, 야생화된 채소밭을 가꿔요. 먹을 수 있는 야초씨하고 기존 채소씨, 가령 배추나 무 이런 것을 뒤섞어서 무차별로 뿌리는 거예요. 그리고는 놔둬요. 그게 하나의 야채밭이 돼요. 그러고서 자기 입맛에 맞게 뜯어 먹는 거예요. 그 밖에 차, 약술, 약재 이런 것들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조. 감옥안에 있을 때 제 방엔 책도 많이 있었지만 방이 아주 복잡했어요. 야생초를 절기마다 뜯어서 말려 가지고 그걸 비닐봉지에 담아 방에다 주욱 걸어 놓습니다. 한 10여 가지 말려 가지고 이것을 분위기에 따라서 차로 우려먹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건강을 유지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 야생초를 연구하여 풀의 특성과 맛, 이런 것을 다 알게 되면 집에서 커피 같은 것은 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야생초를 갈무리해 놓고 기분에 따라, 가령 내가 오늘 좀 우울하다 그러면 우울한 기분에 맞는 차맛이 있는데 그걸 달여 먹습니다. 자기가 연구해 보면 알아요. 오늘은 즐겁다 그러면 즐거울 때 먹는 차를 마시고, 이걸 스스로 공부하면서 알게 돼요. 그 안에서 야생초에 관한 온갖 책들을 읽고 공부하면서 이런 체계를 쌓아 나갔어요. 이것 자체가 재미죠.

 

 그 다음 여섯 번째로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다양한 생필품 재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창작력을 발휘하게 되면 가정에서 필요한 소소한 물건들은 전부  주변에서 나는 야생식물들로부터 다 얻어 쓸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전부 돈  주고 사려고  그러니까 가계비만 늘어나고 생활도 재미없게 되고 이렇게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제가 이점으로 들고 싶은 것은,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자연과 공생하면서 조화롭게 살 수 있다, 즉 자기 삶의 총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태주의 운동을 저는 복잡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생태주의 운동을 삶의 총체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삶의 조건인 식물, 자연 이것과 공생할 수 있고 일치할 수 있으면 이것이 생태주의적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가장 손쉬운 재료가  바로  야초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야초만 우리가 잘 이용하면 우리 식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을 거의 3분의 1로 줄일 수 있습니다. 3분의 1이 뭡니까? 자기가 먹는 쌀값만 들면 됩니다. 그리고 육식에 치중하고 있는 식생활로 부터도 멀어지게 됩니다. 워낙 먹을 게 다양한데 고기를 먹을 필요가 없어요.  (p.280~284)

 

 

 농업을 상업주의에서 해방시키자 (p.284)

 

 

                                             / 황대권 글과 그림, <야생초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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