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고촌 향산리, 그 집에는 누가 살까 1> 

watercolor on paper, 2013

 

화창한 주말이었다. 토요일에는 고촌 향신리에서 야외 스케치를 했다. 집 근처에 이런 풍경이 숨어 있었다니 새삼 신기하다. 매화꽃 가득한 들판과 노란 진달래, 한껏 물이 오른 나무들의 모습. 아, 정말 봄이다.

 

<장암동, 그 집에는 누가 살까 2>

watercolor on pap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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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덕포리, 과수원 길〉

Oil on canvas, 65 × 54 cm, 2013


과수원에는 크고 묵직한 쥐가 한 마리 살고 있다. 쥐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저 늙은 쥐일 뿐이다. 이제는 온종일 어두침침한 둥지만 맴도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지만, 그에게도 한때 젊은 시절의 찬란한 추억이 남아 있다. 쥐는 여전히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닭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닭은 도도하면서도 까칠한 성격이었다. 무슨 말을 하든 늘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천성적으로 기질과 취향이 맞지 않았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가 어두운 곳만 찾아다니는 것에 비해 닭은 항상 높고 환한 곳만 바라보았다. 그가 침묵과 사색을 즐기는 반면 닭은 늘 소란스럽게 푸드덕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저기 나뭇가지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어.”

어느 날 닭이 마당에 서 있는 키 큰 미루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위험해! 저렇게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릴 거야.”

쥐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하자 닭이 코웃음을 쳤다.

“날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이거 안 보여? 나한테는 날개가 있잖아. 설사 떨어진다 해도 가뿐하게 착지할 수 있다니까.”

쥐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착지라니? 무슨 소리야? 생전 처음 듣는 말이라서…”

“어휴, 답답해! 착지도 몰라? 너랑은 정말 대화가 안 돼. 우리는 추구하는 세계가 달라. 달라도 너무 달라. 넌 나를 이해하지 못해. 아니, 이해하고픈 마음조차 없는 거야. 그러니 저쪽으로 가버려. 꼴도 보기 싫어.”

닭이 그렇게까지 화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쥐는 바늘방석에 앉은 듯 마음이 초조했다. 아무리 짚어봐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마음 넓은 자신이 먼저 다가가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다고 무조건 사과할 참이었다.

안채에서 주인집 아들이 나온 것은 그때였다. 그는 “위이, 위이” 하며 마당에 곡식 가루를 뿌렸다. 툇마루 옆 짚단 위에 올라가 뾰로통한 얼굴로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닭이 그것을 보고 쪼르르 달려 내려와 모이를 쪼아 먹기 시작했다.

주인집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 닭의 모가지와 양쪽 날개를 낚아챘다. 뜻밖의 사태에 닭은 발버둥쳤다. 먹고 있던 모이를 뱉어내며

“꾸웨익! 꾸웨익!”

목이 터져라 울어댔다. 소용이 없었다. 어떤 반항도, 저항 어린 몸짓도 먹혀들지 않았다.

주인집 아들은 트럭 짐칸에 있는 나무 궤짝에 닭을 싣고 손을 탁탁 털었다.

“고놈, 제법 팔딱거리는 걸! 이제 슬슬 떠나볼까.”

주인집 아들은 트럭을 몰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닭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이별이었다.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더 이상 삶에 아무런 의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닭을 생각하면 그저 가슴이 미어질 뿐이었다.

닭이 끌려가며 토해내던 절규가 아직도 귓전에 맴돌았다. 주인집 아들의 손아귀에 잡혀 궤짝에 넣어지기 직전, 닭은 두려움에 떨리는 눈빛을 던져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왔어야 했는데. 차라리 온몸을 던져 함께 트럭 짐칸에 몸을 실었어야 했는데. 그러나 자신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무능력하고 냉철하지 못한, 정말 멍청하기 그지 없는... 아니, 저 깊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두려움, 나 혼자만이라도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비겁하고 치졸한 생각이 그의 손발을 꽁꽁 묶어버렸던 것이다.

쥐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 순간의 자신이 끔찍하도록 싫었다. 이토록 멀쩡한 정신으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있단 말인가.

 

그림 〈덕포리, 고추밭에서>

Oil on canvas, 2013


한동안 시름에 잠겨 있던 쥐는 마당가 미루나무 아래로 거처를 옮겼다. 태어날 때부터 지내왔던 다락방의 안락한 온기 대신 나무뿌리들 사이의 축축한 암흑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나 불확실한 믿음 하나만 붙잡고 살아가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길고 버거웠다.

흐르는 세월은 모든 것을 희석시켜버렸다. 그의 수염은 차츰 희뿌연 빛깔로 변했고, 옛 추억의 그림자 또한 흐릿한 안개 속에 잠겨버렸다. 거기 어딘가에 그녀가 있지만 손을 뻗을수록 그녀는 멀어져만 갔다.

시간은 흐르고 또 흘렀다. 어둠을 향해 뻗어가는 미루나무 뿌리들을 바라보는 동안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의식도 점차 희미해졌다.

