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의 스크린 위에서는 경험이라는 드라마가 펼쳐지고, 그로부터 ‘알아차리는 나‘라는 개념이 생겨납니다. 그것은대상적 경험과 너무나 밀접하게 엮여 있기에, 자신의 본모습을 잊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현존을 망각해 버립니다. 마치 우리가 꿈속에서 내가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것과 같습니다. - P80

하지만 영상으로 스크린을 완전히 덮어버릴 수는 듯이알아차림 자체가 경험에 의해 완전히 가려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스크린을 볼 수 있듯이 알아차림은 모든 경험들 내내 스스로를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 P80

영화 속의 풍경을 볼지 아니면 스크린을 볼지 여부는,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지요. 처음에 우리는 영화 속의 풍경을 보게 되고, 그러고 나서야 스크린의존재를 인지하게 되고, 그 다음에 스크린을 풍경이라고 보고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처음에 우리는 다양한사물들을 보게 되고, 그러고 나서야 알아차림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고, 그 다음에 알아차림을 대상적 경험의 총합으로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곧 수피즘sufism 에서말하는 "모든 것은 신의 얼굴이다"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 P81

그러므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아차림이란 주의 집중을 이완시키고 대상적 경험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으로써 주의를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고 쉬게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최상의 명상은 마음에 의해 이루어지는 어떤 정신적인 활동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스스로의 원천이자 본성인 순수한 알아차림으로 되돌아가고, 쉬고, 깊이 침잠하는 것입니다. - P85

알아차림이스스로에게 되돌아가는 것, 자신의 본모습을 기억하는 것이곧 알아차리기에 대한 알아차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명상과기도의 핵심이며, 영원한 평온함과 행복으로 향하는 직접적인길 direct path 입니다. - P85

이처럼 개별적 자아가 느끼는 되돌아가려는 힘이 바로행복을 향한 열망이자 신을 향한 갈망입니다. - P86

본질적으로 이완되고 평온한 알아차림으로 끌리는 것은 개별적 자아의 수축contraction 때문이며, 이것이 곧 은총의 끌어당김attraction입니다.
신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곧 우리를 향한 신의 사랑입니다. - P87

러시아의 철학자 우스펜스키 P. D. Ouspensky, 1878~1947는 알아차림이 스스로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인식하는 과정을 스스로 기억하기 self-remembering‘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기억‘이란 잊어버렸던 과거의 일을 다시 기억해 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친숙하고 늘 곁에 있는 나의 본래 모습을 다시 인식한다는 의미입니다. - P91

대상적 경험으로부터 벗어나 핵심적이고도 환원 불가능한본질로 되돌아가는 질문을 마음에게 던져봅시다. 그리하면알아차림을 스스로의 활동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분리할 수있습니다. - P99

예를 들어 "나는 알아차리고 있는가? Am I aware?"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보통 무언가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알아차림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의 빛을 대상적 지식이나 경험으로 향하도록 합니다. 반면 "나는 알아차리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은 마음을 대상이 없는 objectless 방향으로 이끄는 신성한 물음입니다. - P99

"나는 알아차리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그렇다"라는 대답사이에서 잠시 멈추는 순간, 마음은 그 작용을 멈추고 한계로부터 벗어나서 무한한 알아차림으로 드러납니다. 그리하여스스로를 빛내며 스스로를 압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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