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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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여기에 달려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열쇠가 없다. 63쪽

나는 아직도 무거운 자물쇠를 열 수 있다. 철문을 분리할 수 있다. 327쪽


초반은 잘 읽히는 로맨스 책처럼 잘 읽혔다. 다정하고 평온한 성품의 남자, 미카엘과 열정적인 여자, 한나의 로맨스를 다룬 책이라 생각했는데 책의 뒷쪽으로 갈수록 읽기가 힘들다. 한나의 심리묘사를 따라가기가 버거웠기 때문이다.


저 정도 남편은 훌륭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의 결혼생활에서도 한나처럼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시기가 있었다는 걸 떠올리며 깊이 공감이 갔다. 내가 없어지는 삶. 나의 절망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분명히 잘 살고 있고 행복한데 공허한 그 느낌들을 아주 섬세하게 잘 그려냈다. 아모스 오즈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의 글쓰기가 참 섬세하다고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깜짝 깜짝 놀라곤 했기 때문이다. 나를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겪어온 감정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이 사람은 결혼한 여자들의 이런 감정을 이렇게도 잘 알 수 있는가? 그는 남자인데...

한나가 겪고 있는 답답하고 우울한 터널을 지나 내 꿈을 찾아헤매는 시간을 지나왔으며, 지금은 그 동안 돌보지 못했던 내 마음과 건강을 돌보며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느낌은 지나온 나의 과거를 들여다보며 잘해냈다고 위로하듯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었다.


"한나 그린바움-고넨 양. 당신 이름의 머리글자를 쓰면 히브리어로 '축제'라는 의미군요. 당신의 인생이 매일 축제 같기를." 77쪽


이름 뜻이 '축제'인 여자, 시인같은 느낌의 여자, 불이 떠오르는 여자

한나는 본인의 색깔을 지키지 못해서 힘들었을 거 같다.

그녀가 미친듯이 옷을 사들이는 모습에서 내 모습도 보았다. 그래서 너무 싫었다.

한나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불꽃같은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구나.

이 책을 읽는 기분이 묘하다.


서명이 <나의 미카엘>이지만 나는 <나의 슬픈 예루살렘 아가씨>라고 변경하고 싶다.

한나의 심리묘사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어느 부분이 그녀의 상상속인지 현실 감정인지 쉽게 구분이 안간다.

그래서 더 극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불행하다.


작가는 문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 속은 여러 작가와 작품들이 등장한다.

서머싯 몸, 대프니 듀 모리에, 슈테판 츠바이크, 로맹 롤랑, 앙드레 모루아의 <사랑 없는 여인>, <파우스트>의 그레첸 등. 아직 모르는 작가나 작품이 엄청 많다는 당연한 걸 또 느낀다.

아마도 문학을 읽는다는 건 끝나지 않을 숙제를 하는 걸까?


이 책의 첫문장을 다시 읽으니 죽는다는 의미는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닌가 싶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15쪽


그렇다면 우리는 몇번을 죽은 상태로 삶을 살아가고 있나?

앞으로 사랑을 하겠다. 그 처음은 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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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예쁜 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9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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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께서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시작할 때 삶의 진실을 모르게 하신 것은 정말 옮은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젊은이들은 아예 인생을 시작할 엄두도 못 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411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어린 소년들이 강도높은 일들을 겪는 것이 마음이 불편해서 아름다운 문체를 음미하며 책을 읽지 못했다. 두번째 다시 읽어보니 멕시코의 자연 풍광이 눈에 그려졌다.


미국 텍사스 한 마을에서 16, 17살의 존 그래디와 롤린스가 멕시코로 가출 후 범죄에 휘말리는 등 다양한 에피소드와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으로 잔잔히 느껴지는 존 그래디는 참 좋은 사람이다. 어리지만 반듯하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끈기도 있고 강인한 소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존 그래디와 롤린스의 우정도 부러웠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만한 친구가 있는가? 우리나라는 친구라는 존재를 너무 하찮게 생각하는 듯해서 아쉬웠는데... 이 둘의 우정은 책 한권 가득 담겼다.


롤린스와 존 그래디의 대화에서 데스페라도(desperado)라는 단어가 나온다. 서부시대 때 무법자. 악당이라는 뜻으로 쓰인 단어인데 멕시코인들이 이들을 데스페라도로 바라보고 있다.


