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기원 2-2 - 폭포의 굉음 1947~1950 현대의 고전 16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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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무력 분쟁은 1949년 여름과 1950년 여름 옹진과 개성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시작됐다. 현장도, 등장인물도 , 첫 충돌도 비슷했다. 그러나 한 사건은 전쟁을 불러왔고, 다른 사건은 그렇지 않았다. 이 장에서는 대한민국이 미국의 방어 또는 미군이 한국군을 공동으로 통제한다는 보장을 받지 못한 전후 역사의 1년인 1949년에 일어난 전투와 그것을 유발한 쟁점을 분석할 것이다. (-13-)

맥아더도 비슷한 생각이었다.1948년 3월 그는 케넌과 중요한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생각한 방위선 체계의 의미를 분명히 밝혔다.미국은 "공격" 을 봉쇄하는 'U자 형 지역"을 설정했다. 거기에는 미드웨이, 알류샨 열도,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지 그리고 "핵심 요새"인 오키나와가 포함됐다. 그러나 일본에는 기지나 군대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71-)

유엔 한국위원회는 한국에 체류한 미국의 부속적 존재일 뿐이었다. 아니, 그래야 했을지도 모른다. 맥아더는 대표들이 탈 비행기를 보내줬고, 주한 미군 군사고문단은 지프차를 제공했으며, 주한 미국 대사관은 그들이 체류하는 동안 안내와 숙박과 식사를 담당하고, 서울 생활에 관련된 끝없는 불평을 처리해줬다. 남한에는 외국인 시찰자를 다루는 유명한 방법이 있었는데, 1949년 유엔한국위원회가 방문했을 때 그 방법이 널리 사용됐다. 1950년 초 유엔한국위원회 사무국이 38도선 시찰에 나서자, 기관총을 장착한 헌병대가 가득 탑승한 지프차가 행렬의 선두에 섰다. (-152-)

앞서 그리피스는 중국 정책을 둘러싼 불안이 고조된다면 애치슨은 "퇴진할 거라고" 웰링턴 구에게 말한 바 있다.앞서 본 대로 매카시가 이끈 반격 세력은 에치슨의 권한을 약화시켰고, 매카시 이후로도 존슨, 도너번, 콜버그 등의 인물이 계속 있었다. 6월 7일 그리피스는 웰링턴 구와 둥셴광에게 애치슨은 사임해야 한다는 의견을 계속 주장했다. (-232-)

개성에서 더 동쪽에 위치한 38도선 부근 도시인 춘천에 있던 사람들은 6월 25일에 전투가 시작된다는 정보를 미리 알았음이 분명했다. 당연하게도 남한과 미국 자료에서는 그것을 북한의 공격에 대한 사전 경고라고 서술했다. 월러비의 한국 연락사무소(KLO) 소속으로 여겨지는 주한 미군 군사고문단 정보 장교 토머스 D.맥파일은 자신이 북한 지역으로 보낸 남한 공작원들로 부터"풍부한 정보" 를 얻고 있었다. (-293-)

이런 사실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상대편에게 보내는 매우 중요한 신호였다. 1980년대에도 공산국가의 현실정치는 미국의 힘에 맞서기보다는 특정 동맹국을 희생시키는 것을 선택했고, 소련은 자국의 실제적인 군사 억제력을 믿는 지역에서도 명확한 한계를 두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국 전쟁 관련 기록을 검토하면 북한은 군사 억제력 행사 지역이 아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소련은 전투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처음부터 확실히 했다.그러므로 우리는 스탈린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는 ,미국에 널리 퍼진 추정과 그가 소련의 이익, 위신, 군사력을 한국의 분쟁 상황으로부터 멀리 거리를 두고 궁극적으로 미국이 북한을 분쇄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명백한 증거를 조화시켜야 한다. (-373-)

