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영혼의 길을 모순에게 묻다
이병창 지음 / 먼빛으로 / 2010년 6월
평점 :


글쓴이가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정리하여 쓴 글이다. 구어적인 표현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어렵지 않다는 느낌을 주지만 그만큼 산만한 느낌도 준다.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라 중언부언하는 경우도 있고, 편집이 덜 된 것처럼 오타도 많다. 그러나 헤겔의 사상이 갖는 특징을 매우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오타가 이렇게 많지 않았다면 5점을 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내용 요약>

 

이병창의 영혼의 길을 모순에게 묻다는 헤겔의 철학을 소개하는 글이다. 그러나 헤겔의 철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기보다는 헤겔의 주저인 정신현상학의 서문과 서론에 대한 강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헤겔의 철학을 개관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해설의 순서는 철저히 정신현상학의 글이 지닌 내적인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 글은 두 가지 한계를 가지게 된다. 서문과 서론의 글을 해설하기 위해 헤겔의 개념을 설명하고 그 개념에 따라 글을 읽어 나가다 보니 앞에서 설명한 개념이 뒤에 다시 제시되거나 앞에서 설명하지 않은 개념이 앞에서 설명한 개념과 뒤섞여 나타날 때엔 어쩔 수 없이 중언부언 설명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독자는 같은 개념 설명을 여러 번 읽어야 하며 같은 개념의 용어가 바뀌어 제시될 때에도 그것을 짐짓 알아서 이해해야만 하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책을 다 읽고 나도 정신현상학의 본문은 한 줄도 접해보지 못하기 때문에, 헤겔에 대해 무얼 알게 된 것인지를 궁금해 하게 된다. 전체적인 헤겔 철학의 면모를 다 알지 못한 채 부분만 알고 있다는 자괴감이 드는 일이다. 내 생각엔 헤겔 철학의 진면목을 거의 모든 면에서 설명하고 있긴 한데, 독자는 그런 확신을 갖지 못할 듯하다.

이 글에 나타나는 다른 특징 하나는 인터넷 게시판에 순서대로 하나씩 올린 것을 짜깁기한 형태라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전체적인 내용 전개와 관계가 없는 일상의 잡담이 끼어들고 있다. 물론 그것은 본문과 최대한 관련지어 놓았고, 그것에 의해 본문의 내용을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연결고리로 만들고 있긴 하지만, 완벽하게 모든 여담이 헤겔 철학의 진수와 관련되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오타가 많이 나오고 있다. 국어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나 띄어쓰기도 등장하고 있어서, 교정을 하고 싶게 만드는 흠결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족한 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은, 학자적인 고집과 나름대로의 견해를 바탕으로 촘촘하게 쌓아 올려서 헤겔 철학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려고 하는 학자적 자존감이다. 독일 유학파가 아닌 독일 철학 교수가 느끼는 자괴감이 무엇인지를 설파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객관적으로 헤겔의 철학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몇 권의 판본을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글쓴이는 두 권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녹색 표지의 펠릭스 마이너(Felix Meiner) 판인데, 이 책은 1937년 호프마이스터가 편찬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호프마이스터 판이라고 불리운다. 다른 하나는 빨간 표지의 펠릭스 마이너 판이다. 본스피엔 교수가 편찬해서 1980년에 발간한 책이다.

첫 번째 판본인 호프마이스터 판은 딜타이에 의해 촉발된 헤겔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역사철학 강의’, ‘미학 강의등의 강의록이나 저서 초안들이 출간되면서 그에 발맞추어 1937년 호프마이스터가 정신현상학을 다시 편찬한 것이다. 1807년에 출판된 헤겔의 초간본, 1907정신현상학 출간 100년제기념으로 다시 출간된 라슨 판본의 두 책을 비교하여 1937년 호프마이스터가 라슨 판본의 4판 형식으로 호프마이스터 판본이 출간 되었다. 여기에 호프마이스터가 편찬자 서문을 붙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5판에서는 호프마이스터의 편찬자 서문이 이유 없이 빠졌는데, 1952년 호프마이스터 본이 펠릭스마이너 헤겔 전집의 일부로 발간되면서 다시 이 편찬자 서문이 되살아 나게 되었다. 엄밀하게는 라슨 판 제 6판에 해당하는 것이 펠릭스마이너 헤겔 전집의 정신현상학인데 이 책이 오늘날 호프마이스터 판본으로 불리우게 된 것이다.

