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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요리의 세계사 - 왜 중국음식은 세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걸까 ㅣ 따비 음식학 5
이와마 가즈히로 지음, 최연희.정이찬 옮김, 이정희 보론 / 따비 / 2023년 10월
평점 :
로던에 따르면 "국가가 생긴 이래로 가장 널리 소비된 음식은 가장 크고 가장 강한 정치적 단위의 음식이었다. 그리고 지난 4,000년 동안 그 정치적 단위는 제국이었다." 요컨데 『요리와 제국』에서 말하는 '제국'은 '대국'으로 치환될 수 있는 넓은 의미의 개념이다. (-17-)
그중에서도 '8대' 요리 체계에 대해 베이징에서는 1980년 <런민르바오> 가 산둥, 장쑤, 저장, 광둥, 푸젠, 안후이, 후난 , 쓰촨을 들고 있다.그러나 홍콩이나 다른 지방을 들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에도 통일된 견해가 있는 것은 아니다. (-50-)
'만한전석'은 각각 만주족의 요리와 한족의 요리에서 가려 뽑은 메뉴를 한데 모은 최고급 연회 요리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이는 궁중에서 실제로 제공된 적이 없으며 청말에 민간에서 생겨난 것으로 생각된다. 요컨대 앞서 이야기했듯 궁중의 공적 연회석은 '만석'과 '한석'으로 대별되어 각각에 등급이 매겨져 있었다. 여기에는 만과 한을 명확히 구별하는 청조의 정치사상이 반영되어 있으며, 관계에는'만, 한석';은 있어도 양자를 섞어 함께 내는'만한석'은 없었다. (-72-)
중일전쟁이 끝나고 많은 상하이 사람은 전전의 번영을 되찾기를 바랐으며, 상하이 요리는 지나간 세월을 떠올리게 해줘 인기를 얻으며 최전성기를 맞았다.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는 국민당 정권 말기에 중국 대륙에서 행해진 '다라오후' 가 한창일 때도 더싱관의 상하이 요리를 먹으러 갔다고 한다. (-99-)
푼초이는 오래전부터 홍콩의 교외 지역인 신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제사나 결혼식, 피로연 등에 내던 주요리로, 값싼 식재료를 몇 겹에 걸쳐 하나의 큰'푼'안에 담아 조리해 이를 테이블 가운데에 놓고 모두 손을 뻗어 먹는다. (-129-)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화이양 요리는 수나라 양제가 개통시킨 , 황하-장강 일대를 잇는 대운하를 통한 남북 교류가 발달시킨 요리라고 할 수 있다.화이양 요리가 인민공화국의 건국 식전에 오른 것은 북과 남의 조리 기술 계통, 짠맛의 요리 계통과 단맛의 요리계통의 중간에 위치하여 전국 각지에서 온 모든 사람의 입맛에 비교적 맞기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147-)
그중에서도 한국의 자국 식문화에 대한 긍지와 적극적 대외 선전은 중국 사람들을 강하게 자극하여 논쟁으로까지 번진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일찍이 2005년 강릉의 단오제가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중국에서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해진 단오절과 그 음식 풍속이 중국을 앞질러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이 된 것을 하나의 경종으로 받아들였다. (-180-)
여기에 덧붙여두고 싶은 것은 ,일본인이 '지나요리'(중국요리)와 구별하여 제국 문화의 일부로 편입시키려 한 요리로는 '타이완 요리'외에 '만주 요리'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1932년 3월 일본군이 괴뢰 정권'만주국'을 세운 뒤 일본 본국에서는 만주국과 관계가 있는 갖가지 요리가 퍼져나갔다. 예컨데 만주국 건국을 축하하는 차원에서 '신만주 지라시','신국가 덮밥','오족협화 덮밥','국가 도시락'을 만들었다. (-203-)
중국 요리는 어떻게 이렇게나 큰 세계적 영향력을 지닐수 있었을까?첫째로 ,100도 이하로 물로 익혀 재료에서 맛을 끌어내는 것이 기본인 일본 요리 등과 비교하면 200~300도의 기름으로 볶거나 튀기고 조미료를 통해 외부적으로 맛을 주입하는 것이 기본인 중국요리 쪽이 미지의 현지 식재료에 대응하기 쉬웠다는 점을 들수 있다. (-252-)
싱가포르 요리의 중핵을 차지하는 뇨냐 요리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민족 레스토랑에서도 피낭 등지의 지방 요리로서 제공된다.
