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동막골, 그 집 앞> watercolor on paper, 2012 여름
*지난 4월 그림을 찾을 수 없어 대신 여름 그림을 올림.
지난 토요일에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야외 스케치를 다녀왔다. 모처럼 화구를 챙겨 들고 나선 바깥나들이라 마음이 잔뜩 설렜다. 그러나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불던지 사방에서 이젤들이 퍽퍽 나자빠졌다. 다행히 나는 전선주를 감는 커다란 둥근 바퀴 같은 것을 찾아 테이블로 사용했기 때문에 별 탈은 없었다. 겨울 산행 복장으로 단단히 무장했는데도 바지단 아래로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 때문에 결국 화구 가방에 있던 비상용 보자기를 꺼내 다리와 발목 주변에 친친 감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4월은 바람난 여편네의 치맛바람처럼 변덕스럽다. 그래도 대지 가득 내려앉은 촉촉한 봄기운 덕분에 겨우내 삭막했던 풍경들이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성동리 동막골은 아직도 예스러운 풍취가 남아 있는 조용한 농촌 마을이다. 초가지붕을 얹은 고택들과 버섯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농토와 밭이랑들. 고향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마을에서의 하루가 몹시 즐거웠다.
일요일에는 볼일이 있어 잠시 전주에 다녀왔다. 지나는 길목마다 매화나무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어 운전하는 내내 마음껏 호사를 누렸다. 전주비빔밥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상춘객들로 붐비는 가게 안에서 의미 있는 한 줄 명구를 발견했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젖으면 신화가 된다.”
생전에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 남긴 말이라고 한다. 한 개인의 역사와 신화 또한 빛바랜 사진처럼 가슴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 간다. 계절은 소리 없이 자꾸만 흘러간다. 햇살에 바랜 봄꽃이든 월광에 물든 봄꽃이든 한아름 가슴에 안고 지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