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간 자리>Watercolor on paper 49.7X 35.7cm 2012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뭐가 남을까. 이렇게 매일 그림에만 매달려 있다 보면 내가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만다. 간혹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도 읽어보려고 책을 꺼내들지만(소설 세계와 가까워지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이내 집중력 상실에 흥미 부족으로 책장을 덮게 되니 정말 한심할 지경이다. 반대로 소설 작업을 할 때는 내 그림 도구들이며 그림에 관계된 기타의 것들이 찬밥 신세를 당한다. 미안한 마음 때문이라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냉정하게 외면하는 것이다. 마치 두 개의 세계가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애초에 ‘인터넷 가상 갤러리’를 개설한 것은 나에게 채찍질을 가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하나씩 작품을 올리다 보면 신이 나서라도 더욱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겠지 싶었다. '랭보...'를 쓸 때의 그 치열했던 책임감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번에는 내가 고객이 되어 나 스스로에게 숙제를 준 것이다. 그러니 이 사이트의 가장 중요한 방문객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 할 만하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 그게 이 사이트의 가장 큰 핵심이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림만 그리는 것이 소설한테 미안해서 이 사이트를 개설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그림에만 관심 쏟지 말고 가끔씩 컴퓨터 자판이라도 두들겨 보는 건 어때? 그러다보면 문장과 스토리에 대한 애정이 다시 솟아날지도 모르잖아!... 소설과 그림 사이에 아주 미세한 구멍이라도 뚫어 놓으라는 의미 같은데, 이런 이런! 내가 무슨 수로 보이지도 않는 허공에 구멍을 뚫는단 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