남한에 유격대가 만연한 것은 미국이 적과 민간인을 구별할 수 없는 새로운 종류의 전쟁에 직면했다는 뜻이었다. 인민군은 군복을 벗고 전형적인 농민의 흰 옷을 입은 뒤 그들 안으로 섞여 들어갔다. 할머니나 10살 짜리 아이가 보따리에서 총을 꺼내 당신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그 결과는 아주 더러운 전쟁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보통의 미군은 자신이 어디에서 누구와 왜 싸워야 하는지 거의 몰랐다. 그들은 한여름의 찌는 듯한 습기와 잦은 폭우, 질척이는 땅에서 전개된 전투 속으로 던져졌다. 미군은 인분이 비료로 사용된 논을 묵묵히 걸었다. 그 냄새는 농촌에서는 일상적이었지만 처음 맡는 사람에게는 경악스러웠다. 목이 말라 논에 고인 물을 마시면 이질에 걸렸다. (-433-)

유엔군이 38도선을 넘는다면 중국 공산 세력은 북한을 원조할 것이다. 그 이유는 중국 공산 세력은 북한에 빚을 지고 있는데, 특히 국민당과 싸울 때 이홍관이 린뱌오를 지원한 것이다. 유엔군이 북한을 점령하는 것은 중국 영토에 위협이 될 것이다. 소련은 중국에 참전을 명령하고 있다. (-498-)

앞서 본 대로 한국전쟁이 끝난 뒤 남한과 북한은 부흥했으며, 특히 남한은 세계 많은 나라에 필요한 물푼을 좋은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큰 주목을 받았다. 내가 사랑하는 조국-내 조상은 1632년(한국과 연결지어 생각하면 히데요시가 침략한 직후)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했다-은 수십 년 동안 어리석고 무의미한 전재을 계속한 결과,나치를 무찔러 얻은 국제적 지위와 거대한 도덕적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켰다., 봉쇄체제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급증했지만 그동안 비교적 소수의 투자가와 실업가는 자신들의 힘과 활력을 해외에 계속 수출했으며, 폴라니가 말한 "영광스러운 허구"와 크로더가 말한 "기묘한 치매" 또는 비어드가 말한 "도박에 가까운 모험"을 추구했다. (-547-)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 2-2』는 전두환 정권 당시 대표적인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이제서야 온전한 『한국전쟁의 기원』 시리즈로 번역될 수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에 대해서,한국인이 생각하는 남침에 대해서, 북한이 생각하는 북침에 대해서,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한국인 특유의 국수주의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전쟁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1949년 북한의 도발이 옹진 서해 앞바다에서 일어났고, 그것이 첫 시작으로, 1950년 6월 25일 우리가 최악의 비극이라 말하는 6.25 한국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북한이 남한으로 밀고 들어온 것은 치밀한 계산에 의한다. 북한의 전쟁 개시 이전에, 남한의 전시 상황에 대해서, 채점을 하였으며, 1950년 전쟁을 수행하여, 남한을 삼킬 수 있다는 계산을 가지고 있었다.이 과정에서, 애치슨Dean Goodenham Acheson 이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치슨은 1941년 국무 차관보로서 뉴딜 정책에 활약하였으며, 1945년 국무 차관에 승진하여 반스ㆍ마셜 양 국무 장관을 보좌하였다. 그리고 동아시아, 일본 , 한국, 중국 주변 국가들에 대해서, 제 2차 대전의 전전(戰前) 전후(戰後)의 중요 문제 처리를 담당하였다.하지만, 애치슨은 6.25 전쟁으로 인해 , 1947년 사임하였으며, 1971년 사망하였다.

