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김미진

 

저 높은 수직의 공간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갈망. 히말라야, 고도의 한계 끝자락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자연의 법칙과 운명을 초월하는 고독한 투쟁이 필요하다. 어딘가로 오르는 길이 허락되었다면, 다시 내려가는 길 또한 존재할 것이다.


두 남자의 하산길은 오름의 여정보다는 덜 힘들었지만, 험난한 구간을 피해 훨씬 먼 길을 우회해야 했다. 얼음빛 혹한의 바람을 맞으며, 그들은 하늘 가까운 빙벽을 마주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쉬지 않고 이어진 가파른 하강 속에서, 어디까지 내려온 걸까. 길이 조금씩 수월해지자 등반의 긴장감은 풀리고, 몸속 깊이 스며든 피로가 젖은 눈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날씨는 다행히 맑고 하늘도 푸르렀지만, 매섭게 휘몰아치는 냉기 속에서 두 사람의 몸은 점점 굳어갔다.


우태길은 오른손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얼어붙은 손가락은 신경을 찌르는 고통을 안겼다. 산소통의 무게를 잊으려 그는 이를 악물고 온몸을 밀어붙였다. 이성호는 선배의 상태를 살피며 천천히 뒤를 따랐다. 심장은 터질 듯 두근거렸고, 불안은 끝없이 밀려왔다. 베이스캠프까지 이어진 길은 심신을 소진시키는 마지막 시련이자, 생과 사의 경계에서 한 치의 여유도 없이 계속되는 자신과의 처절한 사투였다.


다음날 새벽, 그들은 캠프2를 거쳐 아이스폴을 통과했다. 해발 7,200미터. 오후가 되어서야 간신히 이 지점까지 내려왔지만, 두 사람의 다리는 점차 힘을 잃어갔다. 체력 고갈과 산소 부족은 하산길의 눈밭을 더욱 미끄럽고 위태롭게 만들었다.


우태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소통 밸브를 돌려 공급량을 높였다.


-조금만 더 견디자. 조금만.


그의 숨결은 거칠게 이어졌다. 손가락은 이미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다. 이성호의 발걸음도 점점 느려졌고, 자신도 모르게 몸이 기울어지면서 서너 번 휘청거렸다. 그래도 젊은 혈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내려가 존경하는 선배를 돕고자 한 걸음씩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겨우 움직였다.


7,000미터 고지를 지날 때, 그들은 또 한 차례 지옥 같은 구간에 접어들었다. 하산의 피로가 묵직한 돌덩이처럼 온몸을 짓눌렀다. 하체의 힘이 거의 빠져나간 상태에서 눈 덮인 바위와 미끄러운 경사면을 넘는 매 순간이 공포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성호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발을 디딜 때마다 균형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에 몸을 더욱 낮췄다. 그의 눈에는 생존에 대한 간절한 의지와 삶에 대한 뜨거운 애착이 서렸고, 자신보다 더 힘들어하는 우태길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왔다.


이틀 후, 우태길은 탈수와 동상으로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한 손으로 자일을 붙잡은 채 무릎을 꿇고 기어가다 끝내 주저앉았다. 이성호는 허겁지겁 달려가 그의 어깨를 힘껏 부축했다. 바로 그때, 아래쪽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베이스캠프의 깃발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왔다.


-선배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더 버텨요.

-그래. 그렇구나.


두 사람의 눈빛에는 마침내 끝이 보인다는 안도감이 번져갔다. 그들은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쥐어짜며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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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미진


2000517일 오후 2시경한국 원정대원 이성호는 그토록 멀고 고된 길을 걸어, 하늘과 맞닿은 수직의 극점, 로체봉 정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숨소리는 거칠었고, 몸은 쓰러질 듯 휘청거렸으나 그는 얼어붙은 눈과 빙하 위를 지나 묵직한 걸음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정점에 아이스 피켈을 깊숙이 박고, 태극기를 펼쳤다. 바람결에 펄럭이는 깃발 하나. 그는 가슴이 타는 듯한 환희에 몸을 맡겼다. 차갑고 날카로운 공기 속, 온몸이 떨리던 전율의 순간이었다.


-올라왔어. 드디어.


그의 얼굴에는 오랜 여정의 피로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고글 너머로 붉게 부푼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혔고, 입술에는 따개비처럼 굳은 물집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방한모의 족제비 털은 얼어 터진 뺨을 거칠게 스쳤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닿을 수 없을 것 같던 천계, 까마득히 높아만 보이던 로체봉 정상에 지금 그는 두 발로 서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조차 실감은 희미했다. 여기는 인간의 욕망과 의지를 넘어선 또 다른 변방 지대. 숨이 막히도록 희박한 공기 속, 신들의 자치 구역이었다.


