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에게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이다. 어째서 날지 못하고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야 하는지, 왜 그렇게 많은 집이 필요한지, 거기다 전쟁을 일으켜 서로를 죽이는 인간들을 어찌 이해할까. '자칭' 고등동물들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새들 편에서 보면 인간은 참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며 산다. 인간들 사는 게 얼마나 복잡한가.

 요즘 읽고 있는 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에서 옮겨 본다.

 

 

 차나 커피, 우유도 마시지 않고 버터와 고기도 먹지 않으니 그러한 것을 사기 위해 일할 필요는 없다. 또 별로 일하지 않으니까 그다지 먹을 필요도 없고, 따라서 식비는 많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당신은 처음부터 차나 커피, 버터, 우유, 쇠고기 등을 먹고 마시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사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고, 필사적으로 일하면 체력의 소모를 보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먹지 않으면 안된다.

 

 

 새처럼 날아다닌다는 게 얼마나 간편한가. 날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하기 때문에 뭘 소유할 수도 없다. 집도 필요 없다. 짐이 없으니 이고 지고 다닐 것도 없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 그만이다. 신선이 따로 없다. 인간은 나는 걸 포기하는 대신 힘들여 걸어야 했고 자동차를 만들어야 했고 집도 지어야 했고 직업을 구해야 했다. 걷는 것과 동시에 고행이 시작된 것이다. 새들에게 인간은 가장 진화가 덜 된 동물일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새가 되고 싶다. 새는 무위진인 無位眞人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의 뒷산 높이는 해발 700미터이고 그 뒤 지장봉은 해발 870미터나 된다. 독수리나 말똥가리는 이렇게 높은 산을 휘감으며 비행을 한다. '구글어스' 위성지도로 70미터 위에서 내려다 보면 자동차는 약 3밀리미터 크기로 보이고 사람은 자세히 봐야 보일 듯 말 듯 하다. 겨울철 눈이 쌓이고 한파가 계속되면 독수리 먹이로 쇠기름을 놓아주는데 새들은 이렇게 높은 곳을 날며 지상의 먹이를 찾아낸다.

 나는 가끔 '구글어스' 위성지도를 열어놓고 '새놀이'를 즐긴다. 항공기는 대개 비행 효율이 가장 좋은 지상 10킬로미터 상공을 비행하지만 새가 나는 높낮이는 자유롭다. 500미터 상공을 날기도 하고 1천 미터 상공을 날기도 하고, 대륙과 대륙을 이어 날기도 하며 세계의 거의 모든 도시를 날아다닌다.

 '새놀이'를 하다 보면 새들이 이동할 때 자력을 이용한다는 말이 곧이들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63빌딩에 올라 서면 멀리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 것처럼 지상 1천 미터만 올라 가면 목적지가 어디든 집을 잃을 염려는 없어 보인다. 산맥이나 강을 따라가면 반드시 바다에 도달하게 된다. 해안을 따라 이동하면 지구 어디든지 갈 수가 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엔 아주 단순하면서도 깊은 진리가 숨어 있다.

 

 

                                          -도연스님,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p.236~23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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