한반도는 38도선을 중심으로 유엔연합군과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두 나라가 서로 경게를 넘지 않도록 중재하였댜. 하지만, 우익이 주도하였던 이승만 정권의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과 남한의 좌익세력들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였으며, 미국이 내세운 무능한 지도자 이승만의 제스처가 북한을 자극시킨다.그 과정에서, 북한과 북한 뒤에 있는 소련은 남한과 전면전을 치루기로 하였으며, 1945년 6월 25일 새벽을 기점으로 서울 수도권 뿐만 아니라 한순간이 부산까지 물밀듯이 북한군이 남한을 침범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CIA의 예측과 북한의 도발을 예측하였건만, 묵살되고 만다. 북한과 남한의 전면전, 멕아더가 이끄는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되었다.하지만, 중공군의 인해전수로 인해 다시 남으로 물밀듯 밀리는 전쟁 형세가 나타났다.그 결과 유엔과 미군의 오판 뿐만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공국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그 과정에서, 제공권을 장악한 유엔연합군은 네이팜탄 86만 6914 갤런을 B-29에 실어서, 폭탄으로 사용요하였다. 전쟁의 결과물, 네이팜탄 폭격으로 무고한 민간인이 겪은 고통 뿐만 아니라, 북한 군은 군인이 아닌 ,군복을 벗어 버리고, 흰 농민이 입는 옷으로 바꿔 입은 뒤, 유격대로 자신을 바꿈으로서, 농민들 사이에 자신을 은폐하였다.그 결과 약자,여성, 유소년이 타깃이 되고, 싹쓸어 버리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한반도 전역에 일어난 한국 전쟁은 실재로 한국인의 전쟁이 아니라, 1950년대 두 열강, 소련과 미국의 패권의 구축과 재편을 위한 명분 없는 전쟁이며, 이후 1962년 10월 쿠바 핵미사일 위기와 미국 간의 전면전으로 인해, 제3차 세게대전을 초래할 뻔 했다.

ㅂ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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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읽어야 할 명심보감 삶을 일깨우는 고전산책 시리즈 7
미리내공방 엮음 / 정민미디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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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아치가 사사로운 일을 행하면 벼슬을 잃을 대 뉘우치게 되고,

돈이 많을 때 아껴 쓰지 않으면 가난해졌을 때 뉘우치게 되며,

재주를 믿고 어렸을 때 배우지 않으면 시기가 지났을 때 뉘우치게 되고,

사물을 보고 배우지 않으면 필요하게 됐을 때 뉘우치게 되고,

몸이 건강했을 때 조심하지 않으면 병이 들었을 때 뉘우치게 된다. (-21-)



어리석고 똑똑하지 옷한 자가 성을 내는 것은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 뒤에 화를 더하지 말고 다만 귓전을 스치는 바람결로 여겨라. 잘하고 잘못함은 집집마다 있는 법이요. 따뜻하고 싸늘함은 곳곳이 다 마찬가지이다. 옳고 그름이란 본래 실상이 없는 것이어서 마침내는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만다. (-96-)



서경에서 말하였다. 가득 차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하면 이로움을 얻는다. (-170-)



포박자가 말하였다. 도끼로 맞는 형벌을 받더라도 바른길로 간해야 하며, 솥에 넣어 죽이는 형벌을 받더라도, 옳은 말을 한다면 이 사람이 바로 충신이다. (-242-)



고등학교 때 한자 시간에 배운 것이 명심보감이다. 고전연구회에서 다시 배우고 있는 것이 명심보감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으며, 그 배움을 통해 마음을 다스린다. 배워서, 현명함과 지혜를 얻고, 스스로 이로움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다. 삶의 이치에 통달한 이들, 하늘의 이치에 다라 살아간다면, 세상에 대한 원망이 사라진다는 진리를 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후회하는 살을 덜어낼 수 있다. 



명심보감에는 말하고 있다. 겸손한 사람이 되어라,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지 말자, 인의예지신, 충신을 구하고, 인재를 구하는 방법, 부질없는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으며, 옳은 것을 취하는 것이었다.벼슬길에오르면 스스로 경계해야 하는 것이 있다.사사로운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예컨데, 경찰관이 겨알차 기름을 넣으면서, 주유소에서, 알음 알음 챙기는 것은 사사로운 일이다.



 읽으면서 힘을 얻고,위로가 되며, 깨달음을 주는 지혜의 고전 명심보감은 인간의 삶의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 과음을 경계하는 계염배가 추구하는 것은 채우기 급급한 현대인에게 , 깨달음과 지혜로움, 겸손함으로서, 내 마음의 평온을 찾고, 행복한 삶을 꿈꾸며 , 유유자적한 삶에서, 자유롭게 노닐며 살아갈 수 있다.



