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삶은 죽기 시작한다. 말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삶을 언어의 법칙, 즉 ‘타자의 법칙‘에 무조건적으로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이 법칙을 상징하는 인물이 아버지다. 따라서 아버지는 무엇보다 불가능의 경험을 보유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해 있다. 삶의 인간화가 오로지 근친상간의 폐지를 경험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아버지는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에게 한계가 있음(불가능의 경험)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말의 계율‘에 복종한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한다. - P47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계율 자체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가 ‘말의 계율‘을 존중한다는 사실만이 그를 아버지로 만든다. 결과적으로 그가 몸소 운반하고 전수하는 거세의 법칙은 속죄나 형벌이 아니다. 거세의 법칙은 무엇보다 계율의 향유를 금지하는 법칙이다. 아버지는 계율을 상징하지만, 그것은 계율을 즐기지 않고 증언한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그의 말이 상징하는 계율은 곧 인간의 삶을 동물의 그것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계율이다. - P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