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한국말
캄보디아 씨엠립 바라이 호수
한국인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에워싸는 대여
섯 살 된 여자아이들
어디서 한국말 배웠을까
기특도 해라
"언니 예뻐
이쁜 오빠
하나도 못 팔았어요
정말 못 팔았어요"
조잡한 팔찌를 들고 계속 따라 오더니
차에 오르자
"좋은 일 있으세요
성공하세요"
마침내 감동한 아내가 1달러를 건네주자
팔찌를 다섯개나 준다
어디서 저리 고운 한국말을 배웠을까
기특도 해라 (P.43 )
속도
속도를 늦추었다
세상이 넓어졌다
속도를 더 늦추었다
세상이 더 넓어졌다
아예 서 버렸다
세상이 환해졌다 (P.79 )
-유자효 詩集, <심장과 뼈>-에서
아름다운 위반
기사 양반! 저짝으로 조깐 돌아서 갑시다
어칳게 그란다요 뻐스가 머 택신지 아요?
아따 늙은이가 물팍이 애링떼 그라제
쓰잘데기 읇는 소리 하지 마시오
저번챀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노인네가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저번챀에도
내가 모셔다 드렸는디 (P.85 )
아름다운 거짓말
느그 작은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빤듯한 사진 한나 없응
께 영판 옹삭시럽더라 할 일이라고는 아들놈 장가보낼 일
만 남았다는 회갑 넘은 숙모는 십만원 들여 영정사진 찍었
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와따 이쁘네 내 말에 볼 붉히는
숙모는 액자 속의 여자보다 훨씬 늙어 있었습니다 볼이 통
통한 얼굴을 보며 그린 거요?했더니 사진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습니다 컴퓨터로 편집했네 나는 서툰 알음
을 은근히 내비쳤습니다 노인네가 물정 모르고 바가지 썼
다는 말까지 할 참이었는데 나는 이내 입을 다물고 말았습
니다 틀 속의 여자는 한쪽 눈이 먼 숙모가 아니었습니다 (P.76 )
-이대흠 詩集, <귀가 서럽다>-에서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마에서 북천의 맑은 물이 출렁거린다
그 무엇도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에
당신은 사랑만 하고 아파하지 않는다
당신의 말은 향기로 시작되어
아주 작은 씨앗으로 사라진다
누군가 북천으로 가는 길을 물으면
당신은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거기 이미 출렁거리는 북천이 있다며
먼 하늘을 보듯이 당신은
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는 순간 그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 풍덩 빠진다
북천은 걸어서 가거나
헤엄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당신 눈동자를 거치면
바로 갈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걷거나 헤엄을 치다가
되돌아 나온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사랑을 할 줄만 알아서
무엇이나 다 주고
자신마저 남기지 않는다 (P.90 )
- 이대흠 詩集,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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