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성당 안 제대(祭臺)를 둘러싸고 작은 숲이 만들어졌다. 대림주일이 되기 전에 성당의 청년부 형과 누나들이 산에서 날라온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다. 솜도 달고 별도 달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작은 꼬마 전구를 줄줄이 매단 전선을 성탄목에 보기 좋게 휘감는 일이다. 꼬마전구가 많이 켜질수록 성탄이 가까워졌다는 뜻이 된다.

 새벽에 별을 보며 집을 나서서 눈길에 꽁꽁 언 발을 하고 첫 미사에 참례할 때 그 전 주일보다 더 많이, 더 황홀하게 반짝이는 성탄목을 보면 저절로 목이 메곤 했다. 목멜 것까지야 있겠느냐고 할지도 모르나 시골하고도 시골인 우리 동네에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조금 전에야 전깃불이 들어왔던 것이다. 성탄 전야 자정미사 때에는 성탄목에 달린 모든 불이 한꺼번에 켜진다. 어둡고 추운 길을 걸어온 시골 아이들은 성당에 들어서면서 복숭아나

 

 

무처럼, 살구나무처럼 환히 꽃핀 성탄목을 보고는 일제히 목이 멘다. 막 태어난 아기 예수가 마리아에게 안겨 있는 구유에도 어김없이 작은 불이 반짝거린다.

 그 앞에서 무릎을 끓으며 다시 목이 멘다. 글로오오오오오리아 하고 노래하는 성가대의 합창에 다시 목이 멘다. 도시의 아이들은 따뜻한 방 안에서 침대 머리맡에 있는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넣어주고 갈 양말을 매다는지, 굴뚝을 청소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시골 아이들은 목이 메느라 정신이 없다. 목멘, 그게 시골아이들에게 주는 산타클로스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시골 아이인데도 진짜로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가 있었다. 그분은 나의 대부(代父)였다. 내가 사는 동네보다 더 시골인, 저수지를 하나 지나가야 하는 동네에 사는 그분의 성은 잊었다. 이름은 원래 몰랐다. 세례명은 나자로였다. 성경 속의 나자로처럼, 그는 새로 살아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무슨 큰 병을 앓다가 살아났는지는 몰라도 몸이 불편했다. 자전거를 탈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누구보다 먼 길을 걸어 성당에 다녔다. 그는 성당에 다니는 신자 가운데 가장 가난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불구자였는데도 나의 대부였다. 나는 그게 부끄러웠다. 나는 어쩌면 그의 유일한 대자(代子)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게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자정 미사가 끝나면 풍성한 잔치가 벌어진다. 축복과 선물이 오가고 평소에는 구경하기도 힘든 맛있는 음식이 나오고 노래자랑대회가 열린다. 이윽고 잔치는 끝난다. 별이 성탄목의 꼬마전구처럼 반짝이는 하늘 아래를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잠에 빠져든다. 그러나 나는 잠들지 못한다. 

 

 

성탄 전야에 산타클로스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대부, 나자로다.

 나자로는 몸이 불편한 까닭에 다른 사람보다 걸음이 늦다. 그는 개가 컹컹 짖는 소리를 들으며 쭈뼛쭈뼛 대문을 들어서서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는 으례 오실 줄 알았다는 듯이 방문을 열고 그를 맞아들인다. 나는 자는 체하고 있다. 아버지가 나를 부른다. 대부님이 오셨으니 인사를 하라고.

 

 그러나 나는 곤히 잠들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체한다. 그러면 나의 대부는 떠듬떠듬 괜찮다, 깨울 것 없다고 아버지를 만류한다. 아버지는 더 큰 소리로 나를 깨운다. 나는 억지로 일어나 눈을 비비며 앉는다. 나자로는 말없이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손에 쥐고 온 선물을 내민다. 나는 건성으로 고맙습니다, 한 다음 포장을 뜯어보지도 않고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나는 이불 속에서 나자로가 언제 가나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나자로는 어머니가 내 온 차를 마시는 동안 한마디 말도 없다. 침묵 속에서 시간이 지나고 이윽고 나자로는 일어선다. 밤늦게 폐가 많았습니다. 아니오, 이렇게 우리 아이를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뿐이지요. 밤길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요. 늘 다니던 길인데요. 나는 밤이면 물귀신이 나온다는 저수지 옆을 비척비척 걸어갈 그를 상상하고는 좀 안됐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졸립다. 스르르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산타클로스가 주고 간 선물을 뜯어본다. 문둥이 연필이라고 부르는 질 나쁜 연필 한 통. 그 연필로는 글씨가 잘 써지지 않는다. 공책이 자꾸 찢어진다. 내가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 마을에서 산타클로스로부터 선물을 받은 유일한 아이지만 아무도 나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것도 화가 난다. 기왕 선물을 하

 

 

려거든 왕자 그림이 든 공책 열 권에 낙타가 그려진 고급 연필 스무 통을 하면 좋잖아. 나는 그 선물이 나의 산타클로스가 마련할 수 있는 최상의 선물임을, 아니 그 이상임을 그때에는 몰랐을까.

