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울자

 

 

 

 

 

차라리

더 울자

더는 울 수 없을 때까지

더 울자

창밖 나무 꼭대기를 보며 울자

잎들끼리 부딪히건 그렇지 않건

구애되지 말고 더 울자

더는 기다리지 않게 될 때까지

더 울고 기다리자

기다리면서 울고

울면서 기다리자.*  (P.58 )

 

 

 

* 피나 바우쉬, <Full Moon> 중.

 

 

 

 

 

 

 

만우절, 헌법재판소 담벼락

 

 

 

 

 

헌법재판소 담벼락에 기대 서 있다 받은

통합진보당 해산청구사건 방청권을 들고

맞은편 찻집에 앉아

재판소 담벼락 소나무들을 본다

 

 

거짓말도 없이 봄을 속여먹은 날씨

잠시 멈춘 관광버스 속, 재판소를 향한 손짓들

여기, 어떤 거짓보다 비루한 현실이 있고

잠시 두고온 곳에선 한 사람이

구원 같은 거짓도 힘겨워

자꾸만 달아났다. (P.6 )

 

 

 

 

 

 

 

증인

 

 

 

 

 

윤산 계곡의 나무들

부드러운 붉은 흙과 돌부리들

멀리 수원지의 반짝이는 물

학교 가는 길 늘어선 가게들

마주치는 고양이들과 강아지들

법대 가장자리의 돌계단

무엇보다 저 나무가

지켜보는데

미안해요 아직 훌륭해지지 못했네요. (P.67 )

 

 

 

 

 

 

지금의 사랑

 

 

 

 

 

지금의 사랑이

아무 것도 뒤늦지 않다고

어떤 것도 헛되지 않다고

말해준다.  (P.95 )

 

 

 

 

 

 

 

 

좌익사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공판*을 보고서 탄 전철

국가정보원 홍보방송에

여전히 박혀 있는

성립할 수 없는 단어

 

 

이 좀비세상에서

나는 사유를 잃을 수 없는 좌익

외로운 이들 중 하나

 

 

범죄자를 필요로 하는 권력아

이 사람을 보라.*  (P.114 )

 

 

 

 

*서울고등법원 2014노762, 2014년 6월 9일 변론기일.

*니체의 책 제목 [이 사람을 보라] 에서 따옴.

 

 

 

 

 

 

 

Liberal Democracy in Court *

 

 

 

 

 

'자유민주주의'가

'진보' '자주' '민중' '주체' '인간해방'

이란 말을 삭제하는 것을 본다

 

 

자신을 부정하는 '자유'가

'식민지'라는 의견을

'사회주의'라는 사상을

'계급해방'이라는 합헌적 가치를

뭉개는 것을 본다

 

 

스스로 모순되는 '민주주의'가

'종속'과 '착취'에

비루한 침묵만을

허하는 것을 본다

 

 

이 슬픈 세상을

어찌 견딜까.  (P.133 )

 

 

 

*통합진보당 해산청구사건 2014년 6월 24일 방청 후.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절망스럽고 괜찮다

절망스럽고 괜찮을 것이다

 

 

절망스럽지 않고

괜찮지 않다.  (P.240 )

 

 

 

*존 쿳시의 소설(민음사,2009) 제목에서 따왔다.

 

 

 

 

 

 

 

 

연두가 흐른다

 

 

 

 

 

 

후줄근한 잠바를 입고

원고펑크 사과메일을 쓰고

난로에 발을 올린 채

흐려지는 바깥을

돋아나는 나뭇잎을 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모른다

몸 안으로

연두가 흐른다.  (P.3 )

 

 

 

 

 

 

                                                        -오정진 詩集, <연두가 흐른다>-에서

 

 

 

 

 

 

멍게

 

 

 

 

 

멍청하게 만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멍게는 참 조용하다

천둥벼락 같았다는 유마의 침묵도

저렇게 고요했을 것이다

 

 

허물덩어리인 나를 흉보지 않고

내 인생에 대해 충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멍게는 얼마나 배려 깊은 존재인가

 

 

바다에서 온 지우개 같은 멍게

멍게는 나를 멍청하게 만든다

무슨 말을 할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멍!

