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서정을 다양하게 개척한 양동식 시인의 간결한 시 언어
고단한 삶과 닫힌 마음, 지친 영혼을 다독이는 푸른 서정시저자 양동식은 전통적 서정의 시세계를 다양하게 실험적으로 개척해 온 시인이다. 그의 시가 특징적으로 삼고 있는 전아(典雅)함과 단아함은 기품 있는 언어로 구사되어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짧은 시어에 무어라 감상을 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스며들도록 마음으로 읽고 영혼에 울리는 긴 여운을 그대로 깊이 느낀다. 삶의 단상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내고 발표한 작품 중 66편을 골라 시인의 나이 일흔에 ‘뼈아픈 소리’로 평생의 시 작품을, 그리고 인생을 담아냈다.
병원을 개업한 날부터 나는 줄곧 입원해 있다. 언제 퇴원할 지 아무도 모른다. 가끔 세상 소식을 싸가지고 와서 커피잔에 가득 위로의 말을 따라주는 다방아가씨 말고는 문병 오는 사람도 없다.……아내는 나더러 다른 환자들처럼 술 담배를 끊으라고 윽박지르지만 선천적인 무슨 결핍증인지 그것도 되질 않는다. 날이 밝으면 온갖 환자들의 모든 病을 함께 앓으면서 내 병은 더 더치고 밤이면 또 잠을 이루지 못해 겨울 긴긴 밤 담배연기로 기다란 내장을 그슬리면서 아픈 곳마다 알콜 소독을 하면서 뾰족한 처방도 없이 퇴원 날짜만 손꼽아 기다린다.
- 서문 중에서
산을 버리고 간 이들,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거부하고 떠나간 이들, 세속적인 명리와 물질적 풍요를 찾아간 이들에게 시인은 ‘마른 꽃잎’ 하나 건넨다.
저자의 평생의 실험적 행보로 자신의 시적 진로를 모색하고 발표한 시어들 중에서 66편을 모았다.
1부 ‘안부’, 2부 ‘나는 시를 밴다’, 3부 ‘바람 불면’의 3부로 나누어 저자의 다양한 시성의 세계를 만난다.
마른 꽃잎으로
베갯속 넣었더니
기러기 한 마리
머리맡에 기댄다
-1부 중 「들국화」
하늘은
넓고 넓어서
한 눈에
다 볼 수 없다
-2부 중 「하늘」
섬돌 밑
작은 방 빌어
이슬에 씻은 악기
줄 한 번 더 고르고
……
영겁에 전할 가락으로
세속의
내 귀 뚫어주는가
-3부 중 「귀뚜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