 나의 산타클로스, 나자로, 나의 대부는 내가 스무 살 무렵에 돌아가셨다. 어른이 되면 누구나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산타클로스가 진짜 있다고, 최소한 나의 산타클로스는 있었다고 말한다. 성탄이 다가오면 나는 이따금 그를 생각한다. 그럴 때면 어린 시절, 환한 전깃불이 들어 온 성탄목을 볼 때처럼 목이 메어오곤 한다. 그 목멤을 나는 그의 선물이라고 여긴다.  (P.15~18 )  / 성석제, [나의 산타클로스].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에서

 

 

 

 

 

 

 

 

      오래 전, 아끼던 사람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 나라를 떠나야 했던 그런 시간이 있었다.

      출국 전날, 청량리 성당 근처의 추어탕집에 들어가 몇몇이 저녁으로 추어탕과 구기자술을

      마시고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구기자술을 잘 마셨던 내게 그 사람이 건네준 남은 반 병의

      구기자술과 책 한 권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 오는 밤길, 아끼고 아끼던 사람에게 내가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사람임이 슬퍼서 내내 울고 그 길을 온 기억이 난다.

      다른 이들은 여비에 보태라고 달러가 든 봉투들을 쥐어 줬지만, 그 당시 하던 일이 부도가

      나고 집도 경매에 넘어갈 지경의 그 무렵에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던 선물은 두 개의 테잎으

      로 된 파블로 카잘스의 '무반주 첼로 조곡'과 한 통의 편지뿐이여서 그랬던 듯 하다.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의 첫 작품으로 나온 이 글을 읽으며 왜 그 생각이 났는지.

    

      어렸을 때 집안의 먼 친척뻘이 되는 가난한 아주머니가 계셨다. 딸아이를 혼자 참기름장수

      를 하며 키우며 어렵게 살아가던 분인데, 이 분이 일년에 한 두어 번쯤 우리집에 오시면

      엄마는 밥상을 정성을 들여 차려 드시게 하고 참기름도 여러 병 사주고 여비도 보태주곤

      했는데 이 분이 돌아 가실때마다, 내게 치마 안쪽에서 천 원인가를 꺼내 주시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펄쩍 뛰며 '뭐 애들한테 돈을 주냐, 그러지 마시라'고 만류를 했지만 아주머니는

      웃으며 기어이 내 손에 그 돈을 쥐어 주곤 가셨다. 아주머니가 가신 후 엄마는 '그분이 네게

      준 천 원은 다른 사람의 백만원이다'고 안타까워 하신 그 생각도 또 난다.

 

      어느덧, 성탄절이 다가오는 시간이다.

      문득 어릴때 불렀던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하는 그 노래가 들린다.

      나는 이제 누구의 산타클로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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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4 2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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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4 2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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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4 2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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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4 2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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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05 06:41   좋아요 0 | URL
서로 맞잡는 빈손에
아무것 들지 못해도
이 손에 담은 따순 기운이
찬찬히 이녁한테 이어지니,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사람도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없어요.

내가 나누어 주는 사랑한테는
돈도 물건도 어느 무엇도
댈 수 없으리라 생각해요.

아주 좋은 것 주셨겠지요.

appletreeje 2013-12-05 09:46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의 아름다운 말씀을 들으니
그랬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마음을 나누었던 시간이었으니까요~*^^*

2013-12-05 09: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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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1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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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14: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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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6 09: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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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12-05 21:36   좋아요 0 | URL
성석제의 저 글은 건성으로 읽고, 아래 트리제님의 글은 아주 꼼꼼하게 읽었습니다.ㅎㅎ

저도 어릴 때 비슷한 기억이 있네요. 먼 친척뻘 되는 아주머니에 대한 그런 기억..우리집이 가난하여 오실 때마다 저에게 돈을 주시던.. 아, 조금은 울컥, 반성하게 되는 시간을 주시네요.
모르긴 몰라도 알라딘에서 가장 산타에 가까운 분을 꼽으라면 단연 트리제님, 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appletreeje 2013-12-06 10:02   좋아요 0 | URL
저도 글 읽다가 옛날 생각이 났었어요. 뭔가 아련한....ㅎ
아니, 뭔 그런 말씀을 하십니껴, 코가 빨간 여자 루돌프라면
모를까....ㅋㅋㅋㅋ
컨디션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하늘바람 2013-12-05 21:47   좋아요 0 | URL
산타클로스 제 어릴적엔 없었어요 이제 두 아이에겐 있길 바라죠

appletreeje 2013-12-06 10:07   좋아요 0 | URL
생각해 보니 저도 어렸을 때 산타클로스가 없었던 것 같아요.^^
태은양과 동희군에게 올 성탄엔 꼭 산타가 오시겠죠~?^^
하늘바람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2013-12-06 15: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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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6 16: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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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7 0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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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7 1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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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7 2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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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8 22: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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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8 23: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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