천천히 몸을 돌리자 끝없는 지평선이 완벽한 원형을 그리며 눈앞에 펼쳐졌다. 이성호는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두 눈을 끔뻑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른발 아래, 층층이 쌓인 설빙 절벽이 아득히 뻗어 있었고, 그 너머로 날카롭게 치솟은 눕체의 첨봉이 손에 닿을 듯 다가왔다. 에베레스트는 희뿌연 설연을 휘날리며 하늘 끝을 향해 솟구치고, 남쪽 어둠 너머에는 암벽에 가려진 마칼루가 희미한 윤곽을 드러냈다. 발밑 깊고 깊은 낭떠러지에서는 구름이 고요히 흐르고, 돌풍에 휘말린 눈발은 황량하면서도 처연한 아름다움을 빚어냈다. 해발 8,511미터. 로체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아득한 비현실의 경지, 무한한 꿈의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듯했다.


-결국 우리가 해냈어!


조금 늦게 정상에 오른 등반대장 우태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가왔다.


-로체야! 우리가 왔다! 드디어 올라왔다!


두 사람은 어깨를 힘껏 끌어안고, 철부지 아이들처럼 야호, 야호를 외치며 환호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정상의 설원 위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지독한 사투로 점철된 지난 7일간의 여정은 이 순간, 아득한 꿈처럼 가볍고 현실감이 없었다. 무슨 말로 이 감각의 온도를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기쁨과 숭고함을 초월한 순백의 감정, 인간의 언어로는 결코 온전히 담을 수 없는 초현실적 떨림이었다.


이곳, 산소마저 극도로 척박한 고지에서는 인간의 감정 또한 무중력 속을 부유하며 그 경계조차 아스라이 흩어져갔다. 이 지구상에 생명이 자라지 못하는 고도가 존재하듯, 죽음의 계곡을 넘어 도달한 히말라야의 정상에서 인간의 감정은 점차 실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이 순간을 억지로 붙들려 하지 않고, 온몸으로, 온 감각으로, 정상에 선 감동을 고요히 흡수하는 것뿐이었다.


-베이스캠프에 무전을 쳐야겠군.


우태길이 무전기를 추켜들고 발신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이성호는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세계의 지붕이 첩첩이 뻗어나간 장엄한 풍경을 응시했다. 눈앞을 가득 채운 설산들은 묵묵히 침묵한 채, 인간 존재를 미세한 점처럼 삼켜버릴 듯 압도적이었다. 그는 북쪽에 우뚝 솟은 에베레스트를 배경 삼아, 웅장하게 솟은 설산의 봉우리들을 한 컷에 담았다. 이어 동쪽과 남쪽으로 천천히 몸을 돌리며 셔터를 눌렀다. 서쪽을 향해 마지막 인증 샷을 찍으려는데 아이젠 끝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걸리며 몸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상체가 앞으로 기우뚱한 순간, 눈 속을 가르며 은빛으로 빛나는 가느다란 줄 한 가닥이 튀어나왔다.


-태길이 형! 여기 뭔가 있어요. 목걸이 같은데... 줄이 끊어졌어요.

-주위를 잘 살펴봐. 뭐가 더 있을지 모르니까.


무전기에서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릴 듯 말 듯 이어졌다. 배터리는 충분했지만, 우태길은 정체 모를 불안에 사로잡혔다.


-베이스캠프와 교신이 끊긴 것 같아.

-큰일이군요. 날씨가 변하기 전에 서둘러 내려가야 하는데...

-목걸이는 찾았어?

-잠시만요.


이성호는 장갑 낀 손으로 눈을 헤집었다. 차가운 알갱이 사이로 스치는 감촉이 문득 낯설고 날카롭게 다가왔다. 손끝에 닿은 건 작고 단단한 무언가였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지름 1센티미터, 길이 3센티미터 남짓한 은색 목걸이 통이었다.


-? 이건... 서바이벌 키트네요?


초강력 알루미늄 소재의 서바이벌 키트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신원 확인 및 생존 정보를 담기 위해 제작된, 방수 캡슐 형태의 물건이다. 고산 등반자같이 위험을 무릅쓰는 이들이 목에 걸고 다니는, 일종의 블랙박스였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인간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마련한 가장 원초적인 수단인 셈이다.


해발 8천 미터, 그 정상의 끝자락에서 발견된 이 조그마한 증언의 실체는 누군가의 마지막 침묵의 언어일 수도 있었다. 히말라야 고봉의 무심한 눈 속에서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표면에 붙은 얼음을 조심스럽게 걷어내고는 그 메시지를 확인했다. ‘DJ’라는 이니셜, 파란색 테이프, 그리고 로체봉 정상에 남겨졌다는 사실. 모든 퍼즐이 수수께끼처럼 떠올랐다가, 한꺼번에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이건... 도준, 그 자식 거야.


우태길이 눈가를 떨며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뭐라고요? 준이 형이요?


이성호가 놀라 되묻자, 우태길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파란색 테이프, 뚜껑에 새긴 'DJ'... 이게 확실한 증거야. 그 녀석은 모든 장비에 파란색 테이프를 감아두곤 했지. 자일에도 말이야. 이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어.

-그렇다면, 도준 형이... 정말 2년 전에 단독 등정에 성공했다는 건가요?

-알파인 스타일로, 오로지 혼자서.