프라나칸 문화는 싱가포르에서와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에서도 문화유산으로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1980년대부터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양국에서 뇨냐 요리의 상품화가 추진되었으며, 나아가인도네이사에서도 뇨냐 요리 레스토랑이 생기고 있다. 또한, 프라나칸은 화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도 가지고 있어 뇨냐 요리는 중국 요리의 일종일파 할 수도 있다. (-297-)
생선을 염장하여 발효시켜 만드는 어장의 일종인' 느억맘'은 어디에나 들어갈 수 있는 베트남의 대표적 전통 조미료로 여겨지는데, 어장은 푸저우 등지에서 간장보다 많이 사용되며, 홍콩 등 중국 동남부 연해 지역에는 어장의 오랜 역사가 있다. (-327-)
이렇듯 태국의 팟타이는 베트남의 퍼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면요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것과 구별되도록 만들어진 태국 요리다., 퍼와 비교했을 때 팟타이의 창안과 보급은 정부의 영향력에 의한 바가 컸다는 점이 그 특징이다. 주목할 점은 팟타이가 창안, 보급된 1930~1950년대에는 태국에서 내셔널리즘과 반화인 감정이 고조되어 화인에 대한 동화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된 시기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350-)
필리핀의 중국요리는 원래 푸젠 혹은 광둥의 요리였지만 점차 필리핀화된 요리로 변해갔다. 이러한 진화의 전형적 사례가 바로 판싯이나 룸피아다. 여기서는 필리핀 식문화에 뿌리내린 ,중국에서 유래된 요리 다섯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369-)
'인도네시아'는 유럽의 지리학자가 붙인 이름으로, 인도아대륙에서 뻗어나가는 섬들을 뜻하는 명칭이다. 1928년 1월러 바타비아에서 열린 제2회 인도네시아 청년 회의에서는 '인도네시아'를 조국 민족 언어의 명칭으로 선언한 '청년의 맹세'가 채택되었다. (-388-)
'마사코'는 그 주력 상품이며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조미료이다.이는 일본의 '혼다시 에 해당하며 치킨맛, 쇠고기맛 등이 있어 태국,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도 다른 이름을 달고 판매되고 있다. (-397-)
중국인구는 14억에 육박하고 있으며, 주요 인접 국가로 몽골, 러시아, 미얀마, 카자흐스탄, 네팔, 베트남, 북한, 키르키스스탄, 부탄, 파키스탄, 라오스,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태국, 필리핀 이 있다.이들 인접국가는 중국의 식문화가 전파되었으며,그들의 식습관, 생활습관, 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역사와 음식 문화가 서로 겹쳐지고 있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 필리핀,태국, 베트남은 중국 식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현성하고 있었으며, 전세계 차이나 타운, 화교 민족이 추구하는 음식문화에 주요한 역할을 도맡아하고 있다.
책 <중국 요리의 세계사>에서는 음식 문화가 어떻게 전세계로 퍼져 나가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중국은 인접 국가 이외에 미국, 유럽, 인도네시아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으며,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만도에서,중국에서 개발된 향신료와 조미료, 더 나아가,현지에서, 중국 음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개량되었다. 특히 제국주의 국가 일본이 추구하였던 건, 중국의 음식 문화 뿐만 아니라,타이완, 홍콩, 필리핀 음식문화를 일본에 편입하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표출하였으며, 중국 음식이 그들의 식습관,생활습관에 묻어날 수 잇도록 다양한 방법을 도입하였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 8000만명, 300개 이상의 민족과 700개 이상의 언어가 존재하는 나라였다.중국의 음식 요리가 인도네시아에 먹혀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자바 사람들은 중국 요리의 볶고 끓이고, 간장에 조리는 조리법 뿐만 아니라, 해삼이나 제비집 요리가 생소한 요리였고, 미지의 것이었다. 그래서.,인도네시아에 중국의 요리를 접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조리 기법이 필요했다. 조미료를 이용하여, 인도네시아 요리에 넣는 방식을 적용하였으며, 중국 음식문화가 인도네이사 전역에 퍼질 수 있었다. 책에는 산둥, 장쑤, 저장, 광둥, 푸젠, 안후이, 후난 , 쓰촨 8대 지방에서, 8대 요리 쓰촨요리, 광둥요리, ,푸젠 요리, 상하이요리, 산둥요리, 허난 요리, 후난 요리, 난징 요리, 등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으며, 만주족이 중국을 지배하였던 당시에 중국 에서는 특별 보양식 ,개요리가 만주족 사람들에게 맞게 바뀌었었다. 특히 중국 드라마에 단골로 나오는 화려한 연회식 만한전식은 현실과 다르며, 만주족 한족 요리, 두 가지 요리가 각각 따로 따로 만들어져 궁중에서 먹었으며, 민간에서 퍼져 나간바 있다. 청나라와 명나라,두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자존심 대결이 반한전식에도 반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