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결국은 말입니다
강원국 지음 / 더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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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 비서관으로 두 대통령을 모셨던 저자는 글쓰기와 말하기의 달인으로, 말 같지 않은 말과 어른답지 않은 말을 매일 반복하는 나에게 당신의 말은 안녕하시냐며 안부를 묻는다. 늘 사람됨의 취약점으로 콤플렉스를 안고 있는 이 우매한 독자는 이 책의 제목에서 한 줄기 빛을 본다. 저자가 나도 말을 잘해보고 싶다, ‘말 좀 잘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소리 없는 외침을 들었던 걸까?

 

직장에서 말을 잘하려면 실행 과제, 문제점, 원인, 해법, 주장, 이유, 근거, 실행 계획, 기대 효과, 소요 예산 등과 같은 단어를 머릿속에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114)

 

혹시 누군가는 절대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한 집에서 세 여자와 함께 사는 처지라 속옷 차림으로 아무렇게 나뒹굴기도 어렵다. 코끼리 우는 소리 같다는 내적 갈등의 외적 폭발을 아무 때나 발산하기도 힘들다. 나는 저들의 말을 못 알아먹을지언정 저들에게 못 알아먹게 말했다가는 당장 날카로운 쇳소리를 각오해야 하는 성 소수자다. 그 이름만 들어도 자동으로 혀를 차게 되는 내 이름은 남편, 아빠, 아들이다. 쉽게 말해 말 더럽게 못 하는 남자다. 말할 줄 아는 능력이 없다는 게 아니라, 때와 장소를 못 가리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마구 끼얹는 신묘한 재주를 지녔을 뿐이다. 저 멀리 라오스에서는 복을 준다며 모르는 행인에게도 물을 끼얹는다던데, 이제 이민이라도 가야 하나?

 

머리와 가슴으로 말하는 건 차등이 있을 수 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감수성과 감성이 풍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말이다. 경험에는 높낮이가 없다. 오히려 맵고 짜고 쓴 경험이 더 대접받는다. 사람들은 고난과 역경, 실패와 좌절의 경험에 더 귀를 쫑긋 세운다.” (124)

 

딸아이들이 고3이던 시절 학원으로 과외로 차로 실어 나르며 뒷바라지하던 때가 생각난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시간을 부녀간의 대화라며 즐거운 착각에 빠져 있었다. 아이들에게 공부할 동기부여와 멋진 아빠의 소싯적 직장 생활의 무용담(?)을 들려주느라 자주 침을 튀기고는 했는데, 대화의 주도권이 약해 주로 말하기보다 듣기를 많이 하던 딸아이들은 나중에야 지나가듯 말했다. 실패담은 거의 없고 맨 아빠 잘난 얘기만 해서 그리 달갑지 않았다고.

 

말하기가 힘든 이유도 관계 때문이다. 말은 내 말을 듣는 상대가 있다. 말하는 이유 역시 내 말을 듣는 누군가와 친해지거나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좋은 관계를 위해서다.” (136)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좋게 생각한다. 아니, 자기 생을 이어가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리 생각하게끔 되어 있다. 본능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임을 너무나 쉽게 망각한다. 더욱 솔직해지자면 우리로 바꾸어야 한다. 나이 들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자의든 타의든 자신을 점점 더 객관적으로 관망하는 자세가 몸에 익어간다는 것이다.

 

배려하는 사람은 말로써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한다. 조크와 재치로 사람들을 웃긴다. 덕담에 인색하지도 않다. 축하하고 칭찬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풍부한 대화 소재와 다양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도 한다.” (185)

 

말하기의 안부를 묻는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에서는 듣기와 말하기는 한 쌍이라며 상대를 받아들이고 내 생각을 확장하는 경청의 태도를, 2장에서는 어디서든 통하는 말에는 구성이 있음을 지적하며 정확하고 적절하게 전달하는 말하기 기술을 알려준다. 3장에서는 사람 사이엔 대화가 필요하다는 명제로 관계를 다루는 말하기 연습을, 4장에서는 세상은 내가 하는 말만큼의 깊이로 이루어져 있다며 고쳐 쓴 글처럼 견고하기 말하기를 다룬다. 길게 잡아빼는 문장이 거의 없고 간결 명료한 화법이라 쉽게 금방 읽힌다. 재미있고 알찬 말하기 요령 실용서랄까.

 

지금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비판이 필요하다. 배제와 타도와 공격을 위한 비판,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비판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융합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게 섞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아니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다. 다른 게 섞이기 위해서는 상호 비판이 불가피하다.” (233)

 

주로 생활하는 환경이 학교이다 보니, 그저 줄 세우기나 성적 내기를 위한 목적 말고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고 도움을 주는 실질적인 글쓰기와 말하기 교육이 절실함을 느낀다. 쓰기와 말하기를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하여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남학교라면 더더욱 그렇다. 계속 방치하면 나처럼 말을 제대로 못 하는 미래의 남편이자 아빠들을 양산하게 된다. 정신과 육체의 삶을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뭇 남성들의 사회생활 생존율을 높이는 데에는 국··수보다 쓰고 말하기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면 아들에게 꼭 선물해야 할 책이다. 결국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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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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