섶섬이 보이는 방 
            ㅡ이중섭의 방에 와서


                                                 나희덕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구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질을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 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질에 세 든 소라게처럼

 

 

                                            -나희덕, <섶섬이 보이는 방 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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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3-04-17 09:34   좋아요 0 | URL
나희덕님의 시 , 정말 간만이군요 ^^
오늘도 나무늘보님 덕에 행복한 하루 ~ ^^
즐거운 수요일 ~되세요 ㅎ

appletreeje 2013-04-17 09:38   좋아요 0 | URL
앗, 드림님! 우리 실시간~^^
드림님 덕분에 저도 오늘 행복한 하루, 시작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수이 2013-04-17 09:56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화가 중에 이중섭이 제일 좋더라구요. 김창렬도 김환기도 좋지만 역시 이중섭!
나희덕 시인의 저 시는 처음인데도 마치 읽은 적이 있는 것만 같아요. ^^

appletreeje 2013-04-17 10:11   좋아요 0 | URL
저도요~^^
중학교때 돈을 열심히 모아 인사동 책방에서 처음으로 산 책이, 이중섭 화집이었어요. 노란 이중섭 화집.
그 다음으로 좋아한 화가는 박수근이었구요.^^ 물방울 화가 ,김창렬의 그림들도 많이 좋아 했지요.~ 오늘 아침에 이 시를 읽다가, 이중섭의 그림이 그리웠어요.
앤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2013-04-17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7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3-04-17 13:51   좋아요 0 | URL
올리시는 글들이 너무 좋습니다!^^
좋은 시들도 올려 주시고 좋은 책들도 올려 주시고...
덕분에 보고싶은 책들이 더 많아졌습니다.ㅎㅎㅎ

appletreeje 2013-04-18 09:14   좋아요 0 | URL
후애님께서 좋다하시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후애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숲노래 2013-04-17 13:56   좋아요 0 | URL
좋은 그림이 있어
좋은 시를 쓰고,
좋은 시가 있어
좋은 그림을 그려요.

appletreeje 2013-04-18 09:15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세요. ^^
좋은 것들이 서로 좋은 아름다움을 불러 일으키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