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들이 느긋하게 널부러져 자는 모습을 보면, 고양이의 평균 수면 시간이 하루 열여섯 시간이라는데 바깥 아이들은 한시인들 어디서 편히 잠을 잘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 애들이 신나게 장난치는 걸 보면, 다 큰 고양이도 얼마나 장난을 좋아하는데 바깥 아이들은 아기때부터 늘 긴장 속에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 애들을 행복하게 지내게 하고 싶으면서 그때마다 바깥 아이들의 불행이 떠올라 가슴을 찌른다.
동물은 원래 바깥에서 제 힘으로 사는 거라고, 그렇게 살다가 힘이 부치면 죽게 내버려두는 게 순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나도 생각했는데, <고양이 탐구생활>이란 책을 보고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현재의 개와 고양이는 인간이 제 필요에 의해 인간에 의탁해서나 생명을 유지하도록 개량했기 때문에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 인류는 길들였던 동물들에게 빚이 있다. 극소수 사람이 그 큰 빚을 갚자니 캣맘들이 거의 도산 지경일 밖에.
집 애들 사료는 꽤 비싼 걸 먹이면서 바깥 아이들에게는 아주 싼 걸 먹이고 있다. 두 가격을 합해서 머릿수 대로 나눠 맞춘 사료를 양쪽에 제공하는 게 공평하겠지만, 바깥 아이수가 너무 많으니 그 애들이 얻을 것은 아주 적고 집 애들이 잃을 것은 아주 많다는 계산으로 나를 변호한다. 바깥에 사는 애들은 추위 등 아주 열악한 환경에 있으니 더 잘 먹여야한다 생각하고 그를 실행하는 이들이 있는데 존경스럽다. 그들은 진짜 휴머니스트다. 자기 친자식들보다 원아들을 더 챙기는 고아원 원장 같은 분들이다.
바깥고양이들한테 싸구려 사료를 먹이는 고뇌를 토로하자 한 친구가 위로의 말을 했다.
"걔들은 그 대신 자유를 누리잖아."
"우리 애들은 (나랑) 평등을 누리고."
자유라....글쎄...그러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바깥도 바깥 나름이지. 고양이한테는 죽을 자유밖에 없는 대한민국!
밥과 잠자리와 화장실만 확보되면 고양이들은 더 원하는게 없다고 한다. 고양이들이 쏘다니는 건 그 세가지를 구하기 위해서지 자유를 구가하는 게 아니란다. 그러니까 좁은 원룸에서 키워지는 고양이를 가련해할 이유가 없다. 거기서도 고양이는 충분히 자유롭다.
오늘의 깨달음. 진정한 자유는 진정한 평등에서 온다. (P. 96~99 )
불출산
고양이친구들을 집에 초대했다. 저마다 자기 고양이 자랑에 정신이 없다. 평소 과묵한 번역가 권경희도 고양이얘기만 나오면 수다스러워진다. 그 집 고양이 네 마리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고양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고양이,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고양이, 세상에서 제일 착한 고양이가 된다. 뭐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고양이친구들이 남의 고양이 얘기를 경청하는 건 아픈 고양이 경우 뿐이다. 뭐 그때도 어느샌가 자기 고양이 아팠을 때 얘기로 빠지지만. 아픈 것도 자랑, 멍청한 것도 자랑. 자랑, 자랑, 자랑.
고양이 자랑을 우리끼리는 '불출산(어원은 팔불출)에 오른다'고 말한다. 저마다 불출산에 등장해 제 고양이 예쁘다고 야호! 소리를 지를 때, 아무 소리 않고 듣던 소설가 김숨이 특유의 나직하고 순정한 목소리로 짐짓 풀 죽은 척 한마디 했다.
"우리 '장자'만 인물이 빠지나 봐요."
킬킬 웃었지만 살짝 미안하고 새삼 김숨 부부에게 고맙다. 장자는 덩치 커다랗고, 내가 보기에도 얼굴이 좀 빠지는 검정 얼룩 젖소 고양이다. 한파 몰아칠 때 우리 동네에 나타난 애를 김숨네서 받아줬다. 김숨 부부로서는 생애 첫 고양이인데 예쁜 새끼고양이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어쨌든 다 장자의 복이다. 김숨네는 조막만한 요크셔테리아 한 쌍, '포그'와 '포아('포그의 아내'라는 뜻이란다)'가 있다. 포그와 포아가 장자를 무서워한다니 더 미안하다. 사람한테는 유순하기 짝이 없는 장자인데 자꾸 포그와 포아 따귀를 때린단다. 야, 인마, 굴러온 돌이 그러면 못쓰지! 그래도 고양이와 개가 함께 사는 집에서 고양이 기가 센 게 낫다. 아내가 남편보다 목소리 큰 집이 그 반대 경우보다 화평한 거와 같은 이치다. (P.184~185 )
-황인숙, <우다다, 삼냥이>-에서
그 참 견고한 외계
새끼 고양이가 움직이네
송사리처럼 매끄럽게
송사리처럼 소리없이
멈출 때도 송사리처럼 멈추네
접어서 벽에 기대 놓은 빨래건조대를
송사리처럼 오르내리네
노란 빨래집게를 재빨리
물었다 뱉었다 희롱하네
어디서 왔니, 새끼고양이?
새끼고양이, 아무 소리도 못 들은 듯
내가 흘깃도 보이지 않는 듯
그러나 손을 뻗자
송사리처럼 재빨리 달아나네
물 속의 송사리처럼 새끼 고양이
아무것과도 섞이지 않네 (P.19 )
-황인숙 詩集, <리스본行 야간열차>-에서
황인숙 작가의 새로운 고양이 산문집, <우다다, 삼냥이>를 읽었다.
어제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픈 일들이 많아서 침울했고, 저녁모임에서도 그 여파로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몸도 마음도 오늘까지 힘들었다. 그래서 좀 즐거운 책으로 회복을 하고자 펼쳐 읽은 책이다.
황인숙 작가는 신뢰하고 애정하는 작가이고 이번에 나온 신간, '우다다, 삼냥이'라는 제목만 보아도 우다다, 할 것 같아서.
2010년에 나온 산문집, <해방촌 고양이>. 그리고 2011년에 나온 장편소설 <도둑괭이 공주> 이후, 세 번째로 나온 고양이를 주제로 한 산문집이다.
그런데 이 책은 황인숙 작가의 밝고 쾌활한 고양이사랑의 비중만큼, 무겁기도 한 책이었다.
이 책에선 고양이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나라에서 고양이가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가감없이 따뜻하게도 아프게도 그려져 있다.
작가가 옥탑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는 란아, 보꼬, 명랑이라는 세 고양이와, 캣맘이 되어 사람들의 차가운 눈길을 피해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며 만나고 느낀 이야기다.
나도 아주 늙은 고양이 로미와 도도를 키우지만, 내 고양이말고도 길고양이들을 만나며 느끼는 안스럽고도 안타까운 이야기가 많아 즐거우면서도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결국은, 이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가 나 아닌 다르면서도 개별적인 삶을 사는 다른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함께 책임감을 갖고 공존해야 한다는 정직하고 따뜻한 시선의 책이다.
염성순님의 그림으로 더욱 글의 질감이 와 닿았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 더욱 신뢰와 기쁨을 만났던 그런 봄날의 어느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