소리를 내면 입 안이 울림의 공간

 

 

메아리치는 텅 빈 골짜기

범종 소리가 난다

 

 

멍  (P.202 )

 

 

 

 

 

                                                   -최승호 詩集, <얼음의 자서전>-에서

 

 

 

 

 

 

 

 

 

 

 

 

 

 

 

 

 

 

 

 

 

 

 

 

 

 

 

 

 

 

 

 

 

 

 

 

 

 

 

 

 

 

 

 

 

 

 

 

 

 

 

 

 

 

 

 

 

 

 

 

 

접힌 부분 펼치기 ▼

 책 이야기

 

 

 

당신도 기억하는 항구도시의 스피노자와

그의 존재에의 긍정과 사랑을 좇는 [공통체]*

[율리시즈]**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느낌,

조지 오웰이 말하는 '보통 사람들의 품위'.  (P.167 )

 

 

 * 안토니오 네그라마이클 하트, [공통체: 자본과 국가 너머의 세상],

사월의책, 2004.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슬픔이 일으킨다

 

 

 

슬픔이

잠도 없이

조용히 날 일으킨다

 

 

그렇게

절망보다

그리움보다

늘 슬픔이

먼저 와서

오래 기다린다

 

 

붉은 옷을 입으려다

조간신문 날짜를 보고*

검은 색을 읽는다  (P.209 )

 

 

 

*2014년 1월 20일. 용산참사 5주기이다.

 

 

 

 

-오정진, <쓰지 않은 일기 : 100 days >-에서

여기에 접힐 내용을 입력해주세요.

 

펼친 부분 접기 ▲

 

 

 

 

 

 

 

 


댓글(32) 먼댓글(0) 좋아요(5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4-12-20 01:27   좋아요 0 | URL
법은 `가진 사람` 마음이고,
사랑은 `나누는 사람` 마음이니,
우리는
법대로 살기보다는
사랑대로 살아야지 싶습니다..

appletreeje 2014-12-21 03:10   좋아요 1 | URL
당연히 사랑대로 살아야겠지요..

2014-12-20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1 0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0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1 0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0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1 0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14-12-20 16:07   좋아요 1 | URL
많이 먹먹했던 하루고_
오늘도 마찬가지 심정입니다.

appletreeje 2014-12-21 03:15   좋아요 1 | URL
앞으로가 더 걱정이고 막막합니다..

2014-12-20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1 0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1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1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1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1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1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1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1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1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3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3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4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5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9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9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31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1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5-01-23 19:47   좋아요 1 | URL
몸 안으로 연두가 흐른다니요,
참 시인들이란...
제 몸 안엔 뭐가 흐르는지 살펴봐야겠어요. ^^*

appletreeje 2015-01-23 23:44   좋아요 1 | URL
그렇치요~?^^ 몸 안으로 연두가 흐른다니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생명`으로 살아가는 일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 같기도 해요.^^

다크아이즈님의 몸 안에는 글이 흐를 것 같고,
제 몸 안엔 알콜이 흐를 것 같아요.ㅎ
지금도 오늘 받은, [주객전도]를 읽으며 낄낄대고 있는데욤.^^;;


다크아이즈님! 반가운 댓글 감사드리며~
편안하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詩21 2015-04-02 00:39   좋아요 1 | URL
좋은 하루 만드세요. 아직 난 댓글에 익숙해저야 겠네요

appletreeje 2015-04-02 06:41   좋아요 1 | URL
예~~감사합니다!
저도 댓글은 늘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저 서재지기님께 마음을 전하거나
어떤 글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았을 때 와락
제 마음이나 생각을 함께 이야기하는 일 같아요.

올려주신 책 [아무 날도 아닌 날]은 저도 요즘 읽은 책이라
반가웠습니다~~
유준님께서도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