이 세상에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인간이 만든 수많은 개념들이 추상적이며, 언젠가는 소멸될 것이다. 인간의 삶도, 죽음 앞에서, 무너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였다. 물질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 나와 타인의 삶을 서로 아끼며, 채워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행복한 삶, 만족스러운 삶, 후회하지 않고,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삶을 명심보감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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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 자본주의의 설계자 - 500개 기업 창업. 재벌이 되길 거부한 경영자. 일본이 선택한 시대정신
신현암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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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사와 에이이치는 1840년 3월 16일에 태어나 1931년 11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본 1만엔 지폐에 새 얼굴의 주인공이며, 양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그는 정한론의 원흉을 제공한 위인이며, 일본 자본주의 설계자라고 부른다. '경영의 구루' 피터 드러커가 시부사와 에이이치에 대해 언급한 이후다. 그가 무사 출신에서 메이지 시대 변혁기에 상인의 아들로서, 보여준 과정 하나 하나 이해할 수 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메이지 유신 시대에 살았으며, 부유한 집안의 장남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편한 길을 걸어갈 수 있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버리고 새로운 변화를 적극 수용하였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기업가이지만,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새 시대를 열수 있는 시스템으 만드는 혁신가,자본주의 설계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책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그의 생각과 가치관이다. 1860년대 ,20대였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큰 꿈을 펼쳐 나갔으며,실행으로 옮기며 살아오고 있었다. 그 결심은 아버지를 설득하는 과정으로 이어졌으며, 일본의 자본주의 설계자라 부를 수 있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을 밀어주는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 속에서 일본에서 벗어나 유럽 파리에 가며, 유럽의 선진 문화와 경제,도시를 일본에 도입하였으며, 일본이 경제 성장을 꾀하고,제국주의 나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일본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자신의 지위가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지헤와 깨달음을 가졌고, 실천해 나갔다. 그가 일본 제일 은행을 설립하고, 무사가 아닌 일본 금융과 산업을 장악할 수 있었으며, 500개 기업을 창업하고 , 그 500개의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갔다. 모방을 잘하는 한국 사람은 메이지 시대를 살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업적을 따라가면서, 그의 성공 노하우를 빌려서 기회를 만들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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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래 변호사의 이혼 상담소 - 상담부터 승소까지, 한 권으로 끝내는 이혼의 모든 것
양나래 지음 / 길벗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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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대학 졸업 후 바로 대기업에 취업한 '커리어 우먼'이었습니다. 원하던 직장에 취업하고 안정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아,나도 좋은 사람을 만나 경혼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마침 그때 , 회사 동기가 지금의 남편과 만남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전문직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대학교 재학 시절에도 손에 꼽히는 우동생이었고 성실하기로 소문 났으니 합격은 시간 문제라 했습니다. 지금 수험생인 것은 고려하지 말고 오로지 사람 자체만 보라고 했고요. (-19-)



장인 어른은 지역에서 유명한 사업가입니다. 외동인 아내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는 데 관심이 없어서, 장인어른은 저에게 사업으 배우라고 하셨지요. 사업을 이어받으면 언젠가는 나도 사장이 되겠구나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장인어른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대 받는 것이 당연한 노예가 된 것 같아요. 장인어른과의 갈등고 이혼 사유가 되나요? (-74-)



결혼 후, 이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 이유, 자녀 문제, 그리고 이혼 후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하지만, 이혼을 해야 할 때, 유책사유에 충족하는지 살펴 보아야 이혼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러가지 이혼 사유를 본다면, '적반하장'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혼 사유가 상대방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요구를 당사자가 아닌 상대방이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독박을 쓴 케이스다. 추가적으로 이혼의 증거로 쓰기 위해서, 녹음이나, 몰래카메라 설치,CCTV 솔치로 인해 말생하는 형사적 처분이 따를 수 있는데, 이런 경우,이혼을 하고 싶어도 이혼하기 망설여지는 또다른 이유다.



부부 사이에 발생하는 이혼 사유도 있지만,외부적인 이유로 이해 이혼사유가 나타날 때가 있다. 장인어린이 돈이 많아서, 잘 살거나, 시댁이 잘살아서, 결혼한 케이스, 결혼 후 처가에서 무시당하고, 장인에게 하대 받을 때가 있다. 뉴스에 단골로 소개하고 있는 공부 잘하는 남자가 사법고시 패스후, 돈 많은 여자에게 장가가는 케이스가 여기에 해당되며, 겉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앖는 좋은 조건이지만 실상 안으로 들어가면, 이혼 빌비가 될 수 있는 여러가지 사례가 실제로도 나오고 있다.



