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과 홍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식당을 뛰어나가 103호로 갔다. 방문을 벌컥 열자 송화가 구석에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버들네 방과 달리 마루로 된 바닥이었고 한옆에 개켜 놓은 이부자리가있었다. 버들과 홍주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홍주가 송화를 끌어안고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 P85

공부몬 해도, 호강몬 해도, 당신이 지주가 아니라 캐도 괘않았습니더, 기왕지사 부부가 됐으니까네 서로 아껴 주메 도와 가메 살고싶었는 기라예. 그란데 당신은 이레 죽은 여자를 맘에 품고 내한테는 손톱만치도 틈을 안 주니 내는 어쩝니꺼? 말해 보이소 지를 한번이라도 각시라고 생각한 적 있습니꺼?"
말을 할수록 설움이 커진 버들은 아예 두 다리를 뻗은 채 엉엉울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풀을 뜯어 던지며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태완은 점점 더 빨게지는 얼굴을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 P174

태완은 한쪽 밥을 떠서 뚜껑에 담아 버들에게건네주었다. 그러고 도시락에 아직 남은 개미들을 후후 불어 날린뒤 밥을 입에 떠 넣고 우적우적씹었다. 늘 그래왔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뜨겁고 고요한 묘지에 앉아 개미가 꾀었던 밥을 먹는 태완을 보자 버들은 무언가 울컥 치밀었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속내를 쏟아부었던 조금 전과 다른 감정이었다. 태완이 남의 땅에 와 살아낸 시간을 한순간에 다본 것 같았다. 버들이 살아봤기에 이해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 P176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상처가 어떤 것인지 버들도 잘 알았다. 그 모든게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 태완이 그동안 닫아 두었던 문은 새 사람 쪽으로 향한 문이 아니라 자기 과거의 문이었을지 몰랐다. 버들은 태완에게 연민을 느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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