이 둘을 따라다니는 어린 블레빈스라는 아이가 있다. 좋은 말을 가졌고 번개를 무서워하며 통제 불가능한 아이지만 섬세해보인다. 존 그래디가 블레벳(blibet)이라는 뜻이 2킬로그램짜리 주머니에 든 4킬로그램의 똥무더기라고 알려줄 때 블레빈스가 먹던 것을 멈추는 부분이 마음이 아팠다. 본인이 그런 존재로 불렸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리라. 작가는 블레벳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육군에서 사용한 은어로, 황당하거나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나 인물 들을 뜻한다고 각주를 달았다. 블레빈스가 이 책에서 그런 인물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리는 것 같았다.


형들이 좋아하지 않아도 자꾸 따라다니는 블레빈스가 안타까우면서 아직 어린 아이가 총살로 생을 마감하는 부분도 너무 마음이 아팠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겪는 아픔과는 다른 종류다. 이 지구가 이렇게나 크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책의 뒷면 추천서에 "카우보이 소년의 피비린내 나는 모험과 생존 게임"이라는 표현이 딱 적절했다.


미국인인 존 그래디는 모국어 영어와 더불어 스페인어 구사한다. 멕시코로 넘어가면서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부분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스페인어 발음을 조용히 따라해보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한다는 건 참 매력있다. 내가 암기하고 싶은 스페인어 문장을 아래의 문장으로 뽑았다.


우나 야베 데 오로 아브레 쿠알키에르 푸에르타.(좋은 열쇠는 어느 문이든 여는 법이지.)


말을 좋아하는 존 그래디는 1000마리의 소를 기르는 목장에 도착한다. 그에게는 이 곳이 천국이었을 거다. 말 조련사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며 목장주의 신임을 받기 시작하는데 목장주의 딸 알레한드라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대로 멈춰버렸으면 좋으련만... 함께 말을 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녀는 그를 너무나도 드물고 소장한 존재인 "모하도 레베르소(방항아)"라고 불렀다.


존 그래디는 연극을 하는 엄마를 떠나서 텍사스로 왔는데 이 때 만난 여자친구가 대도시에서 교육 받았다. 그녀의 엄마는 도시에서 연극을 보면서 함께 지내기를 원하지만 그녀는 아빠가 있는 목장에서 말을 타는 걸 더 좋아한다. 존 그래디처럼... 연극이 이 책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걸까?


연극을 통해 현재 세상이나 앞으로의 세상에 대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얻은 것은 전혀 없었다. 35


4부로 이뤄진 이 책에서 가장 힘들게 읽은 건 바로 3부였다. 존 그래디와 롤린스가 멕시코 감옥에서 겪는 일들이 너무나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에 상상이 너무 잘되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모두 다 예쁜 말들>인 이유를 한참 생각했다. 예쁜 말은 블레빈스의 말 밖에 없었는데... 롤린스의 말에 의하면 예쁜 말은 예쁜 여자와 같아서 골치아픈 일들을 동반한다고 했다. 그럼 왜 이 책 제목은 모두 다 예쁜 말들일까? 아직 더 고민해봐야겠다.


오랜만에 읽은 긴 책이었는데 지루하지 않고 잘 읽었다. 작가인 코맥 매카시가 궁금해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또,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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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부분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지.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거든. 흉터를 얻게된 사연은 결코 잊을 수 없지. 안 그런가? 199


그들은 프랑스에서 공부했지. 프란시스코나 구스타보 같은 당시 젊은 세대들 말일세. 그들은 모두 민주주의 사상을 머리에 가득 넣어 왔지. 어찌나 사상으로 가득 찼는지 서로 동의하는 법이 없었어. 그들은 유럽에서 민주주의 사상을 받아들였지. 그리고 돌아와서 여행 가방을 풀어 헤쳤지만 그 내용물은 저마다 제각각이었어. 214


우리들은 사람이 이성만으로 품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아. 그건 아주 프랑스적이 생각이지. 214


온화한 기사를 조심하게. 이성보다 더한 괴물은 없거든. 214


어차피 그 애는 알아서 갈 걸세. 내가 누군가? 난 그냥 아버지야. 아버지는 아무것도 아니지. 215


사람이 다른 나라가 아닌 그 나라에 태어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날씨와 계절이 땅을 형성하는 만큼이나 사람의 내적인 운명 역시도 형성하여 대를 이어 자식들에게 물려주게 하기 때문에 그 운명을 쉽게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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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3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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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명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내용이 사뭇 다른 책이다.