책에는 실제 가까운 친척이 이혼한 케이스가 소개되고 있어서, 눈에 들어왔다. 부륜이나, 도박, 조건,자녀 무제 등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는데, 부부가 결혼 후 모은 재산을 분할할 때, 그 재산분할의 기준이 애매하다.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혼전문변호사 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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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장자에게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묻다 -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ESG, ESH 관계자 필독서
최병철 지음 / 대경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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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과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외부환경의 변화가 안전경영의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안전경영이란 말이 사용된 지느 제법 오래되었다. 누구나 그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안전경영을 실천했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나 기업은 별로 없다. (-24-)



애쓰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합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일부러 의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선진 안전문화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60-)



혁신을 방해하는 ,즉 불선의 세번째 요인으로 맹자는 방심(放心) 을 꼽는다. 반성할 중 몰라 마음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인은 사람의 마음이요,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않는다. 개나 닭이 나가면 찾으면서 마음을 놓아버린 후 찾을 줄 모른다. 학문의 길이란 그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라고 덧붙인다. (-127-)



맹자의 지적대로 '초나라 사람들이 떠들어 댄다면, 종아리를 치면서 가르쳐도 소용없을 것' 이기 때문이다. 경영책임자가 이 점을 간과한 것이다. 심하게는 경력사원을 채용해 놓고서도 간헐적으로는 "어디 얼마나 잘하는가 보자." 라는 입장을 피력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이를 해낼수 있을까? (-190-)



안전지식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안전관리 현장에서 서류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안전기분 업데이트와 책임의 근거자료 측면에서 생산되는 문서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 실제로 안전보건관리자의 주요 성과는 이러한 서류를 생산하고 보존하는 속도나 작성 수준으로 평가된다. 관련 기관의 점검에 대비하는 일이 80% 이상이다. (-275-)



장자가 말하는 욕심을 버리면 천하는 잘 다스려질 것이란 말은 무슨 말인가? 효율성이란 성과를 말한다고 하겠다."이것을 버리면 천하의 조화로움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어떤 조직이든 핵심적 구성요건이 있다. 첫째는 공동의 목표이고, 둘째는 1인 이상의 구성원이고, 셋째는 그 작동장치, 즉 시스템이다. (-314-)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인가의 지혜에 의존해야 하는 영역이 정치다. 그 이유은 사법적 판단이 가지는 폐해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정치가 사법에 자신들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판단을 넘겨주기 시작하면서부터 대화와 협상은 불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한 가지라도 더 증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실수를 유도하고, 불신을 전제로 모든 행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407-)



2500년 전 맹자 사상과, 장자 사상을 현실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쓰여질 수 있는지,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지, 책 『맹자 장자에게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묻다』에서 쓰여지고 있으며, 안전 경영에 대해서, ESG 경영의 본질에 대해서, 논할 수 있다.



장자 사상과 맹자 사상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두가지 사상에서, 우리가 인위적인 행동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을 문제시하고 있다. 예컨데, 쓰레기를 버리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 재활용,친환경이라는 의미로 쓰레기를 다른 형태로 전환하고 있지만, 인간이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문제가 해결된다는 의미는 안전 경영의 본질을 꿰뚫고 있으며,인간이 무언가 하려고 애쓰는 것 자체를 경제하고 있다.



책에는 방심(放心) 이 나온다. 여기에서 방심이란 어떤 일을 할 때, 스스로 틈을 만드는 것에 있었다.예컨데, 안전경영에 있어서, 간과하는 것이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있다.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마인드, 즉 인간 스스로 방심 하면서, 큰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가 방심의 대표적인 예다.



추가적으로 욕심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안전 경영의 또 다른 한계가 욕심.에 있다. 덤프 트럭에 무거운 것을 추가로 쌓는 것이 욕심의 하나다. 배가 견딜 수 있는 하중을 넘어서는 물건을 쌓는다면,그것 또한 인간의 욕신에 해당된다. 결국 방심과 욕심, 이 두가지를 내려 놓는다면, 큰 문제가 발생하는 일을 줄여 나가며, 인간의 불필요한 노력을 덜어낼 수 있다.욕심을 버리면 천하르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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