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오르는 동네 산자락에는 맨손체조를 할 만한 너덧 평 정도 공간이 있다. 주위에는 산벚나무와 개옻나무가 어우러지고 소나무끝에 청설모가 둥지를 틀고 산다. 때로는 다람쥐며 산토끼가 놀고 있다 인기척에 놀라 달아나곤 한다.
한바탕 체조를 끝내고 나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는다. 이것저것 생각에 잠긴다. 고즈넉한 바람이 참 좋다. 사람이 다녀간 흔적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곳을 좋아하는 이가 많은 모양이다.
지난해 리기다소나무 옆 땅속에서 상수리 나무 순이 청순한 모습으로 올라왔다. 근처에 살고 있는 청설모가 숨겨놓고 잊은 것 같다. 어느날인가 그렇게 예쁘던 순이 사람 발에 짓밟혀 허리가 꺾이고 말았다.
그런데 올해 봄, 거기서 기적같이 순이 다시 돋았다. 양란화분에서 뽑아놓았던 철심 몇 개를 가져다 단단하게 붙들어 매주었다. 며칠 후 가서 보니 철심은 구부러져 뒹굴고 있었고, 지난해처럼 허리가 다시 꺾인 게 아닌가? 리기다소나무에 매달려 운동하던 무심한 이의 발에 짓밟힌 모양이다. 그런 전후사정을 한 독림가(篤林家) 친구에게 말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걱정 안 해도 돼. 참나무는 나이테보다 실제 나이가 훨씬 더 많은 경우가 흔해. 순이 산불에 타거나 큰 나무 아래 그늘에 치어 스러졌다가 다시 나기를 거듭하기 때문이지. 그렇게 억척스런 상수리나무니 내년엔 분명히 다시 돋아날 거야."
그래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봄을 기다리는 이유가 내게 한 가지 더 늘었다. (P.15~16 )
-이완주, <어느 따뜻한 오후의 농담>-에서
오랜만에 갑작스레 모인 벙개모임 후, 또 그 술집 옆 그 서점에서 책선물을 받았다.
처음엔 조금 의아해 하시더니, 이젠 당연하다는 듯이 "자, 뭐 살래? 너 읽고 싶은 책 골라 봐~"
하시는 말씀에..쪼금..죄송했지만, 곧 "감사합니당~!!!" 인사를 드리고 매의 눈이 되어 마음에
들어 오는 책 몇 권을, 착착 골랐다. 그리고 계산대까지 조신하게 따라가 선배께서 계산을
하시자 마자, 얼릉! 책보따리를 받아들고 신나게 서점을 나와, 가시는 길 격하게 인사를 드리고
집에 와...식구들 밥 주고, 눈앞에 닥친 일을 겨우 마치고...이제 히히히~책들을 펼친다.
오늘밤도 아마 생밤을 깔 것 같다.
'봄을 기다리는 이유'만 우선 읽었어도...아마 누구나 그 이유는 저마다 함박꽃처럼 많을 것
이다.^^
오늘 선물 받은 책들을, 흐믓하게 펼쳐 놓고 바라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