헤겔 전집은 여러 곳에서 발간되었는데, 펠릭스 마이너 전집(철학총서 개정 전집)-1950년대, 수어캄프 전집-1970년대, 헤겔서고가 주관해서 편찬한 본스피엔 교수 판본-1980년대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호프마이스터 판본을 복사하여 초록색 표지로 제본하였고, 본스피엔 교수 판본을 빨간색 표지로 제본하여 학생들이 공부하였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정신현상학 녹색판’, 정신현상학 빨간판으로 명칭을 정하여 설명하고 있다. 임석진 선생의 정신현상학은 이 녹색판, 즉 호프마이스터 판본에 근거하여 번역된 책이다. 그러므로 호프마이스터의 편찬자 서문이 포함되어 있고, 그 글은 헤겔 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이 책에서는 그 부분을 강독하려고 하고 있다.

 

* 추체험 (Mitvollzug) = 자기추동

우선 호프마이스터는 헤겔의 철학을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고, 방법론만 가져오는 일도 불가능하며 오로지 헤겔 철학은 추체험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헤겔의 철학은 방법의 서술이면서 동시에 내용의 서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몇 개의 개념을 설명하는데 그것은 현상학’, ‘역사등이다. 이론적으로 문고리가 되는 개념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호프마이스터는 결론적으로 이런 개념보다는 추체험밖에 달리 헤겔 철학의 이해에는 방법이 없다고 설명한다.

 

* 철학함

글쓴이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이해하려면 독일 철학의 철학함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철학함이란 시대적 소명을 위해 자신의 온전한 삶 전체를 거는 자세, 그 고독한 투쟁을 말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호프마이스터는 칸트, 피히테, 셸링 등의 독일 관념철학과 헤겔의 철학을 관련짓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명예혁명과 프랑스대혁명으로 정치 경제적인 근대화를 이루어 나가고 있었으나 독일은 종교전쟁 이후 소국가 체제로 분열된 상태였으며 봉건적 체제가 지속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독일의 지식인들 속에 민족통일과 근대화의 정신이 싹트고 있었다. 독일 관념론은 이런 신지식 운동의 일환으로 보였기에 칸트의 철학은 지식인 혁명의 철학으로 환영 받았고, 피히테는 독일 학생운동을 주도하였다. 셸링의 낭만주의 철학은 독일 지식인에게 행동주의를 고취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헤겔의 철학은 프러시아의 개혁운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호프마이스터가 철학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그러한 시대적 고뇌를 함께하는 실천적 행동으로서의 철학함이 지닌 의미망을 알 수 있게 된다. , 뮌처의 농민혁명(1525), 독일의 시민혁명(1848), 독일의 관념론은 이런 시대적 소명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아마도 2007년 즉 헤겔 정신현상학 출판 200주년 기념이던 해에 출판 기획된 것같다. 실제 이 영혼의 길을 모순에게 묻다2010년도 초판 출간된 책이다.

 

* 헤겔 철학의 두 가지 방식

하나는 논리학에서 나오는 사변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현상학에서 제기되는 정신의 서술이다. 이는 마치 칸트 철학에서 형이상학(존재론)’이성비판(인식론)’의 관계와 같다. 헤겔 자신도 정신현상학사변철학의 예비적 단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글쓴이는 정신현상학의 논리 전개 방법을 선험적 변증법이란 개념으로 풀이하고 있다. 칸트적인 개념인데, 마치 칸트가 세계를 인식의 선험적 카테고리로 규정하고 개념을 형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념 체계가 대상의 경험을 미리부터 규정한다는 의미에서 쓰인 말이다. 이렇게 규정된 세계를 현상계로 볼 수 있다. 이런 개념체계로 세계를 파악하다 보면, 인식되지 않고 남는 소여가 있게 된다. 칸트는 이 잔여물을 물자체로 규정짓고 있고 이를 인식하고자 하면 개념적인 파악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인식의 자기 모순에 부딪힌다고 불렀다. 이를 가리켜 칸트는 선험적 가상이라고 부른다. 이는 모순, 가상, 불일치 등으로 바꾸어 부를 수도 있다. 이 선험적 가상은 칸트에게 있어 불가지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헤겔에 있어 이 선험적 가상은 변증법의 진행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운동의 근거가 되고 있다. 처음 가졌던 의식의 틀로는 해결될 수 없는 새로운 선험적 가상의 출현으로 인하여 의식은 더 포괄적인 의식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고 그 변모는 이전에 등장했던 모순을 포괄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를 통해 모순은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계기로 작동하게 된다.