해고 됐다는 착각 - 우발적인 살인 - 도피 - 여성들 - 단어들의 나열

간략하게만 보면 위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블로흐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과거에 유명한 골키퍼였지만 지금은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을 일하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국경근처로 도망치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지만 주인공이 바라보고 있는 풍경의 묘사가 아주 세세하고 사실적이라 마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영상에 담긴 풍경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책이다.


이 책은 언어유희가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한번 읽고 두 번째 다시 훑으니 아래와 같은 언어유희와 관련된 내용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시마르크트로 돌아와 가게들 뒤에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텅 빈 과채 상자들을 보고 있자니 재미있는 익살을 보는 듯했다. '무언(無言)의 위트!'하고 생각했다. 블로흐는 무언 풍자극을 즐겨 보았다. 19쪽


그는 이제야 비로소, 마치 강제로 하는 것처럼, 모든 대상에 대한 단어를 생각하게 되었다. 대상을 보면 단어가 떠오른다. 56쪽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대상들 가운데서도 마치 윤곽만 존재하는 듯 윤곽을 우선 보았다. 그는 모든 것을 이전처럼 단어로 옮기거나 언어유희로 파악하지 않고 직접 보고 들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그러한 상태에 있었다. 100쪽


'다시 마을로, 다시 여관으로, 다시 방으로. 전부 아홉 단어군.'하고 블로흐는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했다. 75쪽


주의해서 생각하자 단어가 하나씩 하나씩 쉽게 머리에 떠올랐다. 비가 올 듯한 10월 어느 날, 이른 아침, 먼지낀 창유리. 완전하게 작동되고 있었다. 76쪽


화창한 낮에 혐오스러운 언어유희병이 그를 엄습했다. 88쪽


그가 바라보는 주위 풍경들은 글자의 형상으로 그의 눈에 확 들어와 박혔다. '호출 부호 같군.'하고 블로흐는 생각했다. 지시문 같은! 그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때,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져서 나타났다. 92쪽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대상들 가운데서도 마치 윤곽만 존재하는 듯 윤곽을 우선 보았다. 그는 모든 것을 이전처럼 단어로 옮기거나 언어유희로 파악하지 않고 직접 보고 들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그러한 상태에 있었다. 100쪽


나는 언어유희라고 하면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했다. 또 단어를 모으거나 단어에 집중하는 행위는 착하고(?) 내면이 깊은 사람들이 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렇지만 한트케는 나의 그런 편견을 한번에 깨부신 사람이다.

한 인간의 불안한 심정을 언어유희로 표현한 그 기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정신분열 같기도 하고 ADHD같기도 하고... 아니면 AI가 탑재된 기계인간 같기도 하고...

뭔가 혼돈스럽지만 그의 뇌 속에 내가 들어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단어들의 나열, 접속사의 선택, 문장의 선후관계까지 계속해서 생각하고 생각한다.

블로흐적 사고가 이 책을 읽는 오늘 하루 나와 함께 하는 경험을 했다.


독자들의 이런 반응을 작가가 원한 것이라면 단연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아는 문학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Brand new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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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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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뉴욕, 미국인의 이미지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영화나 미디어로 접했던 미국 이미지는 "기회의 땅"으로 도전과 모험과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나라고, 뉴욕은 젊음의 도시로 생각했는데, <순수의 시대>에서 만난 뉴욕은 너무 낯설었다. 역사도 짧은 미국 조차도 역시나 타인과 나의 차이를 구분짓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가진 자들끼리도 귀족과 진짜 귀족 등으로 서로를 나누는 모습이, 인간 사회가 매한가지구나하고 생각이 들었다. ^^


미국이 귀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기나 하던가?

어느 나라든지 지배계층의 사고방식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뉴욕 아카데미 오브 뮤직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의 대비와 미국 상류층의 힘겨루기가 재미있었다.


다른 책과 달리 상류층의 취향에 대해서 묘사하는 부분이 많았다. 음악, 공연, 미술, 책, 식기들, 의복, 마차, 당대 유명한 작가나 가수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가득했다.


<파우스트>공연으로 1장을 시작하고, 세브르 산 고급 자기, 트리베나의 조지 2세 접시, 로스토프트 자기, 크라운 더비 자기와 같은 식기들, 밴 더 루이든 부인을 카바넬의 그림 속 인물로 묘사, 아처 부인을 이자베이의 세밀화 속 인물로 묘사, 영국 작가의 <르네상스>, <미들마치>, 연극 <방랑자> 등 이런 상세한 묘사는 그 문화를 공유하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참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서 하나씩 찾아보면서 이 책을 읽어내야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차츰 상상이 되면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순수의 시대'란 제목은 무얼 의미할까?