외로움은 친구처럼 늘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그녀를 떠나보낸 것이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돌이켜보면 그녀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생의 울타리 없는 감옥을 서성이는 동안 가슴에 새겨진 애틋한 추억 한 자락도 없이 무슨 낙으로 긴 세월을 버텨낼 수 있었겠는가.

“나한테는 날개가 있잖아. 설사 떨어진다 해도 가뿐하게 착지할 수 있다니까.”

요즘 들어 웬일인지 닭의 모습이 종종 꿈에 나타났다. 팔닥거리다 푸드득 날아오르는 모습이 예전 그대로였다. 새침한 표정으로 한마디쯤 해줄 법도 한데 그녀는 끝내 침묵했다.

꿈에서 깨어난 새벽이면 밤새 어두운 숲을 헤매다 돌아온 듯 온몸이 무겁고 축축했다. 여전히 ‘착지’라는 단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세상 어디에서 무엇을 먹으며 살고 있든 닭에게는 날개가 있으니 그나마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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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동막골, 그 집 앞> watercolor on paper, 2012 여름

*지난 4월 그림을 찾을 수 없어 대신 여름 그림을 올림.

 

지난 토요일에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야외 스케치를 다녀왔다. 모처럼 화구를 챙겨 들고 나선 바깥나들이라 마음이 잔뜩 설렜다. 그러나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불던지 사방에서 이젤들이 퍽퍽 나자빠졌다. 다행히 나는 전선주를 감는 커다란 둥근 바퀴 같은 것을 찾아 테이블로 사용했기 때문에 별 탈은 없었다. 겨울 산행 복장으로 단단히 무장했는데도 바지단 아래로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 때문에 결국 화구 가방에 있던 비상용 보자기를 꺼내 다리와 발목 주변에 친친 감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4월은 바람난 여편네의 치맛바람처럼 변덕스럽다. 그래도 대지 가득 내려앉은 촉촉한 봄기운 덕분에 겨우내 삭막했던 풍경들이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성동리 동막골은 아직도 예스러운 풍취가 남아 있는 조용한 농촌 마을이다. 초가지붕을 얹은 고택들과 버섯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농토와 밭이랑들. 고향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마을에서의 하루가 몹시 즐거웠다.


일요일에는 볼일이 있어 잠시 전주에 다녀왔다. 지나는 길목마다 매화나무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어 운전하는 내내 마음껏 호사를 누렸다. 전주비빔밥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상춘객들로 붐비는 가게 안에서 의미 있는 한 줄 명구를 발견했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젖으면 신화가 된다.”


생전에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 남긴 말이라고 한다. 한 개인의 역사와 신화 또한 빛바랜 사진처럼 가슴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 간다. 계절은 소리 없이 자꾸만 흘러간다. 햇살에 바랜 봄꽃이든 월광에 물든 봄꽃이든 한아름 가슴에 안고 지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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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샤갈작품 모사화, 나무와 추락하는 천사가 등장하는 부분>Oil on canvas, 2001 

 

70년대만 해도 민둥산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오죽했으면 식목일을 국가 기념일로 정해 나무 심기를 권장했겠는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 것이다. 우리 담임선생은 멋쟁이 총각 선생님이었는데(아침 조회 시간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었는데, 그 이야기들 대부분이 톨스토이 단편소설집에 실린 내용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그날은 거두절미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나라의 산과 나무 이야기를 꺼냈다.


대머리처럼 헐벗은 산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단다. 가까운 나라 일본만 해도 산에 나무가 얼마나 빽빽한지 집 뒤에 있는 동산조차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란다. 그런데 우리나라 산들은 죄다 벌거숭이잖아. 그런데도 아직 산에 가서 나무를 꺾어 오는 사람들이 있으니 창피할 노릇이지. 너희들은 나무를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함부로 베거나 꺾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거야. 알았지?”


일본 이야기만 나오면 괜히 기가 죽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은 한동안 일본 숲의 우거진 모습이며 그것을 보살피는 시민 정신, 일본 민가에 출몰하는 야생동물과 뱀 이야기까지 해주더니 지난 주말 식목일에 나무를 심은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우리는 멀뚱한 눈으로 교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손을 드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없어? 단 한 명도? 어허, 이거 참. 그럼 화단에 꽃씨라도 뿌린 사람 있으면 어디 손 좀 들어 보거라.”


이번에도 아이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서로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식목일에 나무 심은 사람 있으면 교장 선생님이 표창장을 준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다가 결국 반장을 불렀다.


너 지금 교무주임 선생님께 가서 우리 반에는 나무를 심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말씀드려라.”

선생님의 명을 받은 반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무실로 달려 나갔다. 그해 식목일에 어느 반의 누가 표창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방과 후 학급 대표들을 모아 학교 안에서 나무 심기 행사를 했던 일만큼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후로 40년쯤 시간이 흘렀다. 오늘날에는 다행히도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울창한 숲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이 그동안 많이 개발되고 발전했지만, 그런 자연 경관이야말로 우리 앞에 펼쳐진 가장 큰 긍정적 변화가 아닐까 싶다.

