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의 섬세한 풍경묘사나 무심한 듯한 사물 묘사가 좋다. 여러 언니들과 새로 태어난 남동생 사이에서 자라면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던 소녀가, 부모의 지인 집에 맡겨져 사랑받는다는 것이 주는 따뜻함과 인격적 존중이 무엇인지를 느끼고 깨달아가는 과정을 툭툭 수채화처럼 그려낸 소설이다.

사람이라면, 자신이 알고 있긴지만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란 , 인간다움을 지키는 한 방법임을 얘기하는 것도 참 마음에 든다.

도서대출자 명단이 길어져 책을 빌리려면 보름 이상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좋은 작가를 한 사람 더 알게 됐다는 사실은 행복한 일이다.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사실은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다. 장화 뒤꿈치로 잔디를 뜯고, 차를 몰고 가기 전에 지붕을 철썩 때리고, 침을 뱉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앉기를 좋아한다. 신경 쓸 것은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 P12

"네, 이 집에 비밀은 없어요."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린 부끄러운일 같은 거 없어도 돼."
"알겠어요." 나는 울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한다.
아주머니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넌 너무 어려서 아직 모를 뿐이야." - P27

벽에 머그잔이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먼지 앉은 에나멜안에 그림자가 담겨 있다. 나는 손을 뻗어 못에 걸린 머그잔을 빼낸다. 내가 우물에 빠지지 않도록 아주머니가 바지벨트를 잡아준다. - P29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나는 머그잔을 다시 물에 넣었다가 햇빛과 일직선이 되도록 들어 올린다. 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P30

"이게 다 무슨 일이야?" 킨셀라 아저씨가 밭에서 돌아온다.
"매트리스 때문에." 아주머니가 말한다. "빌어먹을 매트리스에 습기가 차서. 저방이 원체 습하다고 내가 말 안 했나?"
"그랬지." 아저씨가 말한다. - P36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란다." 아저씨가 말한다.
"오늘 밤 너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지만, 에드나에게 나쁜 뜻은 없었어. 사람이 너무 좋거든, 에드나는 남한테서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가끔은 다른 사람을 믿으면서도 실망할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지. 하지만 가끔은 실망하고." - P72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 P73

하지만 양동이를들어 올리려고 남은 한 손을 마저 뻗었을 때 내 손과 똑같은 손이 물에서 불쑥 나오는 듯하더니 나를 물속으로 끌어당긴다. - P86

아저씨의 품에서 내려가서 나를 자상하게 보살펴준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더욱 심오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 P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