뉴욕의 바보같은 옛 모습을 말하는 듯하다. 체면과 가문을 중시하는 상류층 사람들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결론을 냈다. 지금 뉴욕은 순수의 시대가 아닌 바빠서 이웃을 성가시게 할 시간도 없고 원하는 건 당연히 원할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보퍼트의 사생아들과 결혼하는 그런 도시이기 때문이다.


순수와 구분짓는 상류층 이야기는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메이의 엘렌 퇴치법(?)은 너무 무서웠다. 살면서 메이같은 사람은 안만나며 살고 싶다. 그런데 그게 옛 뉴욕의 방식이었다니... 작가는 메이가 대표적인 순수의 시대 인물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이 '피를 흘리지 않고' 목숨을 빼앗는 옛 뉴욕의 방식이었다. 412쪽


엘렌의 아래 대사는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도 얼마나 많은 거짓 흉내를 요구하고 요구 받았던가?


진짜 고독이란 거짓 흉내만을 요구하는 이런 사람들에게 온통 둘러싸여 사는 거예요! 99쪽


메이의 대사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사는 저 한 문장 뿐이었다.


옷은 그들의 갑옷이야. 낯선 타인들에게 맞서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이자 도전이지. 247쪽


아처가 엘렌을 포기하고 임신한 메이를 택하며 마음 속 성소를 만들었다는 표현이 좋았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일종의 성소를 만들어 놓고 비밀스러운 생각과 열망가운데 그녀를 간직해 두었다. 그곳은 조금씩 그의 진짜 삶이자 이성이 활동하는 유일한 장이 되어 갔다. 324쪽


이 책을 읽는 시점에 미국 대선이 진행되고 있어 트럼프도 미국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한 전처와 피자 광고를 찍어 본인의 이미지를 바꾸는 전략적이고 저돌적인 트럼프. 날것을 있는 그대로 비판하는 트럼프. 순수의 시대 사람들이 그어 놓은 선을 트럼프는 가뿐하게 넘어가 버린다. 이런 사람들이 순수의 시대를 끝내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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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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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안녕?

오랜만이지? 나의 학창 시절을 함께한 나의 일기장 친구, 인디언!


오늘은 <모래의 여자>라는 책을 읽고 너에게 편지를 써.

8월은 정말 무더웠어. 그 더위 속에서 바다로 여행을 다녀왔고, 수영하다가 모래에 앉아 어린아이처럼 놀기도 했지. 또 영화 <듄 2>도 봤어. 배경이 사막인데, 석양이 비치는 모래사막이 정말 아름답더라. 그 영상을 보면서 "사막에 여행을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의 영상미는 매혹적이었어.


8월 한 달 동안 이렇게 모래와 관련된 책과 영화를 접하고 나니까, 여행에서도 모래가 다르게 보였어. 그래서 이번 8월은 '모래'에 관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 같아.

이 책은 일본을 배경으로 해. 학교 선생님인 한 남자가 휴가를 내고 곤충 채집을 하기 위해 모래 마을에 갔다가 실종되는 이야기야. 세상 밖에서는 그를 찾는 뉴스가 나와도, 그는 무너져 가는 모래 경사 아래 형성된 마을에 갇혀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해.


모래가 끊임없이 쌓이는 마을에서, 혼자 남은 여자는 모래를 퍼내야만 해. 이 남자는 그녀를 돕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잡혀 마을에 갇히게 돼. 마치 개미지옥에 빠진 곤충처럼, 이 남자도 모래마을에서 벗어날 수 없어.


결국 그 남자는 그 여자와 부부처럼 생활하게 되지만, 여자와 마을 사람들이 방심한 틈을 타 도망치려다 다시 붙잡혀.


이 이야기는 굉장히 기이하고 이상해. 그런데도 읽다 보면 실제로 일본 어딘가에 그런 마을이 있을 것만 같은 사실감이 느껴져.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내 입안에 모래가 든 것처럼 거칠고 꺼끌꺼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져. 이 작가, 아베 코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과 여자가 한심하게 느껴졌어. 그리고 탈출을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곳에 순응해버리는 그 남자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고군분투하다가 주어진 삶에 안주하게 되는 모습이 우리 평범한 사람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혹시 작가가 이런 감정을 유도하려고 했던걸까?


모래에 대한 프로젝트는 아직 그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그냥 싱겁게 끝났어. 이제 가을이 왔거든.

다시금 모래에 대해 생각이 정리가 되면 다시 편지할께.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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