개별적 의식() 자기 모순으로서의 선험적 가상() 보편적 의식()으로서의 변모가 변증법인데, 여기서 선험적 가상은 변증법적 운동의 변화를 촉발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헤겔은 의식을 넘어서 물자체의 세계로 끊임없이 변모되어 갈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의 모순이 출현하지 않는 세계인 절대지의 세계에 도달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식의 선험성의 원리에 기초한다면, 현상계에는 언제나 선험적 모순이 등장할 개연성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절대지란 새로운 모순이 출현하기 전에 잠정적으로 출현하는 일시적 형태로서의 절대지로 파악해야 한다.(이 부분은 헤겔 철학의 내용을 그대로 본 것이라기보다는 이병창 교수 개인의 견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경우라면 헤겔은 절대라는 단어로 를 수식하여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병창 교수는 절대지의 경지도 시뮬라크르의 세계라고 단언하고 있다.)

 

* 형태와 계기의 변증법

헤겔에게 있어 형태는 표상적인 이미지를 의미한다. 즉 직관적인 표상이다. 이는 의식에 대해 대상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즉 즉자에 대해 대자로서 나타난다는 뜻이다. 반면 계기는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를 일컫는다. 이 계기들은 순수한 관념적 관계를 가진다.

의식은 보다 보편적인 의식의 형태로 발전해 나간다. 이런 형태가 전개되는 과정이 곧 정신의 서술과정이다. 정신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이런 의식의 변모는 직선적이지 않고 곡선적이다. 각 의식은 다른 척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등속도의 변화를 가지지 않고 마치 가속도 운동처럼 변모되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의 서술을 통해 개별자에서 보편자로 의식이 도약해 가는 개방된 역사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새로운 의식으로의 생기(生起:Geschichte)라고 한다. 이는 개별적인 의식의 편에서 보면 의식의 생기이지만 보편적인 의식의 편에서 본다면 이 도약은 개별적 의식을 내재적 계기로 기억(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생기하면서 펼쳐지고, 기억되면서 에워싸는 이중적 과정이 주관적 의식의 생성이다.

이와 달리 계기의 변증법은 논리적으로 전개된다. 개별자는 어디까지나 보편작의 가장 초기적인 모습으로 제시된다. 보편자는 초기에는 가능성으로만 볼 수 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최종적인 도달점을 통해 보편자로서의 의식이 등장하게 되면, 그는 최종적인 도달점에서 바라보아 회고적인 시점에서 전체를 조망하게 된다. 이런 논리적 전개로 보면 세상의 모든 변화는 목적론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 물론 고식적이고 단순한 형식 논리의 전개로 보면 안 된다. 그러나 절대지의 입장에서 회고적으로 전체를 조망하면 이 과정은 시간적으로 직선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며, 역사(history)의 시간으로 보인다.

이 생기의 길과 역사의 시간으로서의 길은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은 길을 상반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역사와 논리 사이의 이런 투영되면서도 전도된 관계가 전체적으로 헤겔의 철학을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형태의 역사가 정신현상학의 서술의 길이고 반면에 계기의 논리라는 질서는 헤겔의 철학, 사변철학, 논리학을 형성하게 된다.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지루하게 역사적 서술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절대지의 단계에 도달하는 과정으로서의 기억지점을 하나씩 기록해 놓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역사의 추체험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은 개별적 의식이 자기 모순을 거쳐 지나간 과정을 보여주면서 원리를 발견하는 연구의 과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의식이 어떤 고통을 당했고, 어떻게 이를 극복해 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설명은 쉽지만 진정한 이해에는 도달할 수 없기에 의식의 발전을 헤겔은 추체험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사변철학으로 정리해 제시한다면 죽은 지식의 체계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서술을 정신현상학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주관성의 철학

헤겔은 의식 주관성의 운동을 복권시킨다. 개별적 의식으로부터 보편적 의식으로 펼쳐지고 에워싸는 생성의 운동이다. 의식은 대상을 선험적으로 구성한다. 그 결과 의식에 의해 구성되지 못한 잔여물이 남게 되고 그에 따라 의식의 대상화는 곧 자기 자신(주관성)’과 차이나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의 생성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 자신과의 차이로부터 다양한 차이가 생성되고 나타나게 된다. 현상계에서 실재와 가상의 차이, 현상계와 초월계의 차이, 초월계의 자기 모순, 이전의 주관적 의식과 이후의 주관적 의식 사이의 차이, 현상적 인식과 절대지의 차이 등이 출현한다. 이를 통해 주관성의 생성 운동이 일어나게 되므로 이 차이는 만물을 운동하게 하는 원동자가 된다.

헤겔에서의 이념은 무한자이며 생성하는 개념이다. 생성하는 개념이란 곧 자기 자신과의 차이를 통해 자기 내로 반성하는 주관성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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