-그게... 정말 가능했다고요?

-그럼. 도준이니까. 허허.


우태길은 한숨처럼 짧게 웃었다.


오늘 두 사람이 오른 길은 노멀 루트였다. 에베레스트 쪽 베이스캠프에서 이어지는, 비교적 잘 알려진 코스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년 전 도준이 향했던 곳은 전혀 달랐다. 로체 남벽. 세계 최강의 등반가들조차 번번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아직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벽이었다.


-도준 형의 실종을 두고 말들이 많았잖아요. 로체 정상에 올랐을 거다, 아니다...

-그 지옥 같은 로체 남벽을 혼자 해치운 거지.

-완벽하게 초등 업적을 이루려면, 정상까지 갔다가 무사히 내려와야 하는 거잖아요.

-로체 남벽을 끝까지 올라온 자는 아직 아무도 없었어. 도준이 내려오지는 못했을지라도, 올라온 건 확실하잖아. 이 서바이벌 키트가 증명하는 거지. 무산소 최초 단독 등정이야. 결국, 도준이 혼자 해낸 거야.


그는 알루미늄 통을 손에 꼭 움켜쥔 채, 끝없이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설산들의 침묵과 그 차가운 광활함 속에서, 도준에 대한 기억과 그의 실종 이후 견뎌야 했던 참담한 시간들이 아른거렸다. 공기 속의 희박함마저 감정을 천천히 갉아먹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남은 것은 단 하나, 서늘하게 맑은 진실의 감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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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두 사람」·그림 김미진


안녕하세요.

2011년 알라딘 서재에 장편소설 랭보의 바람구두를 신다를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이곳에서 새로운 장편소설 달의 몰락을 연재하려 합니다.

달의 몰락은 결혼을 앞둔 여자와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히말라야 로체 남벽 등정을 준비하는 남자의 재회를 그린 장편소설입니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남자와 현실의 삶을 선택한 여자는 다시 만나면서 오래 묻어두었던 감정과 욕망, 상처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사랑의 완성이나 구원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본의 중력과 죽음의 충동, 삶의 의무와 자유를 향한 갈망이 충돌하는 순간, 인간이 감행하는 단 한 번의 흔들림과 그 의미를 탐색합니다.

다음 회부터 본격적인 연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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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미진

1995세계문학에 장편소설 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 그 여름 정거장, 자전거를 타는 여자, 우리는 호텔 캘리포니아로 간다, 랭보의 바람구두를 신다, 소설집 그녀는 안개와 함께 왔다를 출간했다.

여행 에세이 로마에서 길을 잃다, 히말라야, 눈부신 자유가 있는 곳, 사적인, 너무나 사적인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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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랜만에 맞는 봄바람이었다.
아파트 정원에 핀 벚꽃에 불현듯 눈앞이 환해졌다.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여의도 벚꽃길에는
온통 첫사랑 같은 하얀 꽃잎들이 날리고 있었다.



우연히 찍은 영상들을 용기 내어 유튜브 쇼츠에 올렸다.

다음 날은 남산공원으로 발걸음이 이어졌다.

오늘은 강남에 일이 있어 나왔다가
석촌호수에 잠시 들렀다.


햇빛은 맑았고,
호수 둘레는 벚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번 봄은 내 생에서 맞은 유일한 봄날이고,
나도 이 봄의 유일한 청춘이었네.


오늘 밤 비가 내리면,
그 빛도 가뭇없이 흩어지겠지.



(null)

나는 그 봄 한가운데,

잠시 멈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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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국 장가계의 천문동, ‘여백’〉 © 김미진, 2026


하늘로 열려 있는 빈 자리.

산 한가운데가 비어, 그 안으로 하늘이 드러난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기가 흐르고,
그 고요는 어떤 움직임을 기다리는 듯하다.


그 사이를 아바타의 존재들이 날아다닌다.

몸을 맡기듯, 저항 없이, 그 거대한 공백을 가르며.


사진 중국 장가계, '시간 여행자들'© 김미진, 2026


그 장면 안에 문득 다른 이미지가 겹쳐진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역시, 어딘가 비어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균열과 긴장으로 가득한 시대,
무언가는 멈춰 있고, 무언가는 방향을 잃은 채 떠 있다.


그런 공간 속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것,
가볍게, 그러나 또렷하게 자신의 궤적을 남기며 지나가는 존재.


사진 중국 장가계, '회상'© 김미진, 2026


BTS를 떠올린다.

그들의 특별함이,
지금 이 시대의 공기를 가장 민감하게 통과하고 있는 존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은 때로 공허가 아니라
새로운 움직임을 위한 여백이 된다.

아티스트란, 어쩌면
그 여백을 두려워하지 않고 건너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진 중국 장가계, '빔'© 김미진, 2026


 🎨 Writing & Painting | Mijin Kim

글과 그림이 있는 | 김미진의 오후 3👉 [Read More]
https://blog.aladin.co.kr/731589167

#MijinKim #그림에세이 #회화작업 #장가계 #아티스트의시선 #시간과공간 #Visual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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