  

그림<샤갈을 추억하며. 모사화> Oil on canvas, 91.0×72.7cm, 1998-2013


지난 식목일에는 라디오에서 나무 심기에 관한 사연이 연이어 소개되었다. 지금도 초등학교에서 나무 심기 행사를 계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무 사랑에 대한 열의만큼은 여전히 줄지 않은 모양이다.


나도 그날 식목일을 맞아 모처럼 화분 몇 개를 분갈이했다. 내 집에는 화분이 꽤 많은 편이다. 어린 묘목을 사다가 공들여 키운 것도 있고, 직접 뿌리를 내려 화분에 심은 것도 있으며, 어느 정도 자란 것을 사다가 물만 주며 키운 것도 있다.


젊었을 때는 화분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다. 키우는 화분마다 말라 죽기 일쑤였다. 어느 영화에서 이런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 결혼을 하고 싶다면 먼저 애완견을 키워보고, 애완견을 키우고 싶다면 우선 화초부터 키워보라고. 그런데 나는 그 첫 번째 관문조차 통과하지 못한 셈이었다.


화분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인생의 각박함이라니.


근처에 화분을 잘 키우는 지인이 있어 더욱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상황이 달라졌다. 식물들이 나를 잘 봐주기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내 몸에서 흐르는 기의 흐름이 좋아진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들 관계가 우호적으로 바뀌었다키우는 족족 내 손끝에서 죽어버리던 식물의 암흑기가 흘러가고 이제는 녹색의 풍요로운 성수기, 평화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내 손만 닿아도 무럭무럭 커버리는 화초들, 그 무성한 우거짐.


내 마음이 편해졌다거나 집안의 채광 환경이 좋아졌다거나, 그런 일반적인 설명만 가지고는 결코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내 손만 닿아도 무럭무럭 커버리는 화초들. 그 무성한 우거짐.

아마도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사랑을 먹고 자란다. 사람도 강아지도 야생의 풀도 모두 마찬가지다.


사랑이 지나치면 집착이 된다. 화분 중독에는 약도 없다. 일단 화분에 빠지면 어딜 가나 화초들만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하나둘 늘어난 화분들로 어느새 집안이 가득해졌다새로 이사를 하던 날 부동산 아저씨가 집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웬 집에 화분이 그렇게 많아요? 온실 차려도 되겠네.”


괜히 내 얼굴이 벌게졌다. 뭐든 적당한 것이 좋은데 수위 조절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애써 키운 화분들을 포기할 수도 없다. 실내 공기 정화에도 좋잖아, 하며 그냥저냥 함께 지내는 중이다.


초록빛 자연은 사람 마음을 순하고 맑고 곧게 만든다. 영혼의 청정 효과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자연을 경외하고 화분 이파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언젠가 할리우드 여배우가 텔레비전 토크쇼에 나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집 안에서 화분을 키우지 않아요. 절대로. 작은 꽃 화분조차도 싫어요. 그게 얼마나 더러운데요. 이상한 벌레들도 살고으으윽.”


과장된 제스처로 온몸을 떠는 그녀. 식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미생물에 대한 알레르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도 화분에 물을 주다 보면 문득 그 여배우의 말이 떠오른다.


얼마나 더러운데이상한 벌레도 살고


살아 있는 생명체는 어떤 방식으로든 고난의 역사를 지니게 마련이다. 내가 10년 넘게 키우고 있는 벤자민 화분도 몇 년 전 진드기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그 후로 약을 꾸준히 쳐주었는데도 여전히 끈끈한 기운이 남아 속을 썩인다게다가 이제는 화초 단계를 넘어 거의 나무가 되었다. 이삼 년에 한 번씩 대대적인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겨우 모양새를 유지할 수 있다.


그 벤자민은 아마도 남성일 것 같다.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 때문인지 모르겠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거꾸로 사는 벤자민 버튼도 있지 않은가. 물론 브래드 피트까지 바라지는 않지만그런데 장갑을 끼고 전지가위로 가지를 잘라낼 때의 느낌이란 참 묘하다.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마치 내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거친 가위질에 잘려나간 나뭇가지에서는 연녹색의 투명한 진액이 흐른다. 집 안에 갇혀 살아온 식물 특유의 슬픈 초록빛 눈물처럼. 약간 비릿하면서도 눅진한 비극의 체취 같은 것.


그래서 벤자민 화분에 물을 줄 때마다 늘 당부하게 된다.


제발 살살 좀 커다오.

천장까지 닿지만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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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몽마르트르 언덕의 추억3> Mixed media on canvas, 53 × 45.5 cm, 2013

 

먼 훗날 우연히 만난 그대가

반갑다 웃으며 악수하리라.

하늘은 높아가고

푸르고 푸른 허